특목고는 덕후를 위한 공간이 아니였다.
중3.
이 단어만으로도 뭔가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몰려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중3은 고등학교 들어가기 위한 중요한 시기야"
근데 솔직히 아무도 나한테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았다.
나만 빼고 다 공유하는 공지사항이 아니였나?
학교에서는 학생 코스프레 1번
학원에서도 그냥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학생 1번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걸 했을뿐이다.
내게 외국어고등학교는 마치 해리포터 세계관에 나오는 학교 호그와트 같았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고, 다니면 간지녀가 될 것 같은 학교
사실 이유는 단순했다.
난 언어 덕후였다.
9살때 처음으로 영어를 배우고, 중학교 2학년때는 학교에서 배운 일본어에 반했다.
그래서 늘 선생님들께 제출하는 자기소개란에 좋아하는 과목은 늘 영어와 일본어.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과 과학
단어 하나 외울때마다
회화 한 줄 말할때마다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가 떠올랐다.
내게 언어는 또다른 지구였다.
그만큼 외고는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달랐다.
외고는 외국어 덕후 전용 학교가 아니었다.
스펙과 내신이 그게 필요했다.
스펙..? 내신..?
먹는거야? 떡볶이집 신메뉴 이름이야?
중학교 3년을 신화 오빠들 덕질로 꽉 채운 나는 이미 그 단어들과 멀리멀리 떨어져 있었다.
결정적 사건은 어느 날 터졌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 내 벽에 붙은 신화 브로마이드를 찢어버렸다.
"왜 찢어! 오빠들 건드리지 마!"
나의 절규였다.
엄마의 단호한 한 마디. "너 중3이야. 고등학교 준비 안 해?"
그 순간.. 세상이 멍해졌다.
고등학교 준비...? 그게 뭔데...?
자동으로 가는거 아니였어?
결국 특목고 진학은 실패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한테 말했다. "PLAN B로 실업계라도 생각해보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실업계 라는 단어에서 뭔지 거부감이 올라왔다.
마치 내가 싫어하고 못먹는 당근, 오이, 수박을 한꺼번에 입에 넣은 기분이었다.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그 기분
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전 그래도 인문계 갈래요."
결국 '외고'라는 호그와트엔 못 갔지만, '덕질' 이라는 마법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인문계 진학을 택했다.
고등학교 발표날..
두근
두근
남녀공학도 아닌 강남 8학군 여고
엄마는 "여기 유명한 학교야" 라고 했지만..
뭐가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하나..
나는 아직도 덕질 이라는 마법 주문을 매일같이 외우며 산다.
성젹은 놓쳐도.. 덕질은 만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