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양면성과 인간관계의 상대성

김애란 『안녕이라 말했어』 리뷰

by 권인

오랜만에 읽어보는 단편소설집.

단편소설이 가진 묘미를 가득 담은,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 속에서 작가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보였고, 소시민인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로 경제적인)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보니 작가 역시 같은 것을 겪어봤거나 정말 철저하게 타인들의 삶을 관찰했겠구나 싶었습니다.

각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저와 겹치는 부분을 많이 봐서 공감과 동질감을 많이 느꼈고, 한편으로는 제 속에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못나고 부끄러운 마음과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몽땅 들킨 기분이 들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양면성'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선하거나 옳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악하거나 그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인간 관계의 상대성' (어느 한 사람이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없고 모든 이들에게 나쁜 사람일 수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누군가의 평안을 순수하게 바라며 "안녕"이라고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 입장과 내 마음을 나와 같이 알아줄 때, 나의 안녕을 진심으로 빌어줄 때 그토록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겠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읽었습니다.

어느 한 편을 가장 인상깊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일곱 편 모두 깊은 공감과 여운을 남겼고요.

덧붙여 신형철 평론가님의 깊이 있는 작품 해설은 또 다른 한 편의 단편소설 같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제 기억에서 옅어져 가는 코로나 시대의 암울함, 그 시대에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던 많은 이들의 절망과 절박함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그 시기를 무사히 지나 지금 일상의 단조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기도 합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정말 얼마나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풍부할지, 얼마나 예민하고 관찰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일지 생각해 보니 작가님이 정말 대단한 분 같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독자의 마음에 가닿는 글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무나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며 평범한 독자의 입장인 것이 다행스럽고요.




책갈피+생각


* 책에서 나온 구절을 읽은 후 떠오른 생각과 감정은 초록색으로 표시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역지사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사람들에게는 그저 삶의 활력소처럼 가볍게 비난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한 것뿐이라고, 삶의 권태를 어느 정도 그렇게 견디는 것뿐이라고 여기려 애썼다. 자기 방의 벽지를 바꿀 수 없을 땐 남의 집 현관이 더럽다고 생각하면 많은 위안이 되니까.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타인의 불행에서 위로를 얻는 인간의 간사한 마음, 남보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때의 안도감을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나이드니 마음이 넓어지는 대신 얇아져서 쉽게 찢어지더라.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너무 공감됩니다. 나이 들면 현명하고 너그러워진다는 말은 극히 소수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아요.


엄마와 헤어지고 나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비로소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안타까움과 미안함, 짜증과 홀가분함, 연민과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늙고 약해지신 부모님을 대할 때 딱 이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 같아 공감되었습니다.


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

-어떤?
-'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
"안녕"이라고. 부디 평안하라고.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안녕'이라는 말 안에 담긴 여러 의미를 참 잘 표현한 부분입니다.

말끝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표정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삶이 정말 힘들 때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안부를 물어 주면 정말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무심코 건넨 작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나갈 힘을 줄 수도 있다는 게 참 대단하죠.

마음이 담긴 말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대체로 우리는 나빠서 틀리는 게 아니라 몰라서 틀린다.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해설)

몰라서 틀리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랐다는 이유로 남에게 준 상처가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 출처: 『안녕이라 말했어』 (김애란, 문학동네, 2025, 작가의 말)

왜 중요한 것들은 다 지나고서야 깨닫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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