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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요리사에게 대학졸업장, 굳이 필요 없다

독일 사람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다. 평일 각 채널에서 요리코너가 진행된다. 아마츄어 요리사들끼리 정해진 시간 안에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개성 있는 요리를 만드는 대회도 있고, 프로 요리사와 일반인 간에 요리대회가 펼쳐지기도 하며, 프로 요리사들끼리 경쟁하는 일도 있다.      

그 중에서 자주 보던 요리프로가 있다. 금요일 밤 11시, 요하네스 케르너(J,Kerner)가 진행하던 것으로, 요리사 다섯 명이 한 시간 안에 애피타이저부터 주요리, 그리고 후식으로 빵이나 아이스크림까지, 자기가 맡은 코너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다루는 재료와 음식도 꼭 독일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부터 아시아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다룬다. 일류급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시식하기 위해 매 주 진행 홀은 바닥까지 방청객이 앉을 정도로 빈틈없이 가득 찬다.     

이 프로그램은 일류 요리사들이 그들의 이름을 걸고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상당한 긴장감을, 시청자들에게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매력이 있다. 요리사들의 그런 바쁜 손놀림 가운데 재미를 더하는 것은 사회자의 역할이다. 사회자는 각 코너를 돌면서 요리사들에게 진행 중인 음식에 대한 설명을 유도한다. 이 때 요리사들은 손놀림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한다. 누군가 요리가 완성되면 다른 요리사들과 방청객들에게 시식을 권한다. 시식시간에 모든 요리사들은 바쁜 손을 멈추고 다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고 즉석에서 평가한다.         

아무리 프로 요리사들이라도 이 시각만큼은 바짝 긴장한다. 자기가 만든 요리를 방청객과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다른 전문가에 의해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료의 음식을 놓고 겉치레 인사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가 프로이고, 일류 요리사래도 짜면 짜다, 싱거우면 싱겁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야말로 냉정한 평가가 그 자리에서 이뤄진다.          

이런 요리사들의 인기는 연예인 못지않다. 직업을 가리지 않고 어느 분야든 실력이 있으면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결과인 셈이다.      

독일 직업인들의 실력과 전문성은 철저한 직업교육에서 나온다. 눈대중으로 대충 배워 하는 법이 없다. 작은 일이라도 고등학교(김나지움 제외) 때부터 직업교육을 학교와 회사를 번갈아 오가며 받는다. 기업에 취업한 후에도 직업훈련의 최종 목표인 마이스터(Meister,장인)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독일에서는 이런 직업인들의 학벌을 놓고 가십거리를 삼지 않는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든 안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력 간 소득격차소득재분배로 해소 

어떤 분들은 독일 역시 학력 간 임금격차가 크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즘은 대학진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맞다.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이 내놓은 '한-EU 임금격차 현황 비교' 보고서(2014년 기준)에 따르면, 전문대·대학-중졸이하 근로자간 임금격차가 독일이 2.08배로, 25개국 중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세전 통계이기 때문에 세후의 효과를 함께 분석해야 좀 더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즉 소득재분배 결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먼저 독일의 최저 임금은 8.84유로(11,500원 정도, 2017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4위이다. 물가는 안정적이고, 물리적 삶의 조건인 주택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택소유에 대한 부담 역시 적다. 무엇보다 6,70% 정도를 차지하는 고졸학력자들이 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직업의 분화 및 직업교육이 잘 되어 있다. 이것은 학력거품의 조기 제거 및 낮은 청년실업률과 함께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각종 사회보장제도이다. 최소 1년(본봉의 67%)에서 최장 30년(매월 약 50만원) 이상 주는 실업수당, 자녀 한 명당 최장 25세까지 받을 수 있는 25만 가량의 자녀양육비, 가성비가 세계적인 의료보험제도, 그리고 대학 및 대학원까지의 무상교육 등은 독일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를 한층 더 높여준다.      

이런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의 긍정적 결과는 지니계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2014년 지니계수 개선율은 11.4%인 반면, 독일은 42.2%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명목적인 학력 간 소득격차를 조세 정의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개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실업계 진학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로인한 학력 간 소득격차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나 싶다. 결국 세계적인 직업교육시스템, 기술에 맞는 직업 분화와 정부의 노력, 이런 삼박자가 독일 사회를 건강하게 굴러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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