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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독일 음악교육에서 배울 수 있는 건 결국 ‘인내’?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악기를 잡아보냐고요?’

‘꼬박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참으로 숨 넘어갈 일이다.     

큰아이가 다녔던 곳은 ‘주(시)립 예술‧음악학원’(이하 음악학원). 악기를 배울 요량이었지만, 악기는 처음부터 만져보지도 못했다. 그저 춤추고 노래하는 게 전부. ‘악기를 배우기에 앞서 음악적 감각과 감성을 깨우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 학원의 규정이다. 그런 교육적 방침과 규정에 따라 아이는 악보 보는 법과 박자 감각을 먼저 익히고, 음악에 맞춰 노래 부르고 춤추는데,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바쳤다.     

나 같이 성질 급한 사람에게 그 시간은 그야말로 속 터지는 시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30분씩, 무려 2년이란 시간 내내 음악에 맞춰 마냥 뛰놀고만 있으니…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공을 들여야 악기를 배울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었다. 한국에선 피아노 2년이면 ‘체르니30번’정도는 치지 않던가.  

        

시립 예술음악학원(Volksschule)      

큰아이는 6살 때 처음으로 ‘사교육’을 받았다. 말이 사교육이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우리가 국‧영‧수 중심이라면, 독일은 주로 예‧체능에, 문화생활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모든 예‧체능교육은 한 곳으로 통합‧운영되는데, 그곳이 바로 ‘주(시)립 예술‧음악학원’이다. 독일에도 사설학원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주로 방과 후 숙제를 도와주거나, 뒤쳐진 과목에 대해 보충해주는 정도에 그친다. 즉, 학원은 학교 수업을 앞서 가게 하는 게 아니라, 학교성적이 부진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통로 역할을 할 뿐이다. 최근엔 독일 교육당국도 학원의 역할에 대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우후죽순으로 학원을 양성화시키지는 않는다.     

음악학원의 대상은 6세 이상의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다. 이들에게 악기 뿐 아니라 노래, 미술, 체육활동 등을 가르친다. 거의 종합예술학교 수준. 여기서 다뤄지는 악기만 해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롯, 클래식기타, 키보드, 피리, 나팔, 호른, 클라리넷, 드럼 등이며, 노래도 재즈, 오페라, 뮤지컬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가르친다. 심지어 축구, 댄스, 발레 등의 체육활동은 물론이고 컴퓨터, 수예, 미술교육 등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총괄‧운영하는 곳은 해당 관청인 ‘키일(Kiel) 시청’이다. 시에서는 희망자를 학기별, 내지는 수시로 모집하여 레슨시간을 잡아준다. 음악수업은 음악학원 건물 내, 교사 개인 레슨실에서 진행된다. 부모는 이 시간에 아이의 수업을 참관할 수 있다. 모든 레슨이 정해진 시간대에 움직이기 때문에 음악학원 자체가 사람들로 인해 붐비는 일은 거의 없다. 축구, 댄스 및 발레 수업은 학기별로 희망자를 모집하여 운영하되, 주로 학교 운동장과 학교 체육관을 빌려 이루어진다.


음악학원에서 일하는 교사는 모두 실력파 전공자들이다. 참고로 독일의 대학교(6년 과정)에는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학과가 따로 없다. 있어도 이론위주의 학과가 있을 뿐이고, 실기는 음악전문대학에서 다뤄진다. 이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이 주립 예술‧음악학원나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게 된다. 그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교사들의 실력은 짱짱하다.     

이곳의 레슨비는 레슨시간 분량과 교습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레슨은 주1회가 보통이며, 기초과정의 레슨 시간은 25분이다. 이 시간을 기준으로 레슨비는 (우리가 살던 도시기준으로)그룹의 경우 월 2만원, 개인의 경우 월 3만5천 원 선이다. 레슨시간이 50분으로 늘어나면 레슨비는 배가 된다. 초등학생의 경우 처음에는 그룹 지도를 받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악기에 적응하면 25분짜리 개인교습으로, 그러다가 단계가 높아지면 50분 수업으로 바꾼다.     

모든 학원이 여기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사설 음악학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술이 타고난 재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영역이다 보니, 가끔은 실력이 너무 뛰어나 대학교수에게 레슨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고액 레슨비 관행은 없다. 추후 음대생이 되어 교수에게 레슨을 받아도 따로 레슨비를 주지 않는다. 고액 레슨비의 고리가 아예 처음부터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줄만큼만 주고, 받을 만큼만 받는다.     

피아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는 음악학원에서 빌려 쓸 수 있다. 아이가 악기를 꾸준히 배울지,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빌려 쓰다가 아이에게 배울 의지가 보이면 그 때 악기를 사준다. 대여료는 악기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플룻과 바이올린의 경우, 한 달 대여료가 1만2000원 정도다.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음악학원도 방학이다. 하지만 방학이라도 학교 수업료처럼 학원비는 내야 한다. 억울하지만 어쩌랴, 제도는 제도인 것을.          


동유럽 출신 강사진부모 신뢰는 저조한 편      

음악학원에서 일하는 사람 중엔 의외로 동유럽 출신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모국에서 음대를 졸업하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면에서는 독일 학생들에 비해 분명 비교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가 모국의 불안정한 정치·경제적 사정으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어도 독일의 음악 분야에서 만큼은, 동유럽 출신들의 입지가 꽤 공고한 편이다.     

큰 아이를 가르쳐준 선생님도 폴란드 출신의 유학파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독일 음대를 졸업함과 동시에 이런 직장을 얻었다는 것은, 실력 면에선 독일 학생들과 겨뤄 확실한 차별화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 대한 독일 부모의 시선은 싸늘했다. 독일 부모입장에서는 실력과 별개로 처음 음악을 시작하는 아이를 외국인 교사에게 맡기는 것이 영 꺼림칙했을 것이다. 부모의 우려대로 그녀는 아이들을 다루는 기술이 많이 부족했다. 그녀의 음악 수업은 그다지 정돈되지 않았고, 여기에 아이들의 천방지축까지 더해져 다소 뒤죽박죽인 수업을 진행했다.     

결국 독일 아이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1년이 지나면서 15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반으로 확 줄고 말았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독일 부모들처럼 콧대를 세워가며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그저 2년의 기초과정을 묵묵히 버텨낼 수 밖에. 결국 큰아이는 2년을 꼬박 채우고, 기초반에서 악기반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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