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요.”
개학 무렵이면 의례히 던지는 큰아이의 투덜거림이다.
독일은 여름 방학이 겨울 방학보다 길다. 대학교의 경우는 여름방학 기간은 두 달 반 , 겨울방학은 한 달 가량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까지는 6주의 여름방학만 있을 뿐, 겨울방학은 따로 없다. 단, 3주 정도의 크리스마스 방학이 이를 대신할 뿐이다. 그 외에 2주 정도의 부활절 방학, 가을방학 등의 단기방학이 학기 중간 중간에 있다.
그 중 가장 긴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친척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인근 나라들을 여행지로 선택하여 가족휴가를 즐기곤 한다. 직장인들의 유급휴가가 연중 한 달 정도이기 때문에 아이들 방학기간에 맞춰 가족끼리 휴가를 떠나는 것이 보통이다.
친구들이 그런 긴 여름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할 때가 되면 큰 아이는 학교가기를 꺼려했고, 학교에 갔다 오면 투덜대기 일쑤였다. 개학 첫날은 방학 중의 경험담을 서로 얘기하며 거의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긴 시간동안 다양한 경험을 가족과 함께 쌓고 온 아이들이 오죽 할 말이 많겠는가! 할머니 집을 방문하거나, 사촌들과 어울려 지내거나, 유럽 각처로 여행을 다녀와서 할 얘기가 많고 많은데 본인은 특별한 얘기 거리가 없으니, 자기차례가 돌아오는 것이 괴로왔을 게다.
처지는 딱하지만 유학생 부모를 둔 자기 팔자인 걸 어쩌랴! 게다가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 충전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기질을 양쪽 부모가 갖고 있으니 말이다.
늘 성실을 인생의 모토로 삼아 살아왔고 여행은 가진 자들이 한가로이 누리는 문화쯤으로 생각해 온 내게 언감생심 여행이라니!
그런 내게 이들의 적극적인 쉼의 문화는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여행과 휴식은 모두가 누릴 일상적인 문화였던 것이다. 올해는 어디로 휴가를 갈 것인지,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연중 내내 고민하고, 이것 때문에 일 년을 일하며 버틴다고나 할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은퇴한 할아버지가 있다.
그에게 “연금으로 생활이 안 되세요? 굳이 이렇게 일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라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돌아온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여름 휴가비가 필요해요.”
황당했다. ‘나 원 참! 안 놀면 되고, 휴가 안가면 그만이지. 그 나이에 휴가비를 위해 일한다고?’.
문화와 생각의 차이다.
그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집을 장만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녀들의 학비나 결혼자금 때문도 아니다. 월세가 안정되어 있고 수업료가 없고 사교육비가 들지 않으니, 평생을 집과 자녀교육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의료보험이나 연금제도 또한 잘되어 있어 병원비 걱정이나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런 그들에게 일의 목적, 돈을 버는 목적은 쉼과 휴식에 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휴가기간을 즐기는 것을 삶의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실천한다.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는 해변에서 썬베드에 앉아 책을 보고, 햇볕을 즐기다 지루하면 바닷물에 몸을 날리며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 그리곤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일터로 복귀한다. 내년에 떠나올 새로운 휴가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