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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Feb 10. 2020

인공지능 시대, 뭣이 중헌디?

요즘 어딜 가든 인공지능 AI가 화두-ㄴ데요,
그러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우스갯소리가 그겁니다.
“이러다가 영화처럼
AI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거 아냐?” 하고요.

이런 질문에 인공지능 분야세계 3대 석학으로 꼽히는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가 답했는데요,
그건 불가능하다, 였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문제는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인간이 AI의 힘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결국 인간이 두려워해야 하는 건,
인공지능이 아닌 우리 인간 스스로라는 거죠.

어떤 일에든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는 법입니다.
세상의 가치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효율도 좋고, 경제성도 좋고, 성장도 좋지만,
그 어떤 가치건
사람보다 더 크고, 먼저인 가치는 없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변하고 성장해가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스물 여섯에 첫 차를 사고, 운전을 하게 되면서 내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동 시간이 줄어든 만큼 뭔가를 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테면, 약속을 하나가 아닌 두 세 개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됐다거나, 물리적으로는 원거리의 약속도 가능해졌고, 하루에도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이 돈임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돈으로 바꿔 쓰기 시작하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잃어갔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거나,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차창 밖으로 달라지는 나뭇잎의 색깔과 하늘의 모습으로 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을 금세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겨울을 코 앞에 두고서도 코트를 입지 않는 날이 늘었다. 차 안과 건물 안을 오가며 바깥 공기를 느낄 새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한 일을 되새겨 보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하며,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겠다 생각하던 시간이 없어졌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정리하던 시간이 운전하는 시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이 돼 주었던 '걷기의 시간'이 사라졌다.


수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 등 예술가들이 산책을 통해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 만큼 '걷기'는 돈 안 들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자 생각의 깊이와 넓이까지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하던 것이, 자가 차량을 이용하면서는 목적지 바로 앞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걷는 일이 줄어들게 될 수 밖에 없고, 나 또한 생활속에서 애쓰지 않아도 주어지던 운동의 시간을 잃게 됐다.   


 생활의 처리 속도가 빨라지며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하루 24시간을 쓰는 효율은 높아지고 생산성은 확실히 늘었다. 물론, 몸도 편해졌다. 그런데 정작 피로감은 더 쌓이는 역설을 경험하게 됐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유지를 하기 위한 기름값과 일정 정도의 수리비, 그리고 매년 내야 하는 자동차 세금과 책임보험은 생각보다 지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하게 됐고, 나는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그 동안 해 왔던 것 보다 더 일해서 벌어야 했고, 점점 수입에 신경을 쏟게 되면서 신경은 더욱 예민해졌다. 그렇게 피로는 매일 매일 더욱 쌓여갔다.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덕분에 우리는 전국 일일 생활권의 시대를 열었다. 로봇 청소기라는 놀라운 기계의 등장은 퇴근 후 청소해야 하는 시간을 줄였으며,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덕분에 우리는 빨래를 하고 설거지하는 부엌의 노동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우리를 또 다른 노예로 전락시켰다.

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함에 대한 비용 지불을 위해 우리는 일터에 있는 시간을 더 늘려야 했고, 일터에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우린 또 다른 더 편리한 기술을 사야 했으며, 그 기술에 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또 그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했던 것이다. 현대 사회는 그 악순환의 고리위에서 자본의 성장을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노예가 돼 가고 있었다.


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퉁'치는 일이 참 많다. 그 대상은 대부분 거대 자본, 사회의 거대 구조, 만연한 가치 상실의 사회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사니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이, 아름다운 풍경과 차 한 잔의 여유, 손녀 손자를 위해 소일거리로 모아온 할머니 할아버지의 꼬깃한 쌈짓돈의 애틋함과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의 사랑스러움과, 오랜 시간 들여 만든 것의 정성을 잊고, 잃어가고 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경험은, 아마도 한 번쯤은 모두 겪어 봤겠지만,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상처가 될 뿐이다.  


기술은 한 해 한 해 더욱 발전해 갈 것이고, 어릴 적 공상과학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현실이 됐을 만큼,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그 어떤 놀라운 일이 현실에서 구현될 지 모른다. 그렇게 빠르게 변하고, 상상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게 될 인공지능시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기술, 첨단과학에 지지 않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람, 사람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 .


# [매일 씁니다]는 매일 쓰는 방송 원고에 미처 못 다한 이야기를 조금 더 붙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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