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나는 비염 환자다. 코막힘과 콧물, 가래의 들끓음과 목 뒤편 어딘가가 불편한 그 느낌은 기억이 닿는 한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도 오랜 시간을 함께해오고 있다 보니, 이제는 익숙한 기분이지만 또 절대 익숙해지질 않는다. 누군가 너무 오래된 알레르기라면 이제 그냥 친구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글쎄. 난 이런 친구를 곁에 둘 정도로 너그럽지 못하다. 그 말을 한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정말 좋은 사람이기는 하다.
비염과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인후염이 있다. 걔네 둘은 확실히 친구인 것 같다. 나는 거기에 요만큼도 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내 옆을 떠나지를 않는다. 그냥 자기네들끼리 놀지 왜 계속 나한테 붙어 있는 건데. 비염이 기본이라면 인후염은 아주 빈번하게 찾아오는 이벤트이다. 조금만 춥거나 공기가 탁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어김없이 목이 부어오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고3 시절엔 거의 2주에 한 번씩 목이 부어올랐다. 마스크를 쓰고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잠을 청해도 그랬다. 결국 21살 때 편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지만, 증상은 완화될 뿐 없어지지 않았다. 솔직히 완화된 것도 그냥 고열에 시달리는 것만 없어진 거지 빈도는 드라마틱하게 줄지 않았다.
간직하고 싶은 것은 사라지는데 좀 치워버리고 싶은 것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하고 싶은 일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멀기만 한데 하기 싫은 일은 바로 눈앞에서 꺼질 생각을 안 한다. 잠이라도 푹 자고 싶은데 늘 알람을 맞춰야 한다. 술을 들이붓고 나니 통장은 가벼워져만 간다. 노래라도 부를까, 망할 인후염 때문에 목 아프네. 무엇 하나 속 편히 허락되는 것이 없구나.
여전하다. 하나씩 하나씩 밟아가며 가고는 있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 읽고 있지만 공허하고 쓰고 있지만 갑갑하다. 비라도 왕창 맞았다면 후련할 것 같은데 가랑비에 젖어간 옷은 갈아입기엔 무모하고 계속 입고 있기엔 불쾌하다. 펄펄 열이 끓어오르지 않으나 목이 아프고 기운이 없다. 꼼짝 못 할 만큼 아프지 않지만 움직이기가 너무 싫다. 잠이 온다. 내일은 알람을 맞추지 말아야지. 꼭 더 깊은 잠에 들어야지. 또 개운치 못하게 새벽에 눈 뜨겠지만, 그래도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