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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잘가라 학생 신분아

by 권권우

딱히 그리운 학창 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은 편이고 특별히 꼽을만한 추억도 없다.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진짜 이거다! 싶은 건 없다. 그래도 가끔 생각은 난다. 지금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꾸던 꿈에 가까이 가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당시에 나를 스쳐 갔던 모든 이들이 하나의 장면에 모인 채로 남아 있어서 특별히 누구 한 명이 궁금하다기보단 '그때 그 사람들'이 궁금하다.

졸업을 할 때,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느껴진 생경함은 여전히 선명하다. 나는 평생 학생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제 진짜 학창 시절과는 안녕이구나 하는 마음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졸업식 행사 도중 학생회장의 연설 중 한 마디였다. 그 친구가 말하길, 우리가 이제 다시 교복을 입고 이곳에서 만날 일은 없지만 우리의 기억만큼은 영원히 이곳에 남아있을 거란다. 그 말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뭉클하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고민과 문제들을 안고 살던 학창 시절의 나를 보내는 기분이 이상했다.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데, 그 끝은 아쉬움이었다.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이 하나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은 언제 받아도 서글프더라.


이제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중이다. 물론 졸업은 유예하겠지만 실질적인 학교 생활은 이제 정말 끝나간다. 대학원을 진학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학생이 될 일이 없다. ‘학생’이라는 방패를 더 이상 쥐고 있지 못한다는 건 엄청나게 두렵다. 이미 성년을 훌쩍 넘겼지만 진짜 성인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달까. 나는 내가 창공을 힘차게 가르는 독수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도 햇살 받으며 숲을 거니는 나비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어두운 밤만이 허락된 징그러운 나방도 못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방도 날 수 있기는 하니까. 나는 잘 쳐줘야 떼굴떼굴 잘 구르는 공벌레 정도인가 보다.

고등학교 때보단 훨씬 많은 사람을 알았고 사랑했고 미워했다. 대학 생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다 부질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한 번도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이 될 줄 진심으로 몰랐다. 법적 성인의 자유와 대학에서의 공동체 생활에서 느껴지는 소속감은 스무 살의 나를 참 행복하게 했는데, 그 순간을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추억 속에서만 머무르고 현재로 넘어오지 못한 것은 무뎌짐에도 잊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여전히 가끔씩은 궁금해한다. 나의 옛날 기억 속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학창 시절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좋았던 사람들, 그저 그랬던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나쁜 기억으로 남은 사람들도 그냥저냥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뭐가 됐든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안 좋은 소식이 들리면 유쾌하지 않더라. 악연으로 남은 너네들도 그냥 적당히 잘 지내주라. 적당히를 넘어 떵떵거리면서 잘 살아도 상관없으니까 다시 만나지만 말자.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달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브로콜리너마저-[졸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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