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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생일 축하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by 권권우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면 생일이 즐거웠던 적이 없다.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엔 온갖 기념일이 즐비해 있고 특히나 우리 가정엔 생일이 몰려 있다. 내 생일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던 적이 언제였나 솔직히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생일이란 설렘보다 한숨에 더 가까워져 갔다.


기다리던 이에게 축하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다른 기념일에 치이기 때문에, 전혀 반갑지 않은 사람에게 갑작스레 온 연락이 불편하기 때문에 생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늘어만 갔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일이 훨씬 즐겁고 기뻤다.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완벽하게 혼자였던,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작년에 나는 고립을 택했다.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보내던 작년의 나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완벽하게 혼자 생일을 보내야 했다. 아니, 보낼 수 있었다.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에 가서 하루 종일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방으로 돌아와 뻗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고 그건 정말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온 고마운 연락들을 뒤로하고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 기능을 꺼버렸다.


그리고 올해 알림을 꺼둔 덕분에 기억력이 훌륭한 극소수와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간 스트레스 받았던 것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편안하더라. 아무도 나를 모르던 유럽에서 느낀 자유에 비하면 좀 약하지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그 편안함은 방구석에 있던 나에게 다시 그 타국 땅에서의 자유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일 같은 거 아무렇지 않다고 열심히 주장해 봤지만 사실 생일 챙겨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아서 슬플까 봐 열심히 벽을 치고 밑밥을 깔아봤지만 그럼에도 슬쩍 여지를 남겨뒀다. 노선이라도 확실히 정하든가.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쿨한 척 뱉는 게 더 추하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원래는 이 사람의 생일을 누구보다 챙겨주고 싶었지만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 관심도 없었지만 나에게 연락을 줬기에 억지로 마음에도 없는 축하를 건네는 것. 지겹다 이 알량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는 마음들. 그냥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 주고 싶은 사람에겐 주고, 받고 싶은 사람한텐 옆구리 찔러서 생일이라고 말하고. 초라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이고 싶다. 나는 원래 딱 이 정도인, 그런 사람이니까. 간장 종지보다도 좁은 것이 나의 그릇일지언정 그 안에 무언가라도 담겨 있었으면 좋겠고, 그 무언가는 시원한 물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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