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나

by 권권우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밝고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런 뉘앙스의 답변을 다 포함해도 그래. 그게 억울하거나 슬프진 않아. 실제로도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럼 실제로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만약에 내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 질문을 받고 그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나의 말은 실제로 그 사람을 투영하고 있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는 건 그 자신에게조차 허락되지 않은 일일지도 몰라. 어쩌면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라는 어구 자체가 모순일 수도 있지. 아,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밝고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너무 명백한 사실 같네.


리트리버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나는 사람보다는 동물이, 특히 강아지가 좋다. 어떻게 저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가 있지? 어린아이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그 크기가 강아지를 대할 때보다는 약한 것이 사실이다.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하고 해맑은 웃음으로 달려오는 리트리버를 볼 때면 죄책감마저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고작 나에게, 그것도 아무 조건도 없이 저런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도 불공정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살아도 너의 그 웃음을 닮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가능한 자주 그 웃음을 마주하고 싶을 뿐이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키워온 꿈이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의 반대이지만, 지금은 나 역시도 그 꿈을 그냥 꿈으로만 두려 한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게 되더라도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한 생명의 무게에 대해 실감하게 된 탓이다. 그것은 인형이 아닌 살아 숨쉬는 생명체이기에 예뻐하기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신경 써줘야 하는 부분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고 그 과정을 겪으며 행복보다 불편이 커질지도 모른다. 금전적인 부분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고 체력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제서야 못하겠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나로썬 한 생명을 책임지고 그것의 세계로 자리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언젠가는 다가올 이별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개와 인간의 수명 차이는 명백하므로 웬만하면 그 아이는 나보다 훨씬 빨리 생을 마감할 텐데 그걸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할 고통이 될 것 같으니 차마 발을 딛지도 못하겠다. 그러니 나는 그냥,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그 아름다운 존재를 한없이 감상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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