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한 이유
‘책’을 쓴 ‘작가’라는 타이틀은 1회에서 얘기했듯이 가당치도 않고 부끄러울 뿐이다. 단순한 한국인의 겸손이 아니라,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없다. 섬세하게 기획한 것도 아니고, 글마다 통일성도 없고 명확히 주제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이석원 작가의 「보통의 존재」를 보고 나도 그런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의 글은 날것같이 살아 숨 쉬는 매력이 있으면서도 거칠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게, 유려하게 마음에 닿았다. 나의 글은 어느 정도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했으나 보는 이의 마음은 딱히 고려한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떨 땐 과하게 우울하거나 뜬구름 잡는 헛소리처럼 보였을 것도 같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었지만, 또 연재하는 동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힘들었던 때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이 글들을 쓰길 잘했다. 너무 힘들고 아팠던 때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글을 썼고 그러면서 정리할 수 있었다. 성장했다고 이야기하긴 그렇지만 회복은 했다. 글을 쓰면서 뒤죽박죽 엉켜있던 감정들은 나름대로 분류가 됐다. 우울은 여기, 분노는 저기, 무력감은 또 다른 어디에. 그렇게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아수라장 같았던 내 속이 나름 깔끔해졌다.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과 잘 정리된 것은 분명 다르다. 그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인다. 어떤 것을 갖다 버리고 어떤 것을 간직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지가 보인다. 뒤섞여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이제 볼 수가 있다. 갖다 버리는 일은 아직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에게 청하는 화해」라는 이 제목은, 사실 고독과 이별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지었다. 고독이 나를 떠나주지 않을 거라면, 내가 그를 떠나갈 수도 없는 거라면 조금 다른 형태의 관계를 맺고 싶었다. 원수지간처럼 으르렁거리고 싶지는 않았던 거다.
물론 그조차도 너무 어렵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희망사항으로만 평생 남겨둘 수도 있다. 그것은 분명 또 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
그럼 그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은 또 글을 쓰겠지. 내가 느끼는 것들을 토해내고, 정리하고 또 지금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런 방법이 계속 통하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른 방법을 또 찾아보면 되니까. 어쩌면 글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한 해를 마칠 때까지 이 글을 계속 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유독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던 한 해였고 무엇으로라도 표현하고 털어놓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원래의 고통과는 다른
스트레스가 쌓이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마취 역할을 해줘서 좋았다.
지금 이 책은 이렇게 끝내지만 나는 계속 고독에게 화해를 청해볼 테니, 아주 끝은 아니다. 그 일은 죽을 때까지 계속하게 될 것이고 그럼 나는 또 글을 쓰겠지. 나의 외로움에게 마지막을 한 마디를 건네며 마치고 싶다. 잘 좀 지내보자,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