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그녀

넘치지만, 그래서 즐겁다

by 메종무던

남의 가방 속을 구경하는 걸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이라고 부른다.
유튜브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연예인들이 립스틱 하나, 노트 한 권을 꺼내면 사람들은 거기서 취향과 성격을 읽어낸다.
가방은 은근히 솔직하다.
심플한 사람은 가볍고, 불안이 많은 사람은 무겁다.


나는 전형적인 ‘보부상형 인간’이다.
어깨가 저녁마다 뻐근하다는 게 증거다.


어깨에 짊어진 작은 창고


내 가방은 늘 라지사이즈에서 시작된다.
노트북이 들어가는 건 기본, 자그마한 가방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속을 열면
햇살과 소나기를 모두 막아줄 양우산,

“나는 언제든 생산적인 사람이다”라는 기분을 주는 아이패드와 접이식 키보드,
무게감으로 존재를 주장하는 미니 마사지건,
화장품으로 가득 찬 파우치,
두통약과 밴드까지 챙긴 상비약 주머니가 나온다.


내 가방은 작은 창고 같고, 때로는 휴대용 생존 키트 같다.


손바닥만 한 안도감


파우치를 열면 풍경은 더 진지해진다.
칫솔과 치약, 작은 튜브형 세안제, 로션 샘플, 작은 빗, 괄사까지.
급히 여행을 떠나도 며칠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만큼 알차다.


아침마다 ‘이게 필요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움직인다.
정작 쓸 일은 거의 없는데도, 없는 상태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결국 또 넣는다.


채웠더니, 으쓱은 덤


이 모든 건 나를 위한 준비고 은은한 만족감을 차오르게 한다.
불안을 달래고, 하루를 든든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러다 가끔, 이 가방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팀장에게 깨진 동료가 “두통이 난다”라고 하면 약을 건네고,
새 구두를 신고 뒤꿈치가 까진 친구가 “근처에 약국이 있나?”라고 물으면 쓱 밴드를 내민다.


나 편하려고 챙긴 물건일 뿐인데,
내 만족이 흘러넘쳐 다른 사람에게 스며드는 순간 같은 것.


보부상 그녀의 방식


내 가방은 불안과 안도, 그리고 작은 뿌듯함이 섞여 있는 세계다.
무겁지만 그 무게 덕분에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진다.


오늘도 한쪽 어깨가 기울 만큼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그 안에는 아마도 쓰지 않을 물건들과, 언젠가는 쓸지도 모를 여유가 함께 들어 있다.


그러다 누군가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이거 있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조금은 든든하게,
조금은 장난스럽게 말한다.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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