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의 또 다른 이름, 콤플렉스
어른이 되면 여드름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 말은 마치 “겨울이 오면 살이 빠진다”는 말만큼 근거 없었다.
서른아홉의 거울 속에서도 여드름은 여전히 개근상처럼 출석한다.
피부과 진료가 아니라 근무 태도로 징계해야 할 수준이다.
내 얼굴에는 오래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춘기 여드름이 지나간 자리, 흉터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피부의 요철이겠지만, 내게는 ‘과거가 점자(點字)로 기록된 흔적’처럼 보인다.
안경점 거울 앞에서도, 사진관 조명 아래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늘 그것이었다.
새로 한 파마보다 진하게, 웃을 때 잡히는 주름보다 선명하게.
한 번은 백화점에서 눈썹 모양을 잡아주는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
점원이 내 얼굴을 보며 “어머나—” 하고 감탄사를 내뱉자, 나는 곧장 “피부가 안 좋죠?” 하고 먼저 방어막을 쳤다.
그녀는 웃으며 손사래를 치더니 말했다.
“아니에요, 속눈썹이 정말 길고 예쁘세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흉터에만 매달리느라, 내 속눈썹이 그렇게 성실하게 자라고 있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콤플렉스는 원래 그렇다.
남의 눈에는 먼지 한 톨인데, 본인 눈에는 북극 빙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얼굴이 크다는 걸 숨기려는 여자가 등장한다.
증명사진을 찍으며 머리카락으로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사진사는 자꾸 치우라고 한다.
객관적으로는 얼굴이 환하게 찍히는 편이 낫지만, 그녀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 역시 종종 상상했으니까.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내 흉터부터 탐사 기록에 남길지도 모른다고.
세월이 흐르며 흉터는 내 시야에서 조금 작아졌다.
거울 앞에서도 이젠 “그래, 뭐 어때” 하고 웃을 수 있다.
광고판처럼 매끈하지 않아도, 그 요철 덕분에 얼굴에 사운드트랙이 붙은 셈이다.
예전에는 흉터가 제일 먼저 보였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면 캐릭터 있는 얼굴이지.”
콤플렉스는 더 이상 숨길 짐이 아니다.
극복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할머니가 되어 노인정에서 피부 고운 친구를 만나면 나는 또 묻게 될 것이다.
“어이, 친구. 피부 관리 비결이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