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밤, 전설의 고향을 다시 켰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

by 메종무던

올여름밤은 유난히 무덥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고, 선풍기는 따뜻한 바람만 돌려댄다.


어렸을 적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여름 저녁, 운동장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피구를 하다가도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앉으면 서늘한 바람이 살결을 스치곤 했다. 땀을 훔치기도 전에 사라지던 그 청량함. 이제는 도시의 열기 속으로 증발해 버린 듯하다.


그 시절엔 에어컨이란 것도 특별했다. 집에선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고, 차가운 바람은 은행이나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이상하게도 불편했을 그 시절의 공기가 그립다.


요즘 혼밥을 하는 저녁이면 나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97년도에 방영된 <전설의 고향>을 챙겨 보는 것.


우연히 너튜브를 뒤적이다가 ‘아, 이거 뭐였지?’ 하고 눌렀는데, 몇 편을 연달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 프로그램이 무서워서 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만 들었다. 귀신이 나오면 눈을 질끈 감고도 굳이 채널은 돌리지 않던, 그 묘한 호기심.


구미호가 등장하고, 소나기가 내리는 밤에 선비가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으스스해야 할 텐데—
이제는 오히려 오래된 극장처럼 정겹고 익숙한 공기를 느낀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인간의 배신, 욕심, 탐욕.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교훈.


사람의 배신을 겪어 본 나이가 되어선지,

아니면 어리석은 실수를 해 본 어른이라서인지,

그 단순한 이야기가 더 깊게 다가온다.


나의 여름밤도 어느새 바뀌었다.

이불속에 파묻혀 귀신 소리만 듣던 아이에서, 혼밥 하며 교훈을 곱씹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무덥고 지루하기만 한 올여름도, 언젠가 그리움이 되어 돌아올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2층집의 여름밤처럼,
땀에 젖은 운동장과 플라타너스 그늘처럼,
창문 너머로 들려오던 매미 소리와 동네 개 짖음처럼.


지금은 그저 더워서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일뿐이지만,

훗날에는 슬픔과 기쁨, 그리고 배신마저도 다시 음미할 수 있었던—

조금은 깊어진 여름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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