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나의 레시피

브런치에서 다시 시작한 치유와 꿈의 기록

by 메종무던

영화 '줄리 앤 줄리아'에는 지친 일상 속에서 요리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주인공 '줄리'가 있다. 잘 나가는 친구들 틈에서 위축되고, 잔소리 많은 엄마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녀는 어느 날, 365일 동안 524개의 레시피를 완성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요리였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을 붙드는 유일한 끈이었다.


나 역시 고통 속에서 휴직을 시작하던 어느 날, 이 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통해 다시 걸어갈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나에게는 요리가 아닌 글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말주변은 서툴렀지만, 글만큼은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재미있다, 감각이 있다, 글에 힘이 있다는 말이 내 안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남겼다. 글쓰기는 나를 가장 진솔하게 비추는 거울이었고, 외로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붙잡는 유일한 도구였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나는 글의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글이라는 나의 요리를 올릴 식탁은 어디일까. 몇 년 전, 허술한 글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했던 브런치가 떠올랐다. 망설임 끝에 다시 원고를 펼쳐 들었다. 이번에는 조미료 대신 진솔함을 곁들였고, 결국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순간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나를 다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이제 나에게 레스토랑이다. 글을 요리하듯 내어놓으면, 독자들은 미식가처럼 짜고 달고 쓴 맛을 함께 음미해 준다. 어떤 이들은 공감과 격려를, 어떤 이들은 따뜻한 반응을 보내주며 글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덕분에 글쓰기는 더 이상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다. 누군가와 맛을 나누는 한 끼 식사가 되어, 내 삶을 조금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요즘 나는 다시 글을 쓰며 삶에 생기를 얻고 있다. 작은 목표도 세웠다. 연말까지 일주일에 세 편씩 글을 발행해, 적어도 두 권의 브런치북을 완성하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하루를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소재는 멀리 있지 않다. 힘겨웠던 직장생활, 처음 도시에서 보낸 낯선 날들, 불안과 초조로 얼룩졌던 기억들조차 글감이 된다. 고통조차 글로 옮겨 놓으면 어느새 삶의 재료가 된다. 글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순간들이, 글 덕분에 새로운 의미로 다시 살아난다.


며칠 전 만난 친구가 말했다. “예전처럼 단단해진 것 같아 보여.” 그 말이 참 고마웠다. 글이란 결국, 쓰는 순간마다 나를 찾아주는 과정이 아닐까.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마다 내 숨결이 묻어나고, 그것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비틀거리며 무너졌던 날조차 글은 잿더미 속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불씨는 다시 살아나 나를 데워 준다.


영화 속 줄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어느 날은 마음대로 익어주지 않는 문장 때문에 속을 썩일 것이다. 하지만 서투른 순간조차 결국은 맛을 완성하는 양념이 된다고 믿는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재료를 익히면, 어느새 문장은 제 모양을 찾아가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숨을 고른다. 언젠가 두 권의 브런치북이라는 나만의 레시피북이 완성될 때,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삶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


부디 이 꿈을 완주하여, 씁쓸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진 디저트 같은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브런치와 함께 이루고 싶은 가장 간절한 꿈이다. 그리고 언젠가 브런치라는 레스토랑에서 자라난 작가로서, 희망을 건네는 문장가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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