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는 여전히 어렵다
마트를 가든, 옷가게를 서성이든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이어가는 건
거의 재능에 가까운 기술이다.
“오늘 참외가 아주 잘 익었어요. 그냥 가져가세요.”
“어머, 정말 달다. 참외로 무침해도 맛있는데.”
“맛있죠. 무조건 맛있죠. 참외는 다이어트에도 최고예요.”
“아이고, 나 살 빠지면 사장님 덕분이지 뭐. 하하하.”
내 앞에서 참외를 고르던 두 분은
눈짓 한 번, 말 한마디에 호흡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간다.
참외 몇 개 사이에서 오가는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리듬이 부럽다 못해 경이롭다.
오래 맞춰온 듀엣 가수들의 즉흥 무대 같다고나 할까.
천성이 내성적인 나에게는 스몰토크가 왜 그리 어려운지.
주제 없는 몇 마디를 이어야 하는 순간이면
본능적으로 자리를 피한다.
어렵사리 꺼낸 말도 맥이 끊기고
이어지지 못한 채 공기만 어색해진다.
말은 허공에 흩어지고, 분위기는 괜히 무거워진다.
짧은 대화 한 줌이 이렇게나 부담스러울 수 있다니.
다섯 해째 다니는 미용실.
나는 여전히 책을 꼭 들고 간다.
원장님의 근황 토크를 20분에서 3분으로 압축하기 위해서.
나머지는 책 속 활자에 억지로 얼굴을 묻는다.
정수기 점검 날이면 더 우습다.
기사님이 호스와 공구를 챙기는 동안
나는 부엌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다시 부엌으로
의미 없는 산책을 한다.
결국 꺼내는 말은 늘 같다.
“날씨가 참 덥죠. 고생 많으세요.”
그리고는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DJ가 나 대신 매끄럽게 말을 이어가 주는
든든한 대타가 되어 준다.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나의 스몰토크 실력은 한 뼘도 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에너지가 바닥나 버린 듯하다.
겉보기엔 누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실상은 초면의 몇 마디에 진이 빠진다.
짧은 대화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면,
내 근육은 늘 방치된 채 쇠약해져만 가는 셈이다.
진지하게 생각한다.
스몰토크, 따로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닐까.
‘자기 계발서 100권 읽기’ 같은 도전보다
‘마트 사장님과 3분 대화 성공하기’가
지금의 나에겐 훨씬 절실하다.
앞에서 사장님께 더 크고 달큼한 참외를 선물 받던 손님을 떠올린다.
그녀의 웃음은 순발력이었고
말은 센스였으며
공기마저 화사하게 바꾸었다.
내가 부러워하는 건 참외가 아니라, 바로 그 기술이다.
사소한 순간에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생활 속 고급 스킬.
참외 무침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화의 맛을 살짝은 낼 수 있는
그 기술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