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무게, 무심의 가벼움

왕자님과 한 팀 되며 깨달은 내려놓기

by 메종무던

“야, 우리 회사 신입 들어왔는데 진짜 장난 아냐. 회의 중에도 퇴근 시간 되면 벌떡 일어나더라니까.”


친구의 하소연에 피식 웃었다.

듣다 보니, 눈앞에 스쳐 가는 얼굴 하나.

우리 조직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쩌다 이 자리에 들어왔지?” 싶은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중에서도 최근 우리 팀에 들어온 막내는 유난히 독특했다.


그는 경계선을 그어놓은 듯 자기 몫의 일만 했다.

선 너머는 마치 투명한 벽이라도 세워둔 듯, 아예 발길조차 들이지 않았다.


그 해 회사에는 유독 크고 작은 행사가 많았다.

행사가 끝나면 의자를 나르고 집기를 정리하는 건 자연스레 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그럴 때마다 막내는 기가 막히게 사라졌다.


아예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돈 팔촌이 몇 번이나 돌아가신 건지, 그의 족보는 대하드라마 한 편으론 모자랄 정도였다.


남겨진 자리에는 허탈함이, 내 안에는 체념 반 체념 아닌 무언가가 차올랐다.


행사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회의실 정리나 프린터 용지 채우기 같은 작은 일들.

팀원이라면 누구나 돌아가며 맡는 그 일에도 막내는 손을 대지 않았다.


부탁을 받으면 동그란 눈으로 대답했다.

“아, 다음부터 할게요.”


‘다음’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내 눈에는, 못한다기보다는 애초에 하지 않겠다고 정해둔 사람처럼 보였다.


점심시간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가 외진 곳에 있어 팀원들이 돌아가며 식사를 위해 차를 몰았다.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었다.


막내 차례가 되면 그는 늘 멀뚱히 서 있었다.

처음엔 운전이 서툰가 싶었지만, 퇴근길 고속도로를 시속 80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못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나는 처음엔 어르고 달래도 보고, 혼도 내봤다.

그러나 두 손 두 발 다 든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쳐가는 건 늘 내 쪽이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나를 바꿔보았다.

'왕자님처럼 모셔주면 편하다.' 다짐하고,

'기대를 내려놓자.'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늘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일했다.


주어진 일은 물론, 빈틈을 메우는 것까지 내 몫이라 여겼다.

책임은 언제나 내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막내는 달랐다. “내 일 아니면 안 한다.”

그것이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물론 그 방식이 결코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성실은 나를 무겁게 했고, 무심은 그를 가볍게 했다.


“살아남는 방식은 꼭 하나가 아니구나."

잔인하지만 조직은 성실한 사람만 살아남는 곳이 아니었다.

씁쓸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딱 책임의 무게를 덜어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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