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인연과 오래 머무는 우정 사이에서
시절친구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하지만 결국은 흩어지는 인연.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우정도 어느 순간 빛을 잃고, 단단하던 매듭조차 느슨해진다. 어린 날의 나는 그 끈을 끝내 붙잡으려 애썼다. 연락을 이어가고, 안부를 챙기며,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제는 안다. 관계는 억지로 이어 붙인다고 오래가는 것이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야 제 모양을 잃지 않고, 바람처럼 스쳐가야 다시 맑아진다.
요즘은 시절친구의 가벼움이 오히려 위안이 된다. 주말 아침 잠깐 함께 걷는 산책, 소박한 점심 한 끼 정도의 사이. 서로 속속들이 알지 않아도 괜찮고, 묵직한 약속이 없어도 충분하다. 짧은 웃음과 작은 위로만으로도 삶은 한결 덜 밋밋해진다.
어느 날에 홀로 문경새재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 여섯 시, 창문을 여니 공기 속에 묘하게 달라진 결이 스며 있었다. 숲은 고요했고, 바람은 계절을 바꿔치우듯 서늘했다. 촉촉한 흙길은 발을 단단히 받쳐주었고, 나무들은 묵묵히 길을 지키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잎사귀 사이로 햇살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멀리 3 관문까지 오를 생각이었지만 어느새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발걸음은 2 관문에서 멈추었다. 약수터 옆 쉼터에 앉아 주섬주섬 바나나를 꺼내 먹는데, 옆자리에서 노년의 두 신사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으나, 그 안에는 세월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내일은 아마 못 올지도 몰라. 둘째네가 집에 온다네. 확인해 보고 저녁에 알려줄게.”
“그려, 혼자는 재미없지.”
두 분은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대신 나란히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침묵이 곧 우정이었고, 그 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곧 대화였다. 말이 사라져도 마음이 이어지는 사이, 바로 그런 관계였다.
나는 시절친구를 좋아한다. 스쳐가듯 찾아와 웃음을 나누고, 어느 날 문득 사라져도 서운하지 않은 인연. 한때의 내 시간과 함께한 존재. 그 가벼움이 내 삶을 지탱해 준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벗,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 함께 늙어가며 나란히 누워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친구. 그 깊이가 부러웠다.
시절친구는 내 삶의 한 장면을 증명해 주는 이들이고, 평생의 벗은 나의 모든 장면을 증언해 주는 사람이다. 누군가 평생의 벗을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떠올릴 이가 있다면, 그는 분명 더없이 큰 행운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날 문경새재길에서 스친 두 분의 대화와 침묵은 내 안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그날의 하늘은 혼자였지만, 마음은 두 사람 쪽에 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