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위대한 생존 기술
콜라를 끊으려던 나는 녹차에 붙잡혔다.
건강을 얻은 듯 뿌듯했지만, 새벽 두 시를 넘긴 시계가 낯설게 반짝일 즈음 녹차의 뒤끝이 모습을 드러낸다. 잠은 달아나고, 눈 밑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럼에도 티백을 또다시 물에 담근다. 설탕물보다는 낫잖아.
적당히가 안 되는 나를 조금 원망하며 애써 눈을 감아본다.
누구나 자신만의 ‘합법적인 중독’을 품고 산다. 쇼핑, 덕질, 운동, 야식, SNS.
겉으로는 취미라 부르지만, 사실은 마음의 균형추 같은 존재다. 드라마의 “다음 화 자동 재생” 버튼, 새벽 편의점 앞에 놓인 신상품 과자, 지루할 틈 없이 올라오는 헬스장 인증샷.
언뜻 사소해 보이는 풍경들이 삶의 한쪽을 은근히 지탱한다.
내 중독의 역사도 제법 다채롭다.
한때 자전거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비 오는 날 우비를 걸치고 페달을 밟던 모습이 그때는 의지로 보였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함에 가까웠다. 결국 발목이 먼저 신호를 보냈고, 이어서 실내 게임으로 흘러들었다. 땀 대신 전기세가 새어나간 셈이었고, 중독은 다른 옷을 입고 다시 찾아왔다. 커피를 줄이겠다며 허브차에 집착하고, 드라마를 끊겠다고 다짐하자 이번엔 유튜브의 끝없는 알고리즘에 포획되었다.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알멩이는 그대로였다.
인간은 이 돌려 막기에 묘하게 능하다. 대출을 굴리듯 새 중독으로 옛 중독을 갚아나간다. 건강을 명분으로 시작한 습관이 불면의 원인이 되고, 휴식이라 부른 취미는 지갑을 은근히 가볍게 만든다.
웃음과 한숨이 동시에 새어 나오지만, 그 안에는 어쩐지 애틋함도 배어 있다.
그렇게라도 하루를 건너가는 게 우리이므로.
중독들이 모두 나쁜 녀석들인 것은 아니니까.
출근길 라테 한 잔은 흐릿한 아침을 깨우고, 뜻밖에 시작한 취미 하나는 일상에 작은 빛을 들여놓는다. 활력과 회피의 경계는 흐릿하지만, 그 모호함 덕분에 우리는 잠시라도 숨을 고른다.
벗어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검색창에는 ‘카페인 없는 차’가 떠 있고 손에는 여전히 녹차 티백이 들려 있다.
새 굴레가 도착할 때마다 중독은 얄밉다.
그리고 말한다.
그건 내 삶에 흘린 잉크 같은 것이라고.
불완전한 인간이 오래전부터 익혀온 살아남기의 방식, '중독'.
어설프고 때로는 우스꽝스럽지만 적정량을 모르는 고장 난 사랑의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