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의 유혹

주운 지폐가 불러낸 복리의 꿈

by 메종무던

양산을 받쳐 들고 그늘을 따라 걷는 오후, 킥보드 소리가 도시의 정적을 가른다. 불쾌한 기척을 눈길로 밀어내던 찰나, 발치에서 낯선 빛이 번쩍인다.


만원이다.
구형 지폐의 선명한 푸른색이 회색 아스팔트 위에 놓여, 마치 무대 위 소품처럼 도드라진다.


주변을 훑는다. 주인다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걸음을 서두른다. 몸을 낮춰 지폐를 집어 든다. 초등학생 이후 길에서 돈을 줍는 경험은 없었다. 행운이란 단어가 목구멍을 간질이고, 입가에는 은근한 웃음이 스민다.


만원은 경계의 금액이다. 천 원이라면 대수롭지 않고, 오만 원은 너무 무겁지만, 만원은 어정쩡하다. 애매함이 주는 달콤함 속에서 양심과 욕심이 팔목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이 돈이 과연 주인을 찾아갈 법적 가치가 있을까. 우스꽝스러운 물음이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멀지 않은 골목 끝, 복권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라면 시선도 주지 않았을 풍경이 오늘은 유난히 화려하다. 간판의 붉은 네온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듯 나를 부른다. 발걸음이 알아서 그곳으로 향한다. 주운 만원 전부를 쏟아붓는 선택, 생의 첫 복권이 그렇게 손에 들어왔다.


토요일 밤, 번호는 매끄럽게 비껴갔다. 뜻밖에도 실망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미 일주일 동안 나는 만원이 불러낸 환상에 충분히 취해 있었다. 종잇조각 한 장이 마음속에서 억 단위의 계좌를 불려냈다. 아직 오지 않은 행운에 스스로 도취되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웃음을 삼켰다.

"아, 이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불가능하다는 확률에 돈을 거는구나."


만원이 나를 부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짧은 시간 동안 호사스러운 공상으로 이끄는 힘은 충분했다. 주머니는 비어 있었지만, 상상 속 통장은 기묘한 복리로 불어나고 있었다.


공짜로 얻은 만원이 불러낸 황홀한 환상은 사라지고,

길바닥에서 번뜩이던 지폐처럼 그 허망한 꿈 또한 푸른빛으로 스며들었다.

잠깐이었으나 확실한 빛.

도시가 장난처럼 남겨둔 반짝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소심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