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라움이 머무는 자리

소소한 촉감으로 길어 올린 행복

by 메종무던

버스를 기다리던 오후, 학교 앞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로 정거장이 갑자기 붐볐다. 가방마다 인형 키링이 주렁주렁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갈색 곰돌이에서부터 통통한 돼지, 달콤해 보이는 도넛 모양까지, 제각각의 작은 장식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풍경은 유난히 경쾌했다. 사소한 물건이지만, 저마다의 취향이 담긴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문득 내 검은 가방이 허전해 보여 작은 토끼 인형을 매달았다. 까만 털은 손끝에 닿을 때마다 보드랍게 일렁였고, 괜스레 자꾸만 쓰다듬고 싶어졌다. 촉감 하나가 주는 위로가 이토록 선명할 줄은 몰랐다. 치과 진료를 앞두고 긴장이 몰려오던 순간에도 그 인형을 손에 쥐고 호흡을 고르며 버틸 수 있었다. 콧등에 땀이 맺히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털끝을 매만지자 두려움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작은 부적 같은 보드라움이 끝내 진료실을 지나가게 만든 것이다.


보드라운 촉감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다독이는 힘을 품고 있다. 늘어진 면잠옷 대신 매끈하게 흐르는 새 옷을 장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몸을 미끄러뜨리듯 이불속에 파고들면 어깨에 얹힌 무게가 스르르 흩어졌다. 고단했던 시간이 물처럼 흘러내리고, 부드러움이 공기의 온도를 바꾸는 순간이 찾아왔다.


살아 있는 촉감의 정점은 역시 동물에게서 온다. 손바닥에 고양이 털이 스칠 때의 따뜻함은 단숨에 긴장을 풀어낸다. 내 곁에 반려를 둘 여건은 닿지 않아 오가다 만나는 길냥이에게 마음을 건넨다. 짧게 쓰다듬을 수 있는 몇 초 동안, 빈자리가 채워지고 세상이 잠시 고요해진다. 그 소박한 접촉 하나가 온종일 흔들리던 균형을 다잡아 준다.


세상은 매번 거칠게 다가온다. 예고 없는 사건이 마음을 긁어내고, 무게를 더한 의무가 돌덩이처럼 얹힌다. 그럼에도 인형의 털끝, 잘 맞는 옷의 결, 길냥이의 체온 같은 작은 부드러움들이 삶을 가볍게 한다. 사소하고 소탈한 즐거움.


거칠게 몰아치는 날들의 흐름 속에서도 부드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을 손끝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순간, 메마른 시간은 비로소 안정을 얻는다. 이 소소한 촉감에서 은은한 행복을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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