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마음이 세상을 읽는 방식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깃든 건 배짱보다 떨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먼지처럼 가벼운 일이, 내겐 파도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가스 검침원이 집에 들어섰던 날도 그랬다. 에어컨이 고장 난 부엌에서 흘리는 땀이 안쓰러워 얼른 음료수를 내밀었다. 환히 웃으며 받아들였지만, 돌아간 뒤에야 유통기한이 고작 이틀 남았음을 알아챘다. 혹시 ‘처리용’으로 건넨 건 아닐까.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사소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회사에서도 동료에게 털어놓았다. 돌아온 대답은 담백했다. “별일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늘 그렇듯 뒤에 달린다. “참, 소심하네.”
소심인의 시선은 늘 멀리 간다. 눈앞의 장면에서 그치지 않고, 백 걸음 너머의 가능성까지 당겨온다. 출근길, 인사를 환히 받아주던 동료가 그날따라 시선을 비껴가면 머릿속은 금세 분주해진다. 어제 회의에서 실수한 건 없었나, 지난주 대화에서 무심코 던진 농담이 빗나간 건 아니었나. 소심인의 마음속에는 늘 사건 수첩이 열려 있다.
점심 식탁에서는 마지막 남은 메인 반찬, 이를테면 떡갈비 하나를 끝내 집지 못하는 사람. 젓가락은 허공을 맴돌다 밥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사람들은 양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망설임이 입안에서 삼켜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선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묘한 특혜도 있다.
카페에서는 구석을 택한다. 시끌벅적한 한가운데서보다 물러난 자리에 앉아야 비로소 숨이 고른다. 잔에 맺힌 물방울, 웃음소리에 묻어나는 온도 같은 것들이 마음에 고요히 들어온다. 남들이 배경으로 흘려보내는 순간들이, 소심인의 감각에는 오래 앉아 머문다. 작은 소리 하나, 빛의 움직임 하나가 마음속에 결을 남긴다.
지하철에서는 작은 기침 한 번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누군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괜한 미안함이 목구멍에 먼저 맺힌다. 그러면서도 다른 이의 표정에서, 말끝에서, 마음의 온도를 읽어내는 감각은 누구보다 빠르다.
소심인의 하루는 분주하다. 남들이 흘려보낸 말속에서 가시를 집어내고, 무심히 지나친 표정 속에서 균열을 감지한다. 큰 배의 선장이 항로를 살핀다면, 소심인은 물결의 미세한 떨림을 기록한다.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누구보다 촘촘히 사람의 결을 짚어내는 이들. 얇지만 깊은 심지를 가진 사람.
대범함은 다음 생에 맡긴다. 지금은 소심이라는 감각으로 세상을 읽는다. 작은 떨림이 새긴 무늬는 흔들려도 사라지지 않는다. 끝내 남아 울림이 되는 한 줄의 선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