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골의 미학

흔들려도 결승선은 밟는다

by 메종무던

어떤 하루들은 유난히 진부하게 흘러간다. 성과라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채로 시간은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그저 스르르 흘러내린다. 그런 날이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비결로 저토록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일까.


세상에는 신기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책상 위에서 한 줄을 더 적고, 길 위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이들. 눈에 띄지 않는 그 사소한 끈기가 결국 삶을 다른 결로 바꾸어놓는다는 걸 알면서도 범인들은 그저 신기한 동물을 관찰하듯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다.


그런 철인들 앞에서 약골은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결심은 비닐봉지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다짐은 종이집처럼 쉽게 무너진다. 월요일의 계획이 수요일쯤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기본이며, 새해 첫날의 야심 찬 목표들은 1월 말이면 벌써 창고 깊숙한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약골에게도 나름의 작은 미학이 있다. 자주 주저앉는 대신 다시 일어서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 강철 같은 의지는 없을지언정 고무공 같은 탄성만큼은 있다. 백 번 넘어지면 백 번 다시 일어서고, 백 번 포기하면 백 번 다시 시작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반복 속에 의외의 힘이 숨어 있다.


약골의 인생은 꽤나 드라마틱하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자 재기의 순간이다. 오늘 무너졌다고 해서 내일도 무너질 거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아니, 단정할 여유도 없이 또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득한 넘어지는 기술, 일어서는 기술은 어느새 전문가 수준에 이른다.


강한 사람들이 끝까지 버티며 완주하는 마라토너라면, 약골들은 중간중간 쉬어가면서도 결국 결승점에 도착하는 여행자들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멈추지도 않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다. 아니, 꾸준하다기보다는 '꾸준히 불꾸준한' 것이 더 정확할 터이다.


삶을 오르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직선으로 달려가고, 어떤 이는 계단처럼 오르내리며 올라간다. 후자의 경우 중간중간 평평한 구간에서 숨을 고르고, 때로는 한 계단 내려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방향은 위를 향한다. 약골은 대체로 이런 계단식 인생을 택한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삶의 깔끔함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약골의 지그재그 인생에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 넘어질 때마다 보게 되는 다른 각도의 풍경들, 다시 일어설 때마다 맛보는 작은 성취감들.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내는 특유의 질감.


세상은 그런 약골들의 힘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 이상한 끈기로,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하는 그 어설픈 용기로. 약골이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재능이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체득한, 흔들림의 기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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