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빛나는 도시, 여전히 남은 사춘기
만화 속 영심이를 처음 본 건 오래전이었다. 유난히 소란스러운 소녀, 사소한 일에도 눈물짓고 또 쉽게 웃던 아이. 그때는 그저 과장된 감정극처럼만 보였다. 어린 눈에는 별것 아닌 일로 요동치는 모습이 낯설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문득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영심이는 사춘기라는 틀 안에서만 머무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의 불안과 흔들림은 성장의 기록이자, 지금의 나를 닮은 초상에 가깝다. 한강 둔치에 홀로 앉아 공허를 마주하던 장면은 낯설지 않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단단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균열에도 쉽게 흔들린다.
가끔은 믿었던 이에게 낯선 그림자를 보고, 뜻밖의 순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건네는 말에서 힘을 얻는다. 배신은 여전히 불쾌하게 다가오고, 서툰 위로조차 때로는 견딜 만한 날을 만든다. 공간만 달라졌을 뿐이다. 교실은 사라졌지만 회의실이 있고, 운동장은 없어졌지만 카페와 술집이 있다. 마음의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도시는 언제나 불빛으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림자를 안고 걷는다. 나 역시 그 무리 속에 섞여 살아간다. 창가에 비친 달빛 앞에서 소원을 빈다는 행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조금 우습고 조금은 씁쓸하다. 어른이라면 꿈 따위는 접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어쩐지 마음은 여전히 파랑새를 좇는다. 더 나은 내일, 회복되지 못한 가능성, 혹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욕망 같은 것들.
영심이는 서툴렀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회복했다. 그 단순한 진폭이 오히려 성숙이라는 이름의 무게보다 더 정직하게 보인다. 지금의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계산하지만, 감정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흔들리고,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변화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완의 감정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일에 가깝다. 도시는 차갑고, 사람들은 무심하며, 삶은 반복된다. 그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영심이가 산다. 흔들림을 끝내 지워내지 못한 채, 도시의 불빛 속에서 또다시 웃음을 찾으려는 영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