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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화 Oct 29. 2023

시인의 기도, 가상에서 발현되는 힘의 실재

앨리펀트 맨을 위한 기도 -현희를 위하여

기도란 희망이고 자유고 선물이며 변화입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꿈입니다

앨리펀트 맨보다 더한 몰골이지만

작은 몸매와 예쁜 손을 가진 현희입니다     

신경섬유종으로 뒤통수는 움푹 파이고

눈은 무너져 양 볼에 붙고

코의 형태는 턱쯤 내려와 있고

입은 목 아래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모습에 절망하는데

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일 만에 오만의 천사가

십억의 사랑의 탑을 세웠습니다     

당신의 바람이 희망을 주는 일이라면

현희를 제 얼굴로 돌려놓으십시요

그 대신 가엾은 이들의 소망이 밀리지 않게

나를 위한 기도는 멈추겠습니다

-최진자 시집 『하얀 불꽃』-


한 편의 시가 세상을 달라 보이게 한다.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을 빼앗아 갈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어가 심중을 굳히게도 한다. ‘기도’는 그렇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기도와 아들의 기도가 그렇고, 나라와 이웃을 위한 기도와 병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그렇다. 하나의 기도 속에 일체의 숭고한 힘이 들어 있다.

 「앨리펀트 맨을 위한 기도」는 시인의 기도이기에 각별하게 느껴진다. ‘현희를 위하여’란 부제가 가리키듯 신경섬유종을 앓는 현희를 위한 기도다. 그녀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되어 시청자들을 얼어붙게 한 희소병 환자다, 신이 손을 놓은 듯 참혹한 모습에 화자는 당혹감을 느낀다. 나와 같으면서도 너무나 다른 차이에 직면한 아찔함이다. 과연 이 가녀린 34세의 여인에 대한 신의 뜻은 무엇일까. 존재의 불행을 마주함에 시인은 절망한다. ‘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현희를 제 얼굴로 돌려놓으십시오’. 이 직언의 문장에 계시를 내릴 신은 과연 나타날 것인가. 아마도 언젠가는 나타나리라 믿는다. 갖가지 비의로 포장된 존재의 매혹을,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심연에 가 닿게 된다. ‘사일 만에 오만의 천사가/십억의 사랑의 탑을 세웠습니다’. 그녀는 몇 차례 수술을 받고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수많은 손길이 모여 이루어낸 기도의 힘이 우리를 더욱더 숭고함으로 가치를 팽창시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의 의미란 무엇일까. 기도가 이루어지는 지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신이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 우리가 만든 가상의 질서일 수도 있다. 가상이지만 실재함이다. 서로 있다고 믿는 상호주관적 실재이기에 힘이 있다. 협력하고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잠재력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기도란 희망이고 자유고 선물이며 변화’ 라는, 신에 대한 믿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이 시가 수록된 최진자 시집 『하얀 불꽃』은 첫 시집임에도 시인의 남다른 시적사유가 느껴진다. 역사·사회적 문제의 현장을 왜곡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상상력으로 확장 복원해 선명한 주제를 담아낸다. 「앨리펀트 맨을 위한 기도」 또한 비극적 현장에서 발현된 생명 존엄에 대한 연민과 치유를 위한 국민적 염원이 담겨있다. 황현산 평론가의  “몸으로 싸워 얻어낸 사실성이 우리 문학에 새로운 사실주의를 열고 있다.”라고 말한 바처럼, 시는 온몸으로 밀고 가는 실존적 정신의 산물이다. 시인의 다른 시「펜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에서도 시의 힘이 위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사실임을 보여준다. 사회적 정의와 소통을 이루어낸다. 

 풍요롭지만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까지 만들며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기아와 전쟁, 질병 같은 문제들은 계속 신의 손길을 기다린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아픔과 상처가 더욱더 두 손을 모으게 한다. 이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변화와 공존을 위한 기도의 나아감이라고 시인은 우리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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