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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화 Sep 25. 2023

상징적 동물, 감성적 인간

거울 뉴런

‘사이’의 벼랑을 없애고

‘틈’의 아찔함을 메워주는

거울 뉴런

내 머릿속 어딘가에

마술의 거울 하나 숨겨두었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이해하고

이마의 주름에 공감하는 거울

언젠가 당신이 슬픔에 빠졌을 때

그 먹먹한 슬픔의 입자들이

나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지요     

당신의 눈빛에서 초승달이 지고

만월이 두둥실 떠오른 날이면

나는 거울을 들고

달빛을 내 안으로 끌어들여요     

그날

달 거울에 금이 가던 날

“아프니“ 나도 아프단다.”

당신이 아픈 것보다 더 많이 아픈

내 머릿속의 거울 뉴런     

이제야 당신이 들리기 시작해요  (거울 뉴런/조은설)


 거울 뉴런Mirror neuron은 1996년 리촐라티 교수 연구팀이 원숭이 뇌신경을 연구하면서 밝혀냈다고 한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을 똑같이 받아들이게 하는, ‘타인의 행동을 비춰주는’ 이 신경세포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인간에겐 감정의 공감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도 관여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중요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조은설 시인은 이를 소재로 대상과의 감정이입 과정을 짧고 신비롭게 묘사했다. 어떤 계기로 비롯된 슬픔, 아픔을 무엇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마술의 거울 하나 숨겨두었”다며, 신화적 상상력을 입혀 “마술의 거울”이라고 명명하는데, 이는 화자가 어떻게 세계를 대하는지를 나타내는 기호, 감성의 창窓이다. 마술적인 만큼 “숨소리”, ‘주름“ 등 무엇이든 비춰주며, 적나라한 물상이 그대로 투영되더라도 치유와 회복의 힘이 가늠된다. “당신의 눈빛에서 초승달이 지고/만월이 두둥실 떠오른 날이면/나는 거울을 들고/달빛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근원인 ‘당신’이 있어서다, 당신의 눈빛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만월이 떴을 때 거울을 비춰보면 그만 금이 가고 만다. 그리고 “당신이 아픈 것보다 더 많은 아”픔을 느낀다. 이렇듯 거울을 비춰본다는 것은 물상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써 그 과정의 진정한 공감은 아픔의 체험이 따라오는 것이다. 「우포늪에서」에서 “당신이 아닌 내가 무너진 것이 백배나 나은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듯이 그 크기와 넓이만큼 “당신이 들”리게 된다. 이는 감정의 벽을 허물고 귀를 열고 고개를 끄덕인 결과다. 거울뉴런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핵심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은 타자와의 공감능력을 기본 정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도덕이나 윤리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히틀러의 전범자들이 공무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전 인권을 생각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는 아렌트의 ‘무사유’에 대한 지적은 바로 고통을 대하는 공감능력에 대한 숙고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여기서 당신은 누구이며, 왜 아픈 것일까.

 카시러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한갓 물리적 우주에 살지 않고, 상징적 우주, 즉 언어, 예술, 과학, 신화, 종교적 형식에 깊게 둘러싸여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위적인 매개물의 개입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징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의 경험이나 인식능력에 의한, 대상의 내적의미가 투사된 상징 기호로써 ’당신’을 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각각의 시편들에 나타나는 “당신을 따라”돌며, “당신의 숨소리”, “당신의 마음 품고”, “내 핏속에//당신”, “당신의 말간 꿈”, 당신의 “말씀 한 구절”…, 마치 시의 장치처럼 설정한다. ‘당신’을 종합해보면 시의 원천이고 생명력인 동시에 지극히 사모하는 대상으로 설렘과 긴장감을 준다. 그리하여 로고스로 쌓아올린 신화 혹은 종교적 상징형식이 아닐까 추측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빈 이미지의 깊이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상징과 은유의 기법으로 시의 깊이를 획득한 시인의 시적 성취를 감안하면 ‘당신’이라는 기표가 하나의 기의로 통합되기 보다는 모호한 형태로써, 여전히 괴롭고 아파야 할 일이 많은 현대의 “평택의 원영이”「비정」, “허리가 꺾인 제비꽃”「제비꽃」 등 다양한 대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사이”와 “틈”을 메우고 “너와 나의 장벽을 없애주”는 공감능력으로 세계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아가 새로운 상징형식을 창조하는 바탕이 된다.

 우리는 “우주의 발치에 걸터앉아 유장하게 흐르는 별들의 강을 바라보”「쿼렌시아」며 끊임없이 흐르는 감성적 주체다. 육체에 속박된 존재이면서 자유롭고, 고통받는 몸으로 경탄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특히 조은설 시집 『겨울 뉴런』은 맑은 영혼에서 우러러 나오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성의 충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슬픔까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술의 거울을 편편이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낯선 언어로부터 오는 신비한 떨림과 울림의 파동을 풀어내는 샤먼의 목소리와 닮았다. 그러나 수많은 고통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시가 주는 의미를 결코 초월할 수 없다. 시인은 우주를 유영하는 새이며 바람일지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실천의 문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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