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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이화 Nov 13. 2023

노동, 탈주하는 빛의 영토

감자를 먹는 사람들

때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판자집 앞에 이르자

발목을 삔 듯 멈칫! 선다

     

잠시 판자벽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니

마루는 희미한 램프등이 켜져 있고

땀에 찌든 듯한 작업복 차림의 검붉은 얼굴들,

식탁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담은 그릇이며

도시락만한 성경이 놓여져 있다

삽보다 두터운 손바닥으로 잔들을 움켜잡고 있는데

작두질 했을 팔 하나, 차를 따르는 동안

하루분의 식량 하루분의 희망 앞에

얼굴들은 말이 없다  

   

혀기를 느끼며 일어서는데 뿌드득!

갑자기 척추에서 은줄이 풀리는 소리,

눈치 챘을까 시선들은 아직 고정된 쟁기처럼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머물러 있을 따름이다

먼 길 떠나는 고행자의

비장한 결의 같은 것이 넘치고 있다 

    

감자줄기와 감자가 한 줄기 한 뿌리이듯

내일은 오늘이 연이어진 길인 것을 어찌 모르랴

엉겅퀴를 헤치며 이랑마다 타오르는 불꽃,

오늘은 비록 흙을 뒤집어쓰고 쓰러질지라도

후에 한 천사가 문을 열고

사원 불꽃을 다시 되살려 내리*  

   

오늘도 밤이 지나면 새로운 아침은

하루의 노역만큼 배당받는 은총,

하늘로 열려진 땅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심는 대로 결실을 맺으리라는

묵시 속에 해는 떠오르리라     

*보들레르의 시 「연인들의 죽음」에서 인용


-이광소 시집 『모래시계』에서


 언어는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생명이 달라진다. 어떤 언어는 오래되어도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 행진한다. 이광소 시집 『모래시계』의 언어는 익숙한듯해도 편편이 특정 메타포를 지녔다. 시적 감수성과 열정이 예술, 종교, 사랑, 혹은 시간으로 나타나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발한 모습을 하고 나아간다. 나와 타자, 그리고 사물들 지속해서 다양한 정동을 일으키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끌어낸다. 

 즉, 「감자를 먹는 사람들」처럼 묵직한 감성적 시선이 우리의 발길을 더욱 시의 세계로 재촉하는 것이다. 판잣집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 그곳에는 오직 사랑만이 인간을 대하는 답이라고 말하던 고흐의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이 있다. 어두운 색채의 이 그림은 농민의 궁핍한 삶이 주제가 아니다. 고향에서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진실을 빛과 어둠을 통해 조명한다. 어두운 실내 작은 램프등 아래 식탁에 둘러앉은 인물들의 상기된 표정은 시간이 흘러도 밀려나거나 도망치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흐는 위대한 밀레처럼 농민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가난하지만 자신이 가꾼 수확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농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는다. 예술적 미감이 뛰어난 시인은 위대한 화가에게 존경을 바치듯 노동의 은총과 숭고함을 담았다.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든 상상에서 끌려 나온 관념이든 좀 더 멀리 자신의 다리를 뻗으며 이렇게 재탄생하기도 한다. 그것이 마치 진리라도 되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땀에 찌든 듯한 작업복 차림의 검붉은 얼굴들,/식탁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담은 그릇이며/도시락만한 성경이 놓여져 있”는, 하루분의 희망과 양식으로 노동을 기념하는 인물들에게는 인간다운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 “먼 길 떠나는 고행자의/비장한 결의 같은 것이 넘”친다. 노동의 사다리에 올라섬과 닿아야 할 저쪽 빛의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림이 액자를 넘어 밖으로 나오듯 언어는 시를 뚫고 현실로 확장된다. “엉겅퀴를 헤치며 이랑마다 타오르는 불꽃”이 “감자줄기와 감자가 한 줄기 한 뿌리이듯/내일은 오늘이 연이어진 길”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틀, 그 빈틈없음을 본다. 지금은 고도화된 문명의 시간이고, 양분된 사회·계층적 힘든 환경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후에 한 천사가 문을 열고/사원 불꽃을 다시 되살려” 낼, 도착할 수 있는 그 무엇임을 가리킨다. 세계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곳이다. “하늘로 열려진 땅”이다.

 시인은 같은 현상도 다른 각도에서 감각하고 사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을 찾기 위해서다. 본래적 있음으로부터 인식되는 지각에 미학적 감각과 사유를 통과해야 삶이 곧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한발 나아가 노동(가난)의 세계에 가해지는 현대의 실존적 폭력에 제동이라도 걸듯 시인의 사유가 경건하다. 독자들에게도 멈칫 발길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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