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길
어느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잔잔하고 고즈넉한 목소리의 아나운서님이 "... 길에게 묻다"라는 가슴 저린 멘트를 할 때마다
"참 고요하구나"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았었다.
나는 오늘
길에게 묻는다.
산이 있어서 쉼이라는 여유를 알았고
산이 있어서 숨이라는 생명을 알았고
산이 있어서 덕이라는 배려를 알았고
산이 있어서 녹이라는 색을 알았고
산이 있어서 고난이라는 언덕을 알았고
산이 있어서 승이라는 기쁨을 알았고
산이 있어서 슬픔이라는 눈물은 알았고
산이 있어서 손이라는 의지를 알았고
산이 있어서 발이라는 투지를 알았고
산이 있어서 물이라는 샘을 알았고
산이 있어서 공이라는 터를 알았다
그리고
나무라는 벗을 알았기에
길 따라 걷는다.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그 누군가는 말한다.
산의 끝자락에는 무엇이 있을까?
산의 한고비 넘어서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하늘이 있고
구름이 있고
별이 있고
또
마음이 있으리라
그 마음에 한 부분은 산의 친구인
나무와
이름 모를 들풀과
아름드리 야생화가 자리 잡고
그 마음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나무는 산의 남편이요 아내요 자식이요
동반자이다.
그 나무가
한복처럼 산에 입혀진다.
그래서
산은 아름답다.
길이 없어도 산은 길을 알려준다.
집이 없어도 산은 뉘어 있게 한다.
료가 없어도 산은 온기를 덥게 한다.
인이 없어도 산은 흥을 나게 한다.
이정표가 없어도 산은 목적지를 알려준다.
화가 나서 울음이 그치지 않을 때 산은
기다려주고 참아준다.
내려다보고 올려다 보아도 산은 시기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 산에는 나무가 있다.
나무는
홀로 우뚝 서서 과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는다.
나무는
아래 것들을 무시하지도 조롱하지도 않는다.
나무는
하루살이 들풀이라도 여러해살이 야생화라도
같이 있음을 행복해한다.
나무는
자기 몸을 희생해서도 공유하기를 원한다.
나무는
근본 없는 잡풀이라도 같은 땅에 뿌리를 내딛는 그들을
사랑한다.
나무는
천지만물을 다스리라고 위임받은 인간들이
무수히 괴롭히고 자르고 상처를 주어도
단,
한 순간도 원망하거나 서원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찾아와 주기만 기다리고
다가와 주기만 원하고
잊지 않고 더불어 살아주기만 원한다.
그 산에 그 나무가 항상 있기에
오늘 나는 걷는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길에게 묻지 않아도
산은 길을 만들고
산은 언덕을 만들고
산은 정상을 세워
누구든 행복한 정상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곳이기에...
CBS 라디오 음악방송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부여 부소산성의 자연님과 문화재 관리자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