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사회 현상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낮에는 꿈을 좇고 밤에는 미친 듯이 놀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을 논했고,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요즘 20대들을 보면, 뭔가 다르다. 마치 자기 삶을 미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직장은 시시하고, 월급은 돈같이 느껴지지 않고,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대신, SNS를 보며 ‘언젠가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 속에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이 현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디지털 자아가 현실 자아를 감염시키다>
우리는 SNS 속에서 새로운 ‘디지털 자아’를 만든다. 문제는 이 디지털 자아가 현실 자아를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을 빌려오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짜 이미지들이 넘쳐난다. SNS에서는 모두가 디지털 노마드이고, 창업가는 쉽게 성공하고, 하루 몇 시간 일하면서 월 수천을 번다. 이런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노동의 무가치화:마르쿠제의 소비사회 비판>
한때 노동은 성공의 필수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이 퍼지고 있다. 마르쿠제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욕망을 조작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SNS가 ‘노력 없이 부자가 되는 방법’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다.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 부자가 되는 마인드를 심어준다는 인스타 피드, 경제적 자유를 향한 멘토링 – 다들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정보를 팔아서 돈을 번다. 결국, 노동은 구식이고, ‘정보’가 돈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퍼진다.
<니체식 허무주의: 노력해도 의미 없다는 패배감>
과거에는 ‘열심히 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이런 신념이 무너진 시대를 살고 있다. 부모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집 한 채는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아껴도 집값은 따라잡기 힘들고, 직장 생활은 고된데 월급은 늘 제자리다. 이러니 ‘노력해도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허무주의가 자리 잡는다. 니체가 말한 가치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렌트의 노동 개념: 노동은 지루하고, SNS는 흥미롭다>
하나 아렌트는 노동(labor)과 일(work), 그리고 행동(action)을 구분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너무 지루하고, SNS에서의 행동은 너무 매력적이다. 즉, 일상적인 노동은 나를 성장시키는 것 같지 않고, 대신 SNS에서 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의미 있어 보인다. 하지만 SNS에서의 행동은 ‘진짜 행동’이 아니라, 결국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지라르의 모방 욕망: 비교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 문제는 SNS가 비교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의 여행 사진, 지인의 창업 성공 스토리, 누군가의 부유한 라이프스타일을 실시간으로 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교하며 초조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조함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무기력과 도피로 이어진다.
<디지털 자아가 현실 자아를 좀먹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을 종합하면, 디지털 자아가 현실 자아를 감염시키면서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허무주의가 퍼지고, 타인과의 비교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0대들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속에서 현실을 미루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20대 때는 인생을 장악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뭘 하느냐가 아닐까? ‘언젠가’를 기다리다가 정작 내 현실을 잃어버리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