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잠들기 전까지, 삶은 수많은 결정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단순히 개인의 기호나 상황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삶이라는 것은 ‘지켜야 할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는 섞으면 괜찮지만, 와인과 맥주는 섞으면 곤란하다. 어머니에게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하고, 동생들에게는 밥을 사는 게 맞다. 고객이 피해보지 않도록 클레임은 최대한 신속하고 정중하게 처리해야 하고,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왔을 때 우회전하는 건 해서는 안 된다. 줄을 서야 할 땐 내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새치기해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규범적 세계(Normative Universe)를 구성하고 있다. 이 세계에는 ‘하면 좋은 일’, ‘반드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의무’, ‘허용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 등 수많은 차원이 존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들이 윤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선택들을 생각해보자.
- 후설의 현상학부터 읽을까, 아니면 스티브 D. 헤일스의 이것이 철학이다를 먼저 읽을까?
- S&P500, 금, 미국 국채 중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 된장찌개에 된장은 얼마나 넣어야 할까?
-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서를 보낼 때 수수료율을 이 정도로 적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이런 고민들은 모두 ‘확실성’에 대한 질문들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규범적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이것이 옳다”, “이게 맞다”, “허용된다”는 판단은 분명 규범적인 표현이지만, 도덕성과는 거리가 있다. 규범의 세계는 윤리적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선택이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내면 깊이 묻게 된다. 내가 지금 선택하려는 것이 과연 선한가? 명예롭고 책임 있는가? 누군가를 해치진 않을까? 그렇게 우리의 삶은 때때로 아주 무거운 선택 앞에 선다.
예를 들어 보자.
- 파티에서 베스트프렌드의 여자친구가 술에 취해 나에게 추파를 던진다. 베프는 이미 골아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내가 적당히 뒷수습만 잘하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친구가 불법 복제 방법을 알려주며, 최신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솔깃하긴 하다. 정말 이대로 해도 될까?
- 임종이 가까운 할머니가, 더는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하지 않도록 모르핀을 치사량으로 올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이 부탁을 들어줘야 할까?
- 임신 20주 차에 접어든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이라도 낙태해야 할까?
- 졸업시험을 망칠 위기인데, 친구가 물병 라벨 속에 컨닝 페이퍼를 숨기는 요령을 알려준다.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세상도 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어떻게 느껴지는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 삶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는 질문들이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이런 물음 앞에 설 수밖에 없으며, 그때 어떤 원칙으로 판단하고 어떤 근거로 행동할 것인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어떤 이는 종교적 믿음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어떤 이는 부모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판단의 바탕에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하나는 ‘규칙과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직관과 느낌, 혹은 본능’에 의존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매 순간 내리는 수많은 결정들이 단지 정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가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철학적인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다.
참고 문헌: 스티브 D. 헤일스의 "이것이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