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꿘새댁 Jan 12. 2024

K-장녀보다는 외동딸이 좋아!

K - 장녀의 엄마가 될 K - 장녀 꿘새댁의 육아 다짐

 

여전히 제일 즐거운 엄마와의 브런치 데이트

 나와 내 남동생은 연년생이다. 더욱이 내 남동생은 12월생이라 개월 수로는 나와 거의 18개월 차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름 큰 차이였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동갑 친구처럼 지낸다. 이젠 덩치도 큰 남동생이 오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1남 1녀로 한 살 어린 남동생을 두고 있다 보니, 나는 소위 말하는 K-장녀이다. 


 K-장녀는 맏딸이라는 이유로 책임감, 동생에게 양보할 줄 아는 일종의 희생정신,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를 먼저 한 몸에 받는 부담감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한다. 나 역시 이런 장녀의 특징적인 것들이 내 삶에 어느 정도 배어있다. 그러나 나는 어딜 가나 외동딸 같은 이미지가 있다는 얘기를 줄곧 들어왔다. 처음엔 내게 외동딸 같은 이미지가 있다는 말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반복해서 듣다 보니 어떤 부분이 날 외동딸처럼 보이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다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나도 전형적인 K-장녀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부모님의 공평한 사랑 덕분에 책임감, 희생정신, 그리고 부담감 같은 장녀로서의 마음의 무게가 덜 무거운 편이구나.'


 언뜻 이 글만 보면 '부모님의 공평한 사랑'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 집이 매우 화목한 분위기를 갖춘 집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집은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 집안 분위기는 아빠의 사업 기복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나의 고등학교 시절 사업적 위기가 크게 찾아오면서 언제나 냉랭한 집안 분위기 속에 나 또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뒤늦게 정신 차린 고3 시절,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가도 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들어가기 싫어 망설이곤 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아빠의 사업적 위기는 좀 호전되는듯했지만, 큰 위기를 극복했을 뿐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경기에 크고 작은 난관이 있었고 안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빠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음주였고, 술을 드시면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과음을 하신 날이면 대화 중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고, 내가 참다못해 반박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최악의 소용돌이에 빠지곤 했다. 나에게 그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순간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외동딸 같다거나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느낌이 든다는 표현을 했을 때 난 더 의아했던 것 같다. 난 실제로 그렇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만 크지는 않았고, 나름 장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는 내가 어떠한 풍파 없이 사랑만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외동딸의 이미지가 있다는 건 왜 때문일까. '부모님의 공평한 사랑'이라고 막연하게 표현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엄마의 현명한 소통 방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빠의 사랑도 내게 영향이 크다. 아빠가 나에 대해 갖는 사랑은 매우 각별했고,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언제나 우선순위로 가질 수 있게 해 주셨다. 이 또한 나의 높은 자존감이 성립되는 데 있어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딸은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엄마와 더 깊은 교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엄마와 나눈 무수히 많은 대화는 나의 자아를 즉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알콩이(태명) 엄마가 되기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엄마의 어떤 대화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자존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내가 정의하는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기애가 넘쳐서 착각과 환상 속에서 사는 성격은 절대 아니다. 소위 말해 'T 적질'을 하라면 가장 잘할 자신이 있을 정도로 극 T 성향을 갖고 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나를 포함한 주변 모든 환경에 대해서도 냉정하고 현실적이며 직관적인 편이다. 그만큼 나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한 점도 많고 아직도 한참 미숙한 인간미 넘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의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은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외동딸처럼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나의 자존감은 엄마의 대화법 중 크게 두 가지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포용력과 어쩌면 하찮고 귀여워 보일 수 있는 나의 고민을 항상 존중하는 태도로 경청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게 최고의 친구 같은 존재이고, 엄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난 외롭지 않다. 포용력과 나를 존중해 주는 마음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나는 엄마와 대화할 때 항상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장녀의 특성상 쉽게 꺼내지 않는 속내도 엄마에게는 솔직할 수 있었고, 고민거리가 생기면 친구를 찾기보다는 엄마에게 가장 먼저 상의를 하곤 했다. 언제나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삶에 있어 매우 큰 원동력이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 이러한 든든함이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높은 자존감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내년 3월이면 태어날 알콩이(태명) 또한 미래의 K-장녀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꿈꾸던 가정은 사이좋은 부부 그리고 두 명의 자식과 함께 네 식구를 완성한 형태이다. 지금도 그 꿈은 여전해서 내가 할 수 있다면 달콩이(둘째 태명 예정)를 생각하고 있다. 아직 알콩이도 태어나기 전이라 내가 할 수 있을지 불분명해서 확언을 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만큼은 그렇다. 아무튼 달콩이가 태어난다면 남동생일지 여동생일지 몰라도 알콩이는 분명한 K-장녀이다. 난 우리 알콩이가 K-장녀이기보다 외동딸처럼 컸으면 좋겠다. 1남 1녀인 나는 장녀이면서 외동딸인 것도 사실 맞는 말이다. 알콩이가 언니가 될지 누나가 될지 진짜 외동이 될지 그건 아직 모를 일이지만, 어떤 쪽이든 난 우리 알콩이가 어딜 가든 외동같이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키워주고 싶다. 아무래도 내 딸은 K-장녀 같은 이미지보다는 예쁘게 사랑받고 자란 외동딸 이미지로 키워주고 싶은 게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점에서 난 우리 부모님께 매우 감사하다. 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신 것에 대해서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큰 자산이다.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날 배신하지 않는 건 나 스스로뿐이다.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것도 나이다. 그런데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건 인생의 많은 영역에 있어 흔들리는 파도 위의 작은 배같이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인생은 생각보다 크고 작은 행복이 많은 만큼 고난과 역경도 함께 한다. 그리고 정말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는 내 인생의 중심축으로 진정 빛을 발한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 특히 엄마에게 배운 대화법을 바탕으로 난 언제나 인내심을 갖고 알콩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포용할 것을 순간순간 다짐한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내가 직접 골라 남편에게 선물 받은 책이 있다. '좋은 엄마 말고 나란 엄마' 김하나 지음 책이다. 이 책에서도 육아를 하는 데 있어 인내심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강조한다. 인내심이 깨져서 더 이상 엄마의 반응이 진심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그걸 느낀다고 한다. 난 우리 알콩이에게 내가 받았던 사랑처럼 큰 사랑을 주기 위해 인내심을 갖춘 진심 가득한 엄마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예정이다. 그렇게 꼭 외동딸 같은 K-장녀로 성장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겠다. 

이전 03화 임신, 나는 상상이 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