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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새댁 Jan 12. 2024

집안일 꼭 잘해야만 해?

살림 초보 꿘새댁의 정신 승리

 결혼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새댁 입장에서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바로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독립을 해본 사람이라면 집안일에 대해 좀 친숙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마땅히 독립이란 걸 결혼 전에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내가 집안일에 대해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아예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특히나,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칼같이 선을 긋는 편이라 집안일은 내게 알 필요도 없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영역이었다. 최소 35살까지는 커리어 우먼으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터라 더욱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경향도 있다. 나중에 때가 되면 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과 함께 당장의 내 삶에만 열중하기 바빴으니.


 그런 내가 31살 7월에 생각지 못한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막연하게 믿어왔던 집안일은 당장의 중요 과제가 되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중간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한번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빠져들어 나만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탐구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다 나름의 결론이 나오면 더 빠져들거나 거기서 멈추고 새로운 분야로 내 흥미를 옮기거나 하는 성격이다. 집안일이 중요 과제가 된 건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이다. 다행히 남편은 원래 요리와 청소에 관심이 많고 잘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처음에는 내가 미숙해도 큰 문제없이 집의 형태가 유지되는 듯했지만, 출근하는 남편은 집안일을 신경 쓰기에 절대적인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결혼하고 새롭게 알게 된 나의 특징 중 하나는 내가 생각보다 더 깔끔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 전에는 오로지 '나'만 가꾸는 삶을 살았다.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우리 집 그리고 엄마가 알아서 챙겨주시던 옷 드라이클리닝과 세탁까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모든 게 항상 그 자리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한 듯 항상 그 자리에 준비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준비되어 있던 든든한 아침밥부터 당장 입을 내 속옷 양말까지 모든 것은 내가 챙겨야만 제자리를 찾았다. 이 사실을 깨닫고부터 나의 흥미와 관계없이 집안일은 내게 긴급한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요리라고는 계란프라이, 라면 끓이기 정도가 전부였고 가끔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하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 집안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배워야 할지 모르겠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래서 난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집안일과 관련된 콘텐츠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몇몇 보고 싶은 채널을 찾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안일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보다 보니 어느새 내 유튜브는 온통 요리, 살림, 리빙 관련 영상들로 가득해졌다. 그러다 정말 인상 깊을 정도로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몇몇 주부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냈다. 감탄이 나오는 요리 실력, 완벽한 청소와 정리 정돈, 본받고 싶은 집 꾸미기 능력 등 너무 대단한 점들이 많았다. 그런 훌륭한 주부들의 영상을 보면서 저들은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을까, 혹시 살림도 타고나는 능력인 것일까 등등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는 많이 비교되는 듯한 그런 괴리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두번째 도전해보는 카레, 확실히 처음보다는 맛이 좋았다

 한동안 그런 영상들을 참고하며 많이 배우고 실천해 보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는 빠르게 '집안일'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내게 집안일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지만, 잘하고 싶은 영역은 아니었다'라는 것이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줄 알아야 하지만, 굳이 잘하고 싶지도 않은,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는 훨씬 잘하게 되겠지만 그로 인해 큰 뿌듯함도 딱히 없는 그런 영역인 것이다. 즉, 집안일도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는 타고난 성향에 의해 더욱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우는 다른 영역에 더 큰 흥미가 있다 보니 집안일은 단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필수 역량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나를 인정하고, 나의 미숙함을 탓하며 더 잘하는 불특정 다수와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더 나아진 오늘을 칭찬해 주고 조금씩은 발전해 가는 나를 독려해 주고 있다. 여전히 흥미 없는 분야를 그래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계속 끌고 가는 나 자신이 얼마나 대견한가.


 살면서 남과 나를 비교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우린 갑자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 같은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이미 잘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며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만능 엔터테이너는 드물다. 그리고 만능 엔터테이너가 될 필요도 없다. 이건 못해도 난 다른 분야는 더 잘하는 그런 사람이다. 당장 못하는 게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이것까지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발짝 뒤에서 난 이걸 왜 못하는지, 내가 그동안 흥미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답은 단순할 수 있다. 나만의 결론을 도출해 내고 나니 '집안일'에 관한 나의 생각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앞으로도 하나씩 이렇게 나만의 결론을 내리며 가장 나다운, 오늘보다 내일 더 발전하는 '꿩새댁'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아직은 많은 게 새로운 결혼생활도 어느새 적응되겠지라는 믿음을 갖고 난 오늘도 나만의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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