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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말아먹고도 다시 시작한 이유

by 권상민

자영업 사장님들은 폐업을 하고 싶어도 쉽게 못한다.

폐업을 하기 위해서 임대했던 공간을 원상복구해야 하고, 그 만큼 비용이 또 든다.

장사 안되는 가게를 두고, 폐업비용을 만들기 위해서 대리운전을 한다는 사장님의 기사도 읽었다.


스타트업을 창업한 나에게도 폐업을 하느냐 마느냐의 위기가 있었다.

창업 3년차가 될 때 까지는 투자금에 정부지원자금까지 거의 100억원을 받아서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22년 러시아 전쟁 시작 및 세계금리인상의 여파로 스타트업 투자는 혹한기를 맞았다.

사실상 투자 제로의 시대가 되었다.

3년동안 내실을 다지고, 체력을 다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시리즈A 투자사들이 다시금 시리즈B를 투자해 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깐깐하게 영업이익을 챙기고, 돈이 되는 곳만 사업을 해야 했는데 너무 방만하게 펼쳤다.

방만하게 사업을 여러 군데 펼치고,

방만하게 사람을 뽑았다.

예정된 시리즈B 투자가 물거품이 되자 금세 실체가 드러났다.


당시 회사의 경영진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폐업 처리를 하자고 하는 주장도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였다.

이론적으로는 연대보증 같은 제도도 없이 투자를 받은 것이기에 대표이사인 내가 손을 놓는다면 그냥 그대로 끝날 수 있었다.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만 말하고 홀가분하게 떠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가슴 속에 죄책감은 어쩔 수 없지만 큰 학습했다 생각하면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학습료 치고 100억은 너무 큰 돈이지만.


직원들에게는 또 어땠을까?

여러분 정말 최선을 다했지만 죄송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대체 사업을 왜 시작해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

이런 고민도 몇 날 몇일 계속 되었다.


홀가분하게 폐업처리 하고 떠나자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결국 내 마음속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믿어준 직원들, 투자자들, 주주들을 등질 수 없었다.

지금 이게 최선인가?

내가 해볼 수 있을 만큼 다 해본것인가? 라고 생각할 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100평짜리 사무실 두 곳을 쓰던 것을 다 정리하고, 모든 집기, 회사의 자산 중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팔았다.

내가 7번 사무실을 이사한 와중에 가장 열악하고 좁고 직원들에게 차마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만한 사무실로 옮겼다.

당시 여자 직원들은 화장실이 너무 열악해서 인근 지하철 역 화장실을 갈 정도였다.


폐업을 하던, 구조조정을 하던 사실 상당수의 사람들과는 거의 절연할 수 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을 통해서 직원 70%를 감원했으니 떠난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이 조그만 회사에 무슨 비전이 남아있었기에 남고 버텨준 친구들이 있었는지 그게 더 신기할 정도였다.

심지어 6개월 가량은 전원 최저임금으로 급여를 줄 수 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때 못 줬던 미지급금을 다시 다 갚아서 돌려주는데 2년이 걸렸다.


나는 사람에 대한, 돈에 대한, 믿음에 대한 책임감으로 폐업을 하지 않고 계속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이후에 나와 회사에 닥칠 그 고난들을 생각해보면 다시 그 순간에 그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확답 못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살아남기로 했다.

이제 회사가 가진 서비스는 한 개만 남겼다.

최초에 만들었고 모든 투자를 다 유치했었던 우리의 근본과 같은 서비스 단 한 개.

오히려 방만하게 사업을 펼치면서 다음, 그 다음 추진했던 서비스들을 다 내렸다.


내가 왜 창업했을까?

편안하게 삼성화재에서 높은 급여 받고, 별 고민없이 살 수 있었을텐데.

나는 보험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정말로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보험회사를 꿈꿨다.

회사 슬로건도 ‘더 많은 사람에게 보험의 혜택을 제공한다’라고 정하고 달릴 정도였다.

이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보험회사를 세운다는 것은, 그런 거대한 작업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본질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고객에게 보험의 혜택을 드릴 수 있는가?

그때부터 다시 우리의 원천 서비스이자 핵심서비스인 최근 3년간 실손의료비 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를 가다듬었다.

놓친 병원비, 약국비를 우리를 통해서 신청할 수 있게 다시 구조를 정리하고 대단위로 큰 플랫폼들을 제휴처로 잡고 서비스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의 구조조정끝에 BEP는 달성한 회사를 만들었고, 매월 2만명 이상 유료로 서비스를 신청하는 흐름을 탔다.


아직도 작은 회사이고, 고객님들의 불만도 많고, 더 서비스를 고객 친화적으로 키워야 하고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초기 3년은 겉멋만 잔뜩 들어서 스타트업을 흉내내고, 스타트업 대표를 흉내낸 시기였다.

이어진 3년동안은 이제야 사업이 무엇인지 알겠고, 이제야 사람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구조조정을 겪고 하다보면 대표이사의 엄청난 지분 희석이 발생하고(소액주주로 전락하고) 많은 희생도 불가피하다. 사실 금전적인 것을 기대한다면 이런 과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당장의 이익은 전혀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 내 책임, 인간의 도리라고 여겼다.

지금도 이 부분은 전혀 후회가 없다.


어떻게든 이 시장에서 6년을 버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질의 서비스를 강화했고, 파생하면서 다른 역량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시장에 나와 우리회사의 명성은 살아남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은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당신은 지금, 회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아니면 한 줄기 본질을 붙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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