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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는 순간, 모든 게 풀렸다.

by 권상민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태어나면서 정말 튼튼한 몸을 물려 받았다.

47세인 현재까지 평생 어디 한 곳 아파본 적 없고, 병원에 입원할 일 없었다.

튼튼하게 물려받은 몸과 함께 꾸준히 운동을 병행했던 것이 평생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대학교 입학한 19세 이후 내 삶은 늘 운동이 함께 했었다.

몸의 체질이 쉽게 살이 찌는 체질이기도 했고, 일단 땀을 흘리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인생의 시기별로 어떤 땀을 흘리는 운동에 크게 집중해서 매달리는 편이었다.

초반에 가장 많이 한 운동은 농구였다. 대학교에 입학 후 학교 중앙동아리에 가입했다.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농구에 할애했다. 농구로는 직장인 리그에서 전국대회 80개팀을 제치고 우승했던 추억을 가져갈 만큼 아쉬움 없이 제대로 했다.


20대 초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병역대체가 되어서 3년간 복무를 했다. 이때는 마침 사무실 근처에 YMCA가 있어서 3년간 수영을 집중적으로 했다.

20대 후반, 대학 졸업 후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인생 첫 직장을 가진 곳은 한화생명이었다. 63빌딩에서 근무했는데 여의도 검도관 한 곳과 연계되어서 사내 검도 동호회가 매우 크게 활성화되었다.이때 2년간 검도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즐겼다. 후에 검도는 초단까지 따게 되었다.


큰 아이가 태어난 30대 후반,

작은 아이가 태어난 40대 초반,

이 두 시기는 지금 돌아보니 가장 운동을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렇게 약간의 강박관념식으로 늘 운동하고 땀 흘려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하게 주입할 정도였다.


가장 위험한 시기도 있었다.

41세에 창업을 시작해서 초기 5년은 정말 정신 없이 일 했다.

매일 매일이 생존이고 마음이 불편하니 어떤 운동을 진득하게 꾸준히 할 수 없었다. 회사 건물 지하1층에 크로스핏이 있어서 잠시 몇 달 해본 것, 회사 근처에 PT샵이 있어서 몇 달 해본 것이 전부였다.

5년간 운동은 안하고 스타트업 대표로서 온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던 절정, 작년 여름이었는데 진짜 이렇게 살다가는 큰 일 날것 같았다.

살도 계속 찌고, 당뇨 고혈압이 안 오면 이상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달려서 1,200Km이상 달리게 된 것이다.

달리기는 지금도 매일 30분 이상 하는 것을 염원할 정도로 가장 즐겨하는 운동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농구, 검도 같은 격한 운동은 사실 점점 멀어지고 이제는 혼자 조용히 명상하듯이 달릴 수 있고, 땀 흠뻑 흘릴 수 있는 것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창업 6년차인 올 해 처음으로 골프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내가 골프를 전혀 하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정말 많은 분들이 골프를 하고 계셨다.

나는 사업의 특성에서도 많은 제휴사들, 함께 일하는 파트너사들이 있는데 그 분들도 이제 제대로 배워라, 함께 하자라고 많이 권하실 정도였다.

6개월을 집중적으로 해서, 흔히들 말하는 100돌이라는 것을 깨보고 90타대를 만들어 보고 나니 이제 알았다.

“힘 빼”

왜 그렇게 다들 그 말을 주구장창 주위에서 조언했는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힘 빼고 툭 쳐야 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고 그렇게 필드에 나가니 훨씬 나아짐을 느꼈다.


돌아보니 농구에서도, 검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농구는 바디컨트롤이 정말 중요해서 공중에 떠도 몸의 중심을 딱 잡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렇게 중심을 잡고 뜬 상태에서 마무리는 가볍게 공을 던지거나 올려놓고 와야 한다.

힘이 들어가면 레이업슛도 튕겨나오고, 슛은 말할 것도 없이 안 들어간다.

검도는 호구를 입고, 죽도를 손에 들고 서로 일 합씩 겨루는 운동이다.

죽도를 통해서는 상대의 머리, 허리, 손목만 노릴 수 있다.

과거 무사들이 검으로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

일격필살로 머리를 날리거나, 허리를 베어서 내장에 손상을 가게 하거나, 손목을 자르는 것.

이때 죽도를 들고 상대와 겨루는데 정말 가볍게 들고 가볍게 움직여야 한다.

죽도를 세게 힘이 들어가면 일단 상대를 맞출 수가 없다. 검을 들고 있는 자세가 처음부터 힘빼고 나비처럼 들어가서 벌처럼 쏘는 것을 요하는 것이다.


골프, 농구, 검도 다 마찬가지였다.

힘을 빼야 했다.

잘해야지 하고 어깨가 올라오는 순간 일단 틀렸다.

평소 연습하던 대로, 가볍게 툭

이게 바로 기본이었다.




운동에서만 힘 뺄 것이 아니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시작하고, 고객 반응을 빠르게 보는 것을 MVP테스트라고 한다.

Minimum Viable Product의 약자로서 최소기능제품을 말한다.

내가 지금 기획하는 이 제품이 고객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고객이 과연 이 제품을 구매할지 상상만으로는 안되니까 최소의 기능만 구현하고 내놓는 것이다.

핵심적인 필수기능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고객이 홈페이지든, 앱서비스든 만져보면서 어떻게 움직이나 본다.

MVP는 너무 오래 걸리면 안된다.

빠르면 2주에서 한 달 안에 기획부터 고객반응을 볼 수 있으면 좋다.

정말 가볍게 만들어서 내놓고 결과를 볼 수 있어야지 힘을 잔뜩주고 아예 제품부터 만들면 안된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토스의 MVP사례가 가장 유명하다. 토스 이승건 대표께서 7번정도 앞의 사업은 다 실패하고, 회사 이름 토스 답게 자동송금을 하는 솔루션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당시 10년전에는 은행간 오픈뱅킹도 없던 시절이라 한국의 일반 스타트업 업체가 자동송금을 토스하듯이 툭 하는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토스의 이대표께서는 그 아이디어가 기획이 되자, 이렇게 송금이 되면 어때요라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홈페이지를 주말에 걸쳐서 런칭했다고 한다.

실제 송금기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 스케치 및 목업(mock-up) 시연 정도였다. 주말에 수 만명이 이런 기능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반응을 보였고, 이 시발점으로 지금의 토스가 거대 그룹으로 탄생한 것이었다.

이 후 토스의 이대표께서는 은행간 송금을 실제로 해결하기 위해서 수 년간 엄청난 노력을 들이게 된다.

실제와 MVP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난 요즘 셀프브랜딩에 관심이 많았다.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나 개인으로도 이 세상에 발돋움하고 싶었다.

오히려 내 셀프브랜딩이 우리 회사를 더 알리도록 이끌고 싶었다.

그래서 셀프브랜딩 관련 책도 10권 넘게 읽고, 6개월에 걸쳐서 홈페이지도 만들고, 차별화를 한다고 AI상담원도 만들었다.

결과는?

앞에서 쭉 이야기한 반대로 한 것이다.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가볍게 테스트 해도 되었는데.

그냥 블로그, 브런치 같은 곳에 글만 써봐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돌아온거니?


우연찮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거 뭐지? 싶었다.

아 이렇게 고객반응을 볼 수 있구나.

무엇보다도 내 작은 글, 내 MVP를 통해서 내 자신에 대한 자아를 찾는 결과가 가장 컸다.

‘나! 글쓰기 좋아하는구나!’

‘작가가 되고 싶은데? 이렇게 영향력을 가져 가고 싶은데?’


지금 내가 직면한 어떤 과제를 해결하는 데 너무 큰 압박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상관이 레포트를 써보라고 하면, 일단 가볍게 원페이지로 기승전결을 적어가서 보고를 해본다.

시장은 이렇고, 원인은 이렇게 추정되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고 기획했습니다. 이렇게 가볍게 레포트 작성해서 방향성이 맞냐고 물어보면 된다.

1주일동안 혼자 끙끙앓고 있지 말고.


운동이든, 사업이든, 회사의 수명업무이든 어깨에 긴장풀고 힘빼서 해보자.

가볍게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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