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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by 권상민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한 말이다.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나는 누구를 만나면 종종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삼일회계법인을 다니면서 2011년 YMCA 전국 직장인 농구대회 우승을 한 것이 가장 큰 영광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 팀은 무려 80개팀이 1년내내 하는 리그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서 최종 우승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런 질문도 받는다.

“사업하면서 얻은 영광보다도 농구대회 전국 우승이 더 커요?”

솔직한 심정은 농구가 더 크다.

전국대회에서 농구 우승한 것이 나에게는 더 큰 영광으로 남아 있다.

사실 사업은 너무나도 상처뿐인 영광이어서 그럴만한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19살 대학교 입학했을 때 농구동아리에 들어갔다.

학교 중앙 동아리였기 때문에 운동 잘한다는 사람들은 다 있었다. 특히, 우리 학교는 체육교육과가 있었는데 이쪽 전공한 사람들은 유전자가 달랐다.

고등학교때 학교 반대표 정도했던 실력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의 농구 후보인생은 시작되었다.

19살부터 시작해서, 20대 내내 대학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후보였다.

농구에서는 가비지 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4쿼터 경기중에 후반부 즈음 승패가 거의 확실해진 시점, 점수 차이가 너무 커서 이건 누가 들어가도 변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나 같은 후보는 늘 가비지타임때만 뛰는 멤버였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농구하고, 까맣게 살이 타도록 운동하던 친구들과 비교하면 농구도 그 만큼 하지는 않았다.

적당한 체격, 적당한 운동능력으로 적당하게 농구 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20대 내내, 대학을 졸업하고 OB가 되어서 농구를 해도 늘 후보자리에서 조연만 했었다.

다행이 농구를 그렇게 사랑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사람들이 좋았나 보다.

그냥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10년은 농구동아리의 모든 행사에, 운동에, 시합에 참여했었다.


잠시 영국에서 보험계리로 석사유학을 마치고, 보험계리사로서 기존 커리어인 보험회사가 아닌 새로운 커리어를 도전해보고 싶어서 삼일회계법인을 선택했다.

2010년 32세의 어느 날 삼일회계법인에 농구팀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 동아리이니까 참여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아주는 것이었다.

농구하러 간 날, 첫 느낌!

‘얘네 회계사들이 왜 이렇게 농구를 잘해?’

정말 의외였다.

이 친구들 농구실력이 보통 직장인 아저씨들 보다는 훨씬 정교하게 잘 하는데?

게다가 농구선수 출신 회계사 선배 한 분이 팀을 잘 만들어놓고 나름의 체계도 구축하고 얼마전에 나가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의외인 것은, 내가 여기서는 농구를 잘 하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은 것이었다.

내 키가 189cm인데, 농구판에서 190대도 흔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빅맨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팀에서는 내가 키가 가장 컸다.

그리고 10년넘게 대학교 농구동아리에서 후보생활만 했어도, 최고수 선후배들과 어울리며 배운게 있어서 인지 일반 직장인 레벨에서는 내가 상급으로 분류가 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주전 Best5가 되었다.

항상 시합에서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이다.

참고로 나와 거의 비슷한 키의 더 어린 회계사 친구가 몇달 후 입사했는데 그 친구가 센터를 보고, 나는 파워포워드 역할을 맡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주전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되니, 농구가 더욱 더 잘하고 싶어졌다.

20대때의 열정보다 32세가 되어서 농구에 대한 열정이 더 크게 활활 불타올랐다.

우리 팀은 2010년 그 해에는 열심히 손발을 맞춘 시기였다.

나도 연 중간에 합류했었고, 다른 주전급 선수들도 몇 명 늦게 합류했다.

드디어 2011년이 되었다.

올 해는 직장인 리그 농구시합을 한 번 제대로 해보자고 결의했다.

요즘은 농구 인기가 많이 시들해져서 직장인 리그도 소소하게 참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그 해에는 무려 80개 팀이 참가했다.

3월부터 리그를 시작하는 데 10개팀8개조로 나눠서 10월까지 약 8개월동안 조별 풀리그를 한다.

한 조의 10개팀이 전부 한 번씩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내 기억에는 우리팀이 9번 시합해서 8승 1패를 한 것 같다.

이렇게 각 조 상위 2개팀씩 총 16개의 팀이 16강을 시작한다. 16강, 8강, 4강, 마침내 결승까지.

4강전을 이기고 나서 라커룸, 샤워장에서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회계사들한테까지 지면 뭐가 되냐?”

당시 삼성전자 사업부 어디 중 한팀이었는데 그 팀은 190대 세 명이 있는 초장신의 팀이었다.


우리 팀이 전국대회 우승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확실한 스코어러(득점원) 한 명이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이 아주 끈적하게 수비를 잘 해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본다.

2011년 당시 우리는 젊기도 했고, 다들 신났었다.

농구가 잘 되니 자발적으로 다들 주말에도 모여서 농구 잘하는 동호회들과 연습게임도 하고 그랬다.


1년의 시간동안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전 구성원이 정말 정성을 다했다.

당시 삼일회계법인도 물론 후보가 있었다. 나 역시 후보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 가급적 자주 교체하려고 노력했고 서로가 서로를 매우 잘 배려했다.

그래서 확실한 주전 다섯명만 뛰는 그런 이기적인 팀이 아니고, 많이 조화롭게 끈적하게 뛰는 팀이 되어서 이겼던 것이다.


농구 생각하면서 회사운영도 자주 생각한다.

어떤 친구를 주역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도 조용히 묻혀가는 후보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지 않을까?

모두 각자에게는 최고의 영광의 시간이 있을텐데, 각자 제일 잘 하는 것을 하게 해주고 그들을 빛나게 해줄 수는 없을까?


대학교때 여자 동기가 해줬던 따끔한 조언을 잊지 않는다.

여자의 외모, 옷 입는것 이런것을 내가 너무 쉽게 이야기 하니까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상민아, 지금 니가 우습게 보는 저 여자도 나름 최선을 다해서 꾸미고 나온 거야. 누구나 최선을 다해서 나온 모습을 네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20년이 지나도 아직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47년 인생 중 농구에서 전국대회 우승한 것이 개인사에서 가장 큰 역사인 것처럼, 모든 사람은 각 각 자기만의 소중한 역사와 사연이 있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이렇게 기록이 되고 확대 재생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오늘은 당신의 영광의 순간을 어딘가에 기록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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