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 그리고 야키니꾸(焼肉)

12.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by 권상혁

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고기를 좋아하지 않게 된지는 모르겠으나, 일본인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계기 덕분에 왜 내가 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게 된 건지 깨닫게 되었다. 일본에는〈오쇼(王将)〉라는 중국요리 체인점이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음식점이고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에도 세 군데 이상 있다. 특히 각 전철역 가까이에 가게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안에는 항상 손님이 만원이다. 손님이 많은 것에는 위치의 강점도 있으나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가 맛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온 손님(특히 여성)이나 어르신들이 1인분을 채 다 먹지 못할 경우가 많아 '저스트 사이즈(절반 양)'라고 해서 소량으로도 음식을 판매해 누구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당연히 주류도 판매하기 때문에 음식점이면서 술집을 겸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개점해서 폐점까지 빈자리를 볼 수 없을 만큼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인들이 일본에 오게 되면 한 번쯤 들르게 되는 식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내에서 대중음식점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잡고 있다.


일본인 지인과〈오쇼〉에서 식사 약속이 있어 함께 밥을 먹을 때였다. '고기 야채볶음'을 주문하고 '된장라면' · '계란 부추볶음' 같은 걸 추가해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데, 내가 '고기 야채볶음'에서 야채만 쏙쏙 골라 먹는 걸 보고 일본인 지인이 말했다.

"너는 왜 고기를 안 먹어?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지. 편식하면 안 돼."

나는 그 말을 듣기까지 내가 야채만 골라서 먹는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내 무의식 속에 고기를 저만치 밀어내는 꼬부장한 시선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일본인 지인에게 지적을 받고 나서야 '고기 야채볶음' 접시에 야채는 없고 고기만 잔뜩 남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큰 접시에 고기만 남아 있는 모양이 음식을 이리저리 헤집어 먹은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해서, 다른 야채볶음 요리를 시키라고 지인에게 말을 했지만 지인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다. 왜 고기를 안 먹느냐고 재차 채근했고 채식주의자냐고도 물었다.

아니다,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고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돈가스도 먹고, 샤브샤브처럼 뜨거운 국물에 살짝 익혀 먹는 담백한 고기는 꽤 잘 먹는 편이다. 지인에게 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내가 주문한 '고기 야채볶음'에서 야채는 잘 먹는 걸로 보아〈오쇼〉음식이 입에 안 맞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야채만 골라 먹느냐고 그날따라 집요하게 추궁을 하기에, 나는 순간 무안하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일들이 슬금슬금 기억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 같아 짜증이 나기도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고기를 안 좋아해. 그렇다고 해서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자주 먹지는 않아. 한 달에 한번 정도 먹을까. 그 정도야."

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 달에 한 번?'이라고 내 말을 그대로 되풀이해서 말했다. 고기를 안 먹는 게 마치 내 영양섭취 균형에 큰 문제라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마른 체형이기도 하고 외국 생활에서 제대로 먹고사는지 걱정이 되어서 한 말이라고 생각했고, 일본인 지인은 내 일을 도와주는 동료이자 오랜 친구이기도 해서 나는 불쑥 올라오는 화를 집어삼켰다. 사람마다 고기를 좋아할 수도 있고, 야채를 좋아할 수도 있고, 생선을 좋아할 수도 있다. 또는 그 모든 걸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취향이다.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음식이 아니라면, 뭘 먹든 먹지 않든 그건 누구도 뭐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일본인 지인이 날을 잡았는지 그 뒤에 내게 더 충격적인 말을 했다.

“너는 고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고기를 자주 먹어보지 않은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환경에 있었던 거지. 자주 접하고 매일 먹었다면 고기를 싫어할 리 없지. 한국 사람들도 고기 많이 먹지 않아?”


나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내 일본인 지인이 나도 모르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가슴속 깊이 넣어두고 덮어둬서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어린 시절 ‘밥상’을, 일본〈오쇼〉식당 안에서 나는 뚜렷하게 떠올렸다.

지인의 말대로 나는 어려서부터 고기를 자주 먹고 자라지 못했다. 고기는커녕, 엄마와 아버지가 따로 살면서부터는 제대로 된 밥상에서 밥을 즐겁게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또래보다 무척 작았고 왜소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순간부터 먹는 것과 상관없이 키가 컸지만, 그건 참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엄마와 함께 살았을 때도, 여름에 어쩌다 수박을 사서 우리 가족 셋이 수박을 먹고 나면 엄마는 수박 겉껍질만 벗기고 하얀 부분만 깨끗하게 씻고 다듬어서 수박 껍질로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그게 별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 집 형편에 수박 김치를 별미로 먹은 것이 아니었다. 배추 살 돈을 아껴서 쌀을 사려고 했을 거고, 먹고 남은 수박껍질로 김치를 담글 수밖에 없던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일본인 지인 말대로 내가 어려서부터 고기를 자주 먹고 자랐다면 나는 고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어려서 자주 먹던 음식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해 반드시 찾게 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운이 좋아 어려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을 내는 음식을 만나게 되면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리움과 반가움에 온 몸이 포근해지는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날, 내 표정이 굳어진 걸 보고 일본인 지인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일 관련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내가 음식에 젓가락을 잘 갖다 대지 않고 말도 점점 없어지면서 식사 자리는 어색하게 어영부영 마무리가 됐다. 지인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내가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고기를 잘 안 먹고 편식을 하는 것처럼 보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를 걱정해서 한 소리였고 내가 기분이 나쁠 것도 없었는데,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서 저녁 내내 허둥댔고 물을 마시고 물 컵을 개수대에서 씻다가 결국 컵을 깨트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엄마나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릴 때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지방에서 살다 서울 변두리에 와서 단칸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하고, 나를 낳고, 팍팍한 생활에서 엄마와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서는 가난한 우리 집이 정말 싫었고, 부모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나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엄마와 아버지가 각자의 삶을 선택해서 나름대로의 길을 갔을 때, 나는 겨우 9살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우리 세 식구가 한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밥을 먹을 때가 있었다. 내가 스무 살 즈음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엄마와 아버지가 법적으로 완벽한 남이 되기 직전, 어느 허름한 식당으로 나를 불러 지금까지 서류 정리가 안 됐지만 이제 서류 정리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각자, 진작에 끝냈어야 할 인연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지부진 이어오다 드디어 마무리를 짓는다는 생각에 복잡하면서도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이 내 삶에서 참 기쁘면서도 참 슬픈 날이기도 했었다. 남이 차려준 밥이기는 하나 어쨌건 9살 이후로 우리 세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밥을 같이 먹은 날이기도 했고 또한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모두 지난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 기억하고 있다. 가난한 집이 창피해서 친한 친구조차 단 한 번도 우리 집에 데리고 오지 않았고, 엄마 없이 자란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늘 노심초사했으며,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밥을 혼자서 해 먹어야 했다. 그때 유일하게 나에게 탈출구가 된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것이었고, 연습장에 뭔가를 끄적거리면서 마음에 쌓인 불만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하고 졸업하느라,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위를 취득하고 취업해서 사회생활을 정신없이 하느라, 여차저차 해서 일본까지 건너와 바쁘게 사느라고, 나는 잊은 척하며 다 지난 일이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살았다. 하지만 나는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괜찮은 척하며 살았을 뿐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일본인 지인과〈오쇼〉에서의 식사 자리였다. 그러니,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물 컵을 씻다 손에서 놓쳐 깨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덮어두고 나는 내 힘껏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아픈 데도 아픈 줄 모르고 일하다가 어느 순간 중병에 걸렸다고 통보를 받은 것처럼, 흐릿하고 뿌연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초점이 잡히면서 뚜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 상처와 마주 보게 됐다. 일본인 지인이 ‘고기를 왜 먹지 않느냐, 고기를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고기를 싫어하는 거다.’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30년도 더 지난 과거, 작고 마르고 못난 9살짜리 외톨이로 돌아가 있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상처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도 상처는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 흔적이 안 보이면야 좋겠지만,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흔적과 오롯이 마주하게 될 때마다 신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가슴이 쓰린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이후부터였다. 일본인 지인에게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그동안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고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시모토 역 근처에〈규카쿠(牛角)〉라고, 유명한 갈빗집 체인점이 있다. 우리나라〈수원 왕갈비〉·〈태릉 숯불갈비〉같은 곳이다.〈규카쿠〉도 일본 전역에 체인점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먹으나 똑같은 서비스와 메뉴를 볼 수 있다. 다만, 양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다. 우리나라 보통 소갈비 보다 약간 높은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대체로 외국에서 자국(自國) 음식점의 음식 가격은 비싸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본에서 한국 음식을 잘 먹지 않았던 것은, 한국 음식점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있다고 해도 가격이 비싸고 맛도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는 일명《코리아타운》이라는 곳이 있다. 도쿄는 '신오쿠보(新大久保)'이고, 오사카는 '츠루하시(鶴橋)'라는 곳이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거나 한국 문화를 접하고 싶으면 도쿄라면 '신오쿠보'에, 오사카라면 '츠루하시'에 가면 정말 이런 한국 물건까지 들어와 있나 놀랄 정도로 한국 물건들이 즐비하다. 물건뿐만 아니라 노래방이나 PC방 · 편의점은 한국에 있는 점포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또한 한국인 의사가 한국 병원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개인 병원과 한의원까지 있고, 한국인 학생들을 위한 대입 학원(한국에 있는 대학에 재외국민 전형 응시생을 위한 학원이다.)도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가진 한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도 당연히 있다.

마트는 또 어떤가, '신오쿠보'에 있는〈서울 시장〉이라는 곳에서는 한국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 거의 다 갖추어져 있고, 거기에 일본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떡볶이나 순대 · 김밥 · 잡채 같은 것도 매장에서 바로 만들어 판다. 김치도 배추김치 · 파김치 · 물김치 · 갓김치까지 없는 게 없다. 매장 직원들도 거의 한국인이고 대부분 한국말로 말을 하기 때문에 여기가 지금 일본인지 한국인지 순간 헷갈린다. 한국이 그리울 때면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물건이나 음식 가격이 한국의 1.5배에서 2배 정도 비싸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거 같아 나는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지 않았다. 또한 ‘하시모토’에서 ‘신오쿠보’까지는 급행 전철을 탄다고 해도 갈아타는 것까지 생각하면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일이 있어 가는 거 외에는 자주 가지도 않아 한국 음식과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시모토’에도 일본식 갈빗집〈규카쿠〉외에 입구부터 한옥 대문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실내도 고풍스러운 정자처럼 꾸며놓은 한국 전통 갈빗집이 있다. 각종 소갈비와 돼지갈비 · 갈비탕 · 냉면 등을 파는데 메뉴도 한국과 거의 똑같다. 그러나 일본인과 일본에서 사는 나 같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 음식점을 보면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가격도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에 특별한 날에 가는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의 중국 음식체인점〈오쇼〉처럼 지갑이 얇아도 갈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다.

어려서 내가 학교에서 글짓기 상장이나, 무슨무슨 경시대회에서 상장을 타 오면 없는 돈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달 마을〉이라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었다. 그 레스토랑에서 함박스테이크를 팔았었는데 양식을 먹는다는 기쁨도 있고, 평소에는 절대 먹을 수 없는 달달한 소스와 부드러운 고기 맛에〈달 마을〉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었다. 함박스테이크를 먹기 위해서 상장을 받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일본인 지인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고기를 싫어하는 건, 단지 고기를 많이 먹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지 태어나서부터 고기를 거부하는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함박스테이크는 지금도 좋아하고, 이제는 인터넷 주문만 하면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처럼 맛있는 '냉동 함박스테이크'를 언제나 먹을 수 있으니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고, 변한 만큼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갈비’와 일본의 ‘야끼니꾸(焼肉-구워 먹는 고기)’는 사실 같은 것이다.〈규카쿠〉의 메뉴판을 보더라도 ‘갈비’를 ‘가루비’라고만 발음하지, 우리나라 말 그대로 사용한다. ‘상추’도 ‘상츄’라는 발음으로 메뉴판에 적혀있다. 일본 식습관에는 카레를 먹을 때 외에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데〈규카쿠〉에서는 숟가락도 제공될 뿐만 아니라, 은박지에 참기름을 넣고 마늘을 익혀 먹는 것까지 한국과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인원수대로 가위와 집개가 각각 지급되고, 한국에서라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반찬도 거의 대부분 돈을 내고 따로 주문을 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과 무엇보다 제공되는 고기의 양이 적고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한국의 갈비 같은 경우는 뼈에 고기가 길게 붙어 나와 불판에 구울 때 점원이 와서 가위로 먹기 좋게 쓱쓱 잘라주기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문화가 전혀 없다. 한국으로 여행 온 일본인들이 고깃집을 찾았다가 기겁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장면이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점원이 손님 앞에서 큰 가위를 들고 고기를 자르는 모습을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위는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을 하는 것이지, 손님상에 주방기구인 가위가 놓여있다는 것도 이해를 못한다.〈규카쿠〉는 한국처럼 가위를 제공해서 이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손님상에 가위가 있는 것이 낯선 것이 아니나, 어디까지나 한국 음식점에서만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일본 땅에서는 아주 이상한 생각과 행동이 되어버리니, 국가 간 발생하는 문화의 차이라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소통하고 이해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눈에 이상한 것이 남에 눈에 정상으로 보이고, 남에 눈에 정상인 것이 내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외국에 살면서 크게 깨달을 때가 많다. 생활에서도 언제나 공부할 것은 넘쳐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배우는 것도 타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본〈규카쿠〉에서 제공되는 고기는 한 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알맞게 잘라져 나오고 그것도 크다고 생각하면 본인에게 제공된 가위로 스스로 잘라먹으면 된다. 또 소고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돼지고기와 닭고기까지 판매하고, 곱창이나 막창도 메뉴에 있다. 고기도 부위 별로 상당히 세세하게 나누어서 판매하기 때문에 이것도 한국의 일반 갈빗집과는 다소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규카쿠〉에서 90분 동안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 고기뷔페 같은 코스를 주문했다. 메뉴판에서 가장 비싼 고기가 ‘와규(和牛-일본 흑우)’였는데, 그것만 집중적으로 주문해 먹었다. 일본 특유의 달달한 소스에 찍어 먹었더니 정말 맛있었다. 불판에 지글지글 살짝 구워 입에 넣으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듯이 고기가 사라져서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나는 여태까지 싫어한다고 착각하며 살았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나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내 잘못된 편견으로 정해놓고는 안 먹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어디 음식뿐이랴, 살아오면서 잘못된 편견으로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헛소문만 듣고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남에 말만 듣고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을 멀리 하기도 했으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셀 수도 없다. 편견이란 이렇게 무섭다.


어찌 되었든 뭐니 뭐니 해도 갈비는 우리나라 '갈비'가 제 맛이다. 제아무리 '야키니꾸(焼肉)'가 우리나라 갈비 맛을 따라오려고 해도 갈비는 갈비로, '야끼니꾸'는 '야끼니꾸' 나름의 고기 맛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흉내 내는 것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기 마련이다. '야끼니꾸'가 '갈비'를 흉내 내면서 '갈비'와는 다른 독특한 일본만의 '야끼니꾸' 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나도, 일본인 지인과의 식사 이후로는 '갈비' 맛이 무척 그리워질 때가 많아졌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일본의 '야끼니꾸'를 먹으며 고기 맛을 본다. 하지만 '야끼니꾸'에는 점원이 큰 가위로 쓱쓱 잘라주며 구워주기도 하고 잘 구워진 '갈비'를 상추에 얹고 파무침에 마늘을 얹어 한 입 가득 싸서 먹는 '한국식' 맛은 없다. 우리나라 '갈비'는 우리나라 식대로, 일본 '야끼니꾸'는 일본식대로 각각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의 분위기와 맛을 낸다면 모두 훌륭한 음식 문화라고 생각한다.


어우러지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창출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깝다. 그 어느 나라보다 서로 왕래가 많다. 수많은 재일교포들이 엄연히 일본 땅에서 살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일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한국의 '갈비'가 일본에 건너가 '야끼니꾸'가 됐듯이, 일본의 '스시(寿司)'가 한국에 건너와 '초밥'이 됐듯이 한국과 일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일본에 건너와서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았던 '고기 맛'을 이제야 알고 즐기기 시작한 것처럼, 편견을 버리면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


사진제공: H.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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