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시모토에서, 너와 함께.
고등학교 3학년 때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고3 때는 IMF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해였고, 그거와 상관없이 우리 집은 늘 가난했으며 당시 나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기 때문에 도시락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담당이 되었다. 아버지는 도시락 앞에서 늘 허둥거렸고, 도시락을 못 싸 줄 때는 빵이랑 우유를 사 먹으라고 내 손에 2~3천 원을 쥐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시절이었다. 도시락을 싸 가는 날보다 돈을 받는 날이 늘면서 점심시간만 되면 나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점심 도시락뿐만 아니라, 저녁 도시락도 챙겨야 하는 그때에 아버지는 저녁까지 빵을 사 먹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예 학교 근처 식당에 식권을 끊어 주기도 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할 만큼 유명한 농구부가 있었는데, 오전 수업만 하고 교실을 떠나는 농구부원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농구부 전용 식당이 있어 그걸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농구부원 어머님들이 농구부만을 위한 전용 식당에서 매일 점심과 저녁을 따뜻하게 지어 농구부원들에게 배식했기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 나는 매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사 먹기도 했고 과자로 배를 채우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담임교사 눈에 띄게 되었는데, 담임교사는 왜 도시락 안 먹고 매점에서 빵 사 먹느냐고 내게 물었다. 담임교사는 학생 관리 차원 또는 그저 궁금해서 물은 거겠지만, 웬일인지 나는 너무나 큰 무안을 당한 것처럼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그 뒤로는 아예 매점에 가지 않았다. 4교시 끝날 즈음이 되면 도시락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들썩이는 동기들 속에서 나는 늘 시무룩했다.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동기들 사이에 멍하니 앉아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점에 가 있으면 또 담임교사가 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주로 운동장에 나가 벤치 같은 데 앉아있으며 햇볕 바라기를 했었다. 그러다 교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교사들을 보고 나는 또 담임교사 눈에 띌까 봐 강당 건물 쪽으로 황급히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도서부〉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아리실은 본관 건물과 떨어진 강당 건물 2층에 있었는데 1학년 때는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을 들고 동아리실로 뛰어가야 했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빨리 먹고 사서 교사를 도와 도서관에서 도서 대출 및 반납 처리 관련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도서부〉는 점심 도시락을 동아리 부원들끼리 모여서 같이 먹는 전통이 정착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1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교실에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이건 1 · 2학년만 해당이 되는 거였고 3학년은 열외였으나 습관처럼 동아리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가 많았다. 나 또한 도시락을 싸 온 날은 동아리실에서 먹었다. 하지만 싸 오지 않는 날은 동아리실에 가서 후배들이나 동기들에게 교실에서 먹고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책을 본다는 핑계로 도서관 열쇠를 갖고 도서관에 들어가 있고는 했다. 그러니까, 교실에서는 친구들이 밥을 같이 먹자고 그러면 동아리실에 가서 먹어야 한다고 했고, 동아리실에서는 교실에서 먹고 왔다고 둘러댄 것이었다. 나는〈도서부〉동아리였고 게다가 3학년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미리 들어가 있을 수 있었고, 그도 아니면 도서관 옆에 있는 자율학습실에 들어가 몸을 숨기며 책을 읽었다.
내가 그때〈도서부〉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람은 다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때 점심시간 50분 가까운 시간을 도서관에서 도시락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책을 읽을 수 있었다.〈도서부〉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었고 나는 지금도 고등학교 때〈도서부〉동아리 활동을 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학기 말이 되면 사서 교사가 폐기 처분하는 도서를 쌓아놓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것도 정말 좋았고(그때 가져온 책이 아직까지 있다.), 학기 초가 되면 새 책을 대량 구입했기 때문에 정리 작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읽어볼 수가 있었다. 배가 고팠으나 책을 보면 배고픈 생각이 다소 사라졌고 내성이 생겼는지 점심을 먹지 않고도 잘 버텨냈다. 어쩔 때는 하루 종일 물 말고는 먹은 것이 없을 때도 있어서 하교 길에 혼자 씁쓸하게 웃었던 적도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어떤 고집으로 그렇게까지 버텼는지, 참 독하기도 했던 18살 고3이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바로 동아리실에 가면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왔다는 거짓말이 들통이 나니, 나는 10분 정도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시 부반장이었던 영우(가명)가 내가 점심때마다 동아리실에 간다고 하고는 운동장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니 영우가 내 팔을 강하게 잡아 자리에 앉혔다. 내 앞에 앉아 있기도 했고 나보다 체격도 좋아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영우가 눈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다 알고 있어.' 나는 그 눈길을 피할 수도 없었고, 영우 눈빛에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어떤 전의를 상실했다. 내 팔을 잡는 친구의 악력이 셌기도 해서 나는 그만 마음이 무장해제라도 된 듯 기운이 빠졌다.
'다 알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내가 아무리 아닌 척을 하고 잘난 척을 해도, 다 표시가 나는구나.' 나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영우가 내 책상 위에 보온 도시락 두 개를 올려놓았다. 재빨리 도시락 통을 열어 내 앞에 내 몫의 밥통을 놓고, 영우도 자기 앞에 자기 몫의 밥통을 놓았다. 반찬 뚜껑을 열었는데 그때 도시락으로는 최고로 치던 '햄'이며 '돈가스' 같은 반찬이 가득했다. 작은 국통에는 따뜻한 국도 있었다. 반 아이들이 같이 먹자며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나는 엉겁결에 영우가 챙겨 온 도시락을 먹었다. 상혁이가 웬일로 교실에서 밥을 다 먹느냐고, 오늘은 동아리실 안 가냐는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밥통을 한 손으로 쥐고 밥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겼다. 자꾸 눈에서 뭔가가 떨어지려고 하는데, 그날따라 영우가 너무 웃긴 농담 같은 걸 많이 하고, 그러다가 영우 입에서 밥풀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해서 같이 먹던 아이들과 한바탕 웃기도 했다. 시끌벅적 정신없이 10분 만에 점심밥을 우당탕탕 먹어치웠다. 10분도 안 되어 밥그릇을 비운 아이들이 죄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고 교실에 몇 명 남지 않았을 때, 영우에게 내가 고맙다고 말을 했다. 영우는 학기 초부터 내가 교실에서 점심을 먹지 않고 동아리실로 간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고, 운동장에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내가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영우 엄마에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으니 도시락을 두 개 싸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가뜩이나 말랐는데, 점심을 안 먹으면 쓰러질까 봐 걱정이 됐다고 했다. 그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그리고 무척 부끄럽기도 했고, 창피하기도 했고,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난 거 같아 화가 나기도 했고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했다. 친구의 마음은 정말 고마웠지만 나는 도시락을 정리하던 친구의 팔을 붙잡고 진심이 담긴 말을 했다.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하지만, 다시는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여기까지만. 부탁할게, 영우야. 정말 다시는 이러지 마."
내가 못을 박듯 절실하게 말하는 목소리와 진심 어린 눈에서 느낀 바가 있는지 영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거듭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영우의 호의는 정말 감사하고 귀한 것이었지만 여기서 끊지 않으며 영우는 매번 도시락을 두 개씩 싸 와야 하는 기로에서 고민을 할 것이고, 그 도시락을 싸는 영우의 어머니는 무슨 고생이며 또한 내 도시락까지 싸 오는 영우를, 또 그걸 먹고 있는 나를 주변에서 곱게만 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3 시절 다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 지금도 여전히 밥을 굶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 어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밥 못 먹는 애들이 있을까 싶지만, 경제적으로 발전한 우리나라나 일본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고 또는 여러 가지 사정과 부모의 방임으로 굶는 아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복지 사각지대에서 굶고 있는 아이들 또한 많을 것이다. 한창 먹을 나이에 잘 먹지 못한다는 것도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일종의 ‘학대’라고 생각한다. 그걸 멈춰야만 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는 것만 다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나처럼, 자존심만 강해 배가 고파도 배고프단 소리를 안 하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조용히 지원해주는 방법들을 찾아보면 많이 있을 거고, 우리 어른들이 조금만 마음을 쓰고 살펴보면 굶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공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도시락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본 일본의 도시락은 화려함과 다채로움의 조화 그 자체이다. 재료 소재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고 각 재료의 색깔과 식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음식을 먹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즐기고 마음으로 느끼며, 만든 사람의 정성까지 느끼게 하는 특별함이 느껴질 정도로 일본은 도시락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까운 곳에는 우리나라 이마트 같은 「이온 몰(AEON MALL)」이 있다. 식품 판매대에는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면 갓 만든 도시락과 갖가지 반찬들이 진열되는데 종류도 다양하지만 판매되는 양도 엄청나다. 대형 마트이기 때문에 그 많은 도시락들이 순식간에 팔리지만 끝까지 팔리지 않고 남는 도시락도 있다. 날에 따라서 도시락이 평소보다 팔리지 않고 남아 있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한다. 보통 10% 할인부터 시작해서 최대 50% 할인까지 진행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팔리지 않고 폐점 시간이 됐는데도 도시락 판매대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도시락이 많다. 도시락뿐만 아니라 그날 구워서 그날 판매해야 하는 빵이나 갓 잡아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생선회, 생선회를 이용해서 만든 초밥 같은 경우는 인기가 많아서 금방 팔리기도 하지만 어쩐 일인지 50% 할인이 되어도 팔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제 가격을 주고 도시락을 산 적이 별로 없다. 거의 30% 할인이나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해 돈도 절약하고 배도 채운다.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고 해서 도시락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도시락 종류에 따라 사람들 선호도 면에서 다소 밀리고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절반 가격에 먹는 게 어디냐며 냉큼 도시락을 산다. 덕분에 평소에 먹지 않던 반찬들도 먹게 되니 영양도 챙기고 돈도 절약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50%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는 도시락 전부, 오늘이 지나면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된다. 일본의 화려한 도시락 뒤에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게 되는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을 기다렸다가 받아먹는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디선가 여전히 굶고 있는 아이들은 많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다행히 학교에서 전 학년 급식을 하지만 집에 가서는 굶어야 하는 아이들,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 때 그리고 코로나 시대로 인해 급식을 못 먹으면서 굶는 아이들은 더 많이 늘었을 것이다. 마트 식품 판매대에서 50%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는 도시락을 보면서 버려질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락을 사러 갈 때마다 도시락 판매대에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도시락을 보며 나는 발을 잘 떼지 못했다.
내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 일이다. 일을 하느라 밥때를 놓쳐 직장에서 점심을 다소 늦은 시간에 먹게 되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배식해주는 아주머니들 몇 분 외에 그 넓은 식당에 나 혼자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무슨 행사가 있어서 간식거리가 제공됐고 그 때문에 식당에서 밥들을 안 먹어 음식이 많이 남았다. 식당 마감 시간이었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해서 내가 배식을 받으며 아주머니들에게 음식이 남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내가 먹는 것을 끝으로 모두 버린다고 했다. 아직도 배식 판에 밥과 반찬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데도 말이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이 많은 밥과 반찬을 왜 버리느냐고, 정말이냐고 몇 번 되물었다. 버릴 거면 나를 싸 달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들도 그러고 싶지만 영양사가 관리를 철저히 하기도 하고, 원칙상 식당 내 음식은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고 했다. 가져나간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면 영양사와 식당에서 그 책임을 모두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충분히 이해했지만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반찬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대충 봐도 100명쯤은 먹을 수 있는 음식량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배식을 받아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했지만, 남은 음식을 전부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매일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음식은 남을 것이고 남은 음식은 매일 버려진다는 생각을 하니 전국적으로, 또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버려질까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제대로 된 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는 절대 빈곤 국가들도 많은데 이렇게 남은 음식을 건조하는 방법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지, 사람 수에 맞게 딱 음식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정승헌 건국대 교수가 2011년 세계일보에 기고한 내용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1년에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가 500만 톤에 가까우며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8조 원에서 20조 원이라고 한다. 18조나 20조를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으니 실감이 안 나는 액수이긴 하나 엄청난 돈이라는 것은 알겠고, 2021년 우리나라 국가 총예산이 558조이며, 공공질서·안전에 관한 1년 예산이 22조라는데 국가 정책을 펼치는 한 분야에 쓰이는 예산과 맞먹는 돈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는 생각을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돈이면 복지 사각지대에서 굶고 있는 아이들을 전부 도와주고도 남는 돈일 것이다.
2021년 1월 일본 정부 공보 발표에 의하면, 일본은 먹지도 않고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연간 600만 톤을 넘어 매일 같이 10톤 대형 트럭 약 1,700대분의 식품이 폐기 처리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 손 끝 하나 대지 않은 멀쩡한 각종 도시락, 빵과 반찬 등이 포장도 뜯어보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이다. 이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모두, 음식물쓰레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루에도 수많은 양의 음식물들이 사람 손도 닿지 않았는데 버려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고등학교 때 나처럼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마트에서 남은 도시락은 전부 폐기 처분되고, 직장 식당에서 만들어 남은 음식 또한 전부 버려진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굶는 아이들을 줄일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음식을 계속 버리고 있고, 한쪽에서는 남모르게 배를 굶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고등학교 때 내 생각이 나서 나는 마음이 묵직하고 무겁다.
일본에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감독의『도둑질하는 가족(万引き家族)』이라고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에서도 슈퍼에서 음식을 훔치는 어린아이들이 나온다. 실제로도 이런 좀도둑이 극성을 부리는 게 현재 일본의 현실이다. 그리고 미국 오스카상에서 작품상 등 4개 분야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 우리나라 봉준호 감독의『기생충』역시 부유층 집에 기생하는 빈민층에 관한 이야기로 반 지하 주거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둘의 영화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는, 이른바 잘 산다고 하는 나라에서조차 극도로 양극화되어 있는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사회 계층 간 격차로 인한 비참한 날들이 바로 ‘나와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 모두, 밥 걱정 없이 산다고 생각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도둑질을 해서야 먹고살 수 있는 가정도 있고, 남의 집 지하실에 숨어 살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가정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싶을 뿐, 여전히 빈부의 차이는 극심하다. 한쪽에서는 음식이 남아돌아 마구 버리고, 한쪽에서는 음식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운다. 혹시 반찬이 남게 되면 작은 반찬통에 옮겨 담아 보관해 두고, 밥이 남으면 랩으로 싼 뒤에 냉동해 뒀다 다음 식사 때 먹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굶는 아이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거 같다는 자기 위안도 있다.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굶는 아이들이 없도록 노력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점심을 굶고, 도서관으로 몸을 피해 책을 읽던 나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무척 배가 고팠고, 내가 좀 더 넉살이 좋은 성격이었다면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도시락을 나눠달라고 할 수도 있었으며 동아리 실에서 컵라면 같은 걸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고집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아니면 그 둘을 합쳐놓은 어떤 강박이었을까. 하지만 덕분에 나는 도서관에서 풍기는 오래된 책 냄새를 맡는 걸 좋아하게 됐다. 장서에 쌓인 먼지와 낡은 책을 꺼내 펼칠 때 빛바랜 누런 종이가 내 마음을 흔들기도 했었다. 책만 펼치면 수많은 이야기가 보여서 밥을 먹지 않아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전부 다 읽어 보겠다고 속으로 허세를 부렸던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해 본다. 입술을 꼭 다물고, 서가에 서서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배가 고픈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 위해 허리를 세우고 책을 읽던 18살의 나를,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 18살의 나와 만날 수 있다면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가난한 건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만 애쓰라고, 그만 애써도 된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고, 아직 어리지 않느냐고, 그렇게 위로하고 달래면서 말이다. 그렇게 말해주는 어른이 있어주길 바랐는데 그때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한다. 나 같은 아이들을 내가 우연히 라도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줘야지, 상처 받지 않게,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도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말로 위로를 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을 줘야지 라고, 다짐해 본다. ■
사진제공: H.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