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새로운 시작.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중순 경이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공간이 있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훌륭한 글들을 나도 매일 접하고 읽었다.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들이 다음(daum) 메인 페이지에 떠서 눈길이 가 클릭해서 읽으며 한참 먹먹했던 적도 있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적도 많았다. 소설을 쓰고 있는 나에게 있어, 브런치는 정말 새로운 글쓰기 공간이었다. 유튜브 등 영상 시대가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지금, 글로만 채워진 공간을 보는 게 나로서는 기쁘기도 하고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연들을 솔직 담대하게 적은 글들을 보면서 크고 작은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고 있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써도 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이 컸다. 글쓰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브런치」 작가님들의 멋진 글을 읽고서는 솔직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또 괜히 헛소리 같은 글들을 가볍게 써서 선보이면 소설 쓰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욕을 먹는 건 아닌지, 그냥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신경이 쓰였다.
소설만을 쓰다 보면 소설적이지 않은 글을 쓰고 싶을 때가 내 안에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설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도 어쩌면 나를 위해 그리고 혹여 내 글을 읽어 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위로와 위안을 받았듯이,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보다 더 감사한 일, 보람된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브런치」에 가입하고 작가 신청을 한 뒤 글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 생활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쓰면서, 나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여행 왔을 때 맛보면 좋을 먹거리를 소개하거나 가보면 인상 깊게 남을 곳을 안내하는 정도의, 가벼운 글쓰기를 하자고 마음먹고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일본 생활과 문화 속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나의 본모습과 대면하게 됐다.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면서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내 이야기까지, 나는 남들 앞에서 잘 하지 않거나 못했던 이야기들을 「브런치」를 통해 풀어내고 쏟아냈다. 어떻게 보면 마음속 이야기들을 토해놓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솔직하고 가감 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니, 시원해졌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뚜껑을 덮어놔서 곪아 터진 상처들과 마주하게 됐다. 글을 쓰면서 그 상처를 하나씩 둘씩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추는 것으로 아픈데도 아프지 않은 척하는 걸 멈추자고 나 스스로에게 자꾸 말을 거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10회 정도 글을 쓰겠다고 한 이야기가 20회가 됐고 『브런치 북』-〔나는 너를 잊을 수 없다.〕,〔축제, 우리는 모두 고독하다〕- 을 두 권 만들 수 있는 분량이 됐다. 「브런치」 플랫폼에서는 이것도 너무 길다고 한 권당 60분 내외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지만, 그것까지 내가 맞추지 못했다. 짧은 글쓰기에 진심을 담는 방법에 대해 지금부터 좀 더 연습하고 연구해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일본 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소소한 이야기들 위주로 글을 썼으나, 이제부터는 〈일본〉이라는 내용에 국한하지 않고 내가 숨 쉬며 바라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브런치」 시작하고 3개월쯤 뒤에, 새벽에 「브런치」 수신음이 계속 울려 잠결에 휴대폰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쓴 「브런치」 중 《도시락, 그리고 버려지는 음식들》이라는 글의 조회수가 1,000이 넘더니 2,000이 되고 3,000이 됐다는 연락이었다. 잠을 자다가 수신음을 봤기 때문에 꿈을 꾸나 하고 다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해봤더니 《도시락, 그리고 버려지는 음식들》이 「브런치」 메인 화면에 소개가 되어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내가 올린 글이 맞아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두 근 반 세 근 반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설레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조회수가 올라갔다고 내가 쓴 글을 독자 분들이 끝까지 다 읽었다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마냥 신나 있었다.
“아, 이래서 유튜버들이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할 때 그토록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꼭 눌러주세요.’를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거구나.”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하루에 많게는 40회에서 적게는 5회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내 「브런치」에 한 번에 3,000이 넘는 조회수는 신기하고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런 감사한 마음이 생기면서 진심으로 기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올린 《엄마의 반찬》은 하루 만에 조회수가 18,000회를 넘었고 통계를 확인할 때마다 올라가는 숫자가 놀랍기만 했다. 다음 날까지도 숫자는 멈추지 않아 24,000회를 넘었다. 듣기로는 100만 회를 넘긴 「브런치」 작가님들도 계신다고 하는데 그런 분들에 비하면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바뀌는 기분이었다.
「미술 치료」,「음악 치료」의 연장선상에 「글쓰기 치료」라는 분야가 있다. 나는 글쓰기 치료라는 것을 이름만 들어봤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6개월이 지난 지금,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나도 잘 몰랐던 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고, 너무 아파서 아픈 줄도 몰랐던 내 마음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느새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살이 돋아난 자리에 이제부터 무슨 이야기가 채워지게 될지, 나도 정말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