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처음으로 다시.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출간까지 애면글면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책을 손에 쥐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생물체를 보는 느낌이지만, 나와는 이제 별개로 세상을 살아갈 책을 보며 안쓰럽기도 했다. 이 작은 책이 사람들 손에 닿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 말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위로와 위안이 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내가 엮어놓은 소설은 그런 온화한 단어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분명 내가 쓴 글이나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각기 강한 생명력으로 이어진 소설들이 됐다. 어떤 흐름에 내 몸을 맡기고, 그 흐름대로 쓰다 보니 7편의 중·단편이 또렷한 경계를 두고 제 얼굴을 드러냈다.
불편한 이야기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소설 쓰는 사람으로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믿음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엄연히 존재하나 무채색인 사람들에게 색깔을 입혀주고 싶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는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색깔이 존재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삶의 색깔을 좀 더 다채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믿음만은 분명히 있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이라고 배우고 자랐다.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가시광선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색깔이 무지개 안에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도 눈으로 볼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없다고 마음에 색깔이 없는가? 오히려 그 종류를 가늠할 수도 없는 무한대의 색깔이 삶 깊숙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무대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알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인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수용하며 감싸는 이타적 배려도 필요한 곳이다.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써서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것도 소설 쓰는 사람의 역할이지만, 괴로운 현실을 함께 고민해보고 더 나은 세상으로 발걸음을 디디게 하는 것도 소설 쓰는 사람의 역할이지 싶다. 7편의 중·단편들이 다소 외골수 같아 보여도 나는 소설가로서 내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두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니, 이제 털고 일어나 세 번째 책을 준비한다. 긴 터널 끝, 아직 검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본다. 사방이 어둡기만 하지만 길 끝에는 빛이 있을 것이고, 빛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길이 나올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멈추지도 머물지도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소설『제주』, 이제는 혼자서 이 무서운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할 텐데 나는 안쓰럽고 짠하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책을 바라본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은 힘들었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끝까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 순간 긴장이었으나 돌아보면 행복하고 때로는 평온했다는 것을 두 번째 책『제주』에게 말하고 싶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진심으로.
부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