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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Feb 05. 2022

제주의 인심.

1. 처음으로 다시.

 물설고 낯선 제주에 집을 얻고 작은 살림살이를 하나씩 마련했다. 언제까지 제주에서 생활할지 알 수 없으나, 제주에서 지내기로 한 이상 이곳에서 잘 지내고 싶은 마음 가득했다. 베란다 밖으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된다.      

 

 제주는 내 오랜 벗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군대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긴 시간들 서로 바빠 자주 연락을 하지 못했고, 이 친구가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더 멀어졌다가 내가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는 더더욱 멀어졌다. 여차 저차 해서 내가 잠시 제주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이 친구는 현재 이곳에 없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원인 모를 통증으로 크게 아팠고, 그때 나에게 제주에 내려와 요양을 하라고 권해준 이가 바로 이 친구다. 스물세 살쯤, 나는 무척 마르고 많이 아팠다. 이 친구는 자기 집에 머물게 되면 불편한 게 많을 거라며 당시 혼자 살며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아저씨 집에 나를 맡겼다.


 나는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잤고 새벽에 자주 깨어 방 안을 오고 갔다. 사진작가 아저씨가 내가 먹는 약을 뺏어 어디다 감춰두었고, 이른 아침에 나를 억지로 깨워 아저씨 차에 태우고는 제주도 이곳저곳을 끌고 다녔다. 친구였다면 나는 엄청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거부했을 텐데, 처음 보는 아저씨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더구나 아저씨 사진 찍는 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덕분에 나는 아저씨 자동차를 얻어 타고 제주도 바람도 질리도록 쐬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친구네 집에 머물렀다면 방구석에만 있었을 텐데, 친구가 왜 나를 사진작가 아저씨 집에 맡겼는지,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의 지혜로운 생각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제주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정이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나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사진작가 아저씨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 나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잠만 잤다. 그런 내 모습에 아저씨가 화가 났는지 아니면 걱정이 됐는지 차 문을 벌컥 열고는 나를 차에서 끌어내렸다. 그러고는 멍하니 있지 말고 아저씨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밥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아저씨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짜증 나는 마음이 뒤섞여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아저씨가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일이었는데 그 일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사진작가 아저씨는 특이하게 ‘말(馬)’ 사진을 찍었다. 말이 멀리 서나 봐야 우아하고 아름답지, 가까이서 보면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황소보다 큰 말이 언제 날뛰며 근육질로 뭉친 뒷발로 나를 공격해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말’을 실제로 본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생경스러워 겁이 나기도 했다. 말이 깃털을 날리며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내가 사진작가 아저씨와 본 말은 진흙 바닥에서 말이 진흙인지 진흙이 말인지 모를 정도로 혼연일체가 되어 뒹구는 모습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왕자님들이 타는 하얀 털이 눈부신 백마 같은 것은, 정말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소리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진흙 묻은 말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아저씨가 나는 이해가 안 됐다. 더구나 말 우리 주위에는 철조망이 꼼꼼하게 다 쳐져있는데, 아저씨가 말을 더 가까이에서 찍겠다고 나 보고 철조망을 벌려서 아저씨가 말 우리 안으로 잘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철조망을 벌리라니, 나는 어이가 없었으나 그거라도 해야 공짜 밥을 먹고 있는 값을 할 거 같아 아저씨 말대로 철조망을 있는 힘껏 벌렸다. 이거 불법 아니냐고, 누가 신고하면 어쩔 거냐고, 초원에서 달리고 있는 말도 많을 텐데 진흙 더미에 있는 말 사진을 왜 찍으려고 하냐고 물었지만, 아저씨는 이미 눈앞에 있는 말에 정신이 나가 있어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거 같았다.     


 비가 오지도 않는데 아저씨가 왜 우비를 입고 있나 싶었는데, 진흙탕에서 말 사진을 찍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저씨가 희한한 포즈를 취하며 진흙에서 뒹굴며 말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누가 오지 않나 망을 봐야 했다. 아저씨가 다소 뚱뚱했는데, 내가 있는 힘껏 철조망을 벌려도 아저씨 동그랗게 나온 배가 철조망에 걸려 나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철조망을 벌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찌나 힘을 주고 철조망을 붙잡았던지, 한동안 손바닥에 철조망 자국이 선명했다. 몽둥이로 손바닥을 세게 맞은 것처럼 빨갛게 눌린 자국을 보면서 나는 아저씨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참 별난 사람이 많구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아저씨 눈에는 스무세 살밖에 안 된 어린놈이 이유 없이 아프고 곧 죽을 거처럼 비실거리는 모습이 더 별났을 거 같다. 아저씨가 나를 처음 봤을 때,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던 것을 기억한다. 내 친구가 앞뒤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야 이해가 된 듯 아저씨가 나를 향하던 당황스러운 시선을 거두었다. 내가 밤새 잠을 못 자고 있으면 아저씨가 자다 말고 일어나 내가 머무는 방에 고개를 들이밀고 내 모습을 확인했었다. 내가 아침에 못 일어나면 나를 강제로 깨워서 아저씨 차에 거의 밀어 넣다시피 해 나를 끌고 다녔다. 그때 내 얼굴에 스치던 제주 바람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더 나아가 내 제주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느리게 회복됐을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나는 제주에 있다. 지금은 내 친구도 사진작가 아저씨도 이곳에 없는데, 나는 스무세 살 그때의 제주 바람을 잊지 못해 이곳에 잠시 거처를 마련했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독특한 환경과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의 이유 등으로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제주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겪어본 제주 사람들은 나 같은 뭍(육지) 사람에게 마음을 잘 주지 않는 거 같다. 그런 내가 제주도 출신의 친한 친구를 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라고 제주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제주를 떠날지도 모르는데 누가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겠는가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제주에서 살고 나서 첫 명절이었다.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댁에서 생각도 하지 못한 명절 음식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아래층에 주인댁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층 현관에 귤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노란 상자가 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썩는 귤도 생겼다. 다음 날이 되면 썩은 귤은 없고 상태가 괜찮은 귤만 그대로 상자에 담겨있었다. 처음에는 왜 귤 상자를 현관 밖에 내놓았을까 싶었다. 먹을 거면 집 안에 들여놓으면 되고, 버리는 거라면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는 건데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귤은 날이 지나면 조금씩 줄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왜 귤 상자가 현관 밖에 있는지 알아차렸다. 주인댁에서 나 같은 세입자들이 오고 가며 가져다 먹으라고 놓아둔 것이었다. 주인댁에서 귤 농사를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제주에는 귤이 흔하고 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나 먹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 귤을 이웃에 나눠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설레는 마음에 귤을 하나 집어 집에 들고 왔다. 그리고 바로 까서 먹었다. 깔 때부터 진하고 상큼한 귤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귤 하나를 입에 넣었을 때, 새콤달콤한 맛에 나는 귤을 처음 먹어본 사람이라도 된 듯 깜짝 놀랐다. 모양은 못 생겼는데, 보기와 달리 아주 달고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사 올 때도 문자로만 주인댁과 인사를 나눴지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고, 부동산을 통해서 모든 연락을 했기 때문에 나는 주인댁 얼굴도 잘 몰랐다. 굳이 서로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됐고,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세입자를 많이도 봤을 주인댁도 나를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명절이라고, 귤이 제철이라고 나에게 바라는 것 없이 음식과 과일을 제공했다. 나는 아무것도 드릴 게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지 미안하고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 가득이었다.     


 뭍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제주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건 소문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아래 사진이 내가 주인댁에게 받은 제주 명절 음식이다. 나는 이 음식을 거의 3일에 걸쳐 먹었다. 먹을 때마다 명절에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에 행복했다. 제주의 인심이 이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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