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6.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by 권상혁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의 하루하루는 쉴 새 없이 흘러간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는 일본어, 부딪힐 때마다 낯설어지는 문화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작은 희망이 고된 노동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준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한국에서 출국하던 몇 달 전보다 무척 야위어 있었다. 쉽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 관리에 소홀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외국 땅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는 반증인지 생각해 보았다.


집 근처에 '돈카츠' 전문점인 ‘가츠야’라는 곳이 있다. 일본에서 ‘가츠(かつ)’는 승리나 행운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시험을 앞두고 또는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일을 앞두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돈카츠'를 먹는다. 또한 힘든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사람들은 돈카츠를 찾기도 한다.


나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니 가볍게 한 끼 해결하기 위해 찾은 '가츠야'였다. 하지만 메뉴판의 다양한 돈카츠 종류를 보고는 나 역시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고 싶어졌다. 메뉴를 보니 여름철이라, 돈카츠와 함께 튀긴 장어도 팔았다. 장어는 ‘우나기(うなぎ)’라고 하는데, 일본에서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삼계탕처럼,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음식이라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음식이기도 했다. 돈카츠의 ‘승리’와 장어의 ‘기력 회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묘하게 조합되며 지친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밥 먹고 힘내자. 어차피 시작한 일,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 남을 도울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리고 남을 돕는다는 것처럼 살맛이 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하고, 정신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야 한다. 4월부터 7월까지 너무 바쁜 나머지 날짜가 흘러가는 것도 그 사이 두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도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러다 나까지 잃어버리기 직전, 잠시 휴식이 주어진 지금의 시간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돈카츠 장어 덮밥을 주문했다.


따뜻한 밥 위에 바삭한 돈카츠와 부드러운 장어를 번갈아 맛보았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는 나를 위한 위로, 그리고 앞으로 내가 도와주고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첫 숟갈을 떠 입안에 넣고 꼭꼭 씹어 먹었다. 묵묵히 덮밥을 비우며, 낯선 타지에서의 고단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희망을 삼켰다.


일본 땅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순간들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꿋꿋하게 버텨내 보려고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힘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또한 나와 너,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말이다. ‘가츠야’의 돈카츠와 장어처럼, 힘든 현실 속에서도 긍정의 의미를 찾아, 묵묵히 나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홀로 고심하는 날이 많았다. 너무나 멀어진 이야기 같아 늘 가슴 한편이 시리고 쓸쓸했다. 서점 앞에서 읽지도 못할 책들을 눈으로 훑어보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인 적도 많았다. 그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서점을 찾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내가 살고 있는 하시모토 집에서 5분 거리에 서점이 무려 3개나 있고, 그중 한 서점은 출퇴근길에 매일 바로 앞을 지나가야 하니 책을 안 보려고 해도 안 볼 수가 없다.


그러니 너무 많이 생각하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류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글을 써보자고 다짐해 본다.


모쪼록 잘 버텨주길, 기운을 내주길,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걸어가 주길, 소중한 나 자신을 더욱 귀하게 생각해 주길. 무엇보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내주길.


 그렇게 살아보자고 마음먹으며 돈카츠와 장어 덮밥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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