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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Jul 12. 2016

브렉시트로 돈을 번 사람들

헤지펀드의 글로벌 매크로 전략

2주간의 휴가를 가기 전날이었던 6월 24일 새벽 1시, 평소에는 깜깜한 월스트리트 오피스들의 불이 환하다. 영국이 EU를 탈퇴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상 초유의 투표 결과를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출근을 한 것이었다. 나도 예외 없이 사무실에서 실시간 뉴스를 크게 틀어놓고 숨죽이며 거래를 시작했다.


이럴수가, 웨일스가 이겼습니다!
지브롤터가 크게 패배하였습니다!


뉴스가 터져 나올 때마다 수많은 환율과 상품들 가격이 요동쳤다. 감히 파운드화는 건드릴 생각도 못 하고 조금씩 조금씩 다른 외환과 상품들의 거래를 시작했다. 잠깐의 실수로 수십만 달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났고 마우스를 잡은 손은 파르르 떨렸다.


새벽 3시, 언론조사와 기존의 예상을 뒤엎고 결국 브렉시트 투표는 영국 탈퇴 쪽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파운드는 끝없이 떨어지고 안전자산인 금과 엔화는 폭등을 하였다. 반대로 말하면, 상대적으로 불안전 자산인 주식들은 모조리 떨어지게 된다. 세상이 망해버리고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면 주식은 크게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계 증시는 모두 하락세 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세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렉시트로 돈을 잃었다.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의 투표 결과를 원망하며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브렉시트로 돈을 번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글로벌 매크로 전략과 퀀텀 펀드


브렉시트와 같은 거대한 세계정세 변화로 돈을 버는 부류는 크게 두 종류이다. 첫째는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적절히 짧은 불균형이나 과도한 움직임을 찾아 거래를 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세계 정세의 흐름을 간파하고 미리 큰 베팅을 하는 사람이다. 전자의 경우는 많은 수가 알고리즘 중심의 단타 트레이더의 경우이고 그들이 수익을 내는 방법은 이전 글인 베팅보단 무역상인거래 버튼을 누르면 일어나는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시장의 움직임과 관계없이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아지는 이런 시기에는 꽤나 좋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은 주로 후자의 경우이다. 국제 정세와 거시 경제의 큰 그림을 미리 파악해서 거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류의 투자 방식을 헤지펀드가 구사하는 여러 가지 전략 중에서도 글로벌 매크로(Global Macro) 전략이라고 한다.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6&no=460679


글로벌 매크로는 다른 헤지펀드 전략처럼 유망한 회사나 몰락하는 몇몇 회사에 포커스를 두는 것보다는 국가 전체의 흐름이나 불균형을 찾아서 장기적인 베팅을 주로 한다.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는 안목, 그것을 적절히 해석할 수 있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글로벌 매크로 전략 헤지펀드로 유명한 곳이 바로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Quantum Fund)이다. 퀀텀 펀드는 무지막지한 수익률과 무자비한 베팅 등으로 헤지펀드의 무시무시한 이미지 자체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이름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퀀텀 펀드는 퀀트 전략이나 투자와는 큰 관계는 없다.


1위의 퀀텀 펀드, 2위의 폴슨&코 모두 글로벌 매크로의 황제들이다



조지 소로스는 냉철한 분석과 엄청난 베팅으로 비판과 존경을 모두 받는 특이한 헤지펀드 매니저이다. 그의 10년 수익률은 4200%로 20세기 최고의 투자가라는 평을 받는다. 현재 80이 넘는 나이임에도 현역으로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고 있으며 이번 브렉시트에서도 도이치 뱅크의 몰락에 베팅하며 282억의 수익을 올렸다.


조지 소로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회자되지만, 영국을 굴복시킨 검은 수요일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검은 수요일 사건을 살펴보면 세계정세를 읽는 것이 어떤 식으로 수익으로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간단하게 소개를 하겠다.




검은 수요일 사건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자율과 경제에 대해 알면 좋다. 환율과 이자율(금리), 국가 경제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자율이 오르면 사람들이 더 많이 저축을 하게 되면서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이 줄게 되고, 이로 인해 돈이 귀해지고 돈의 가치는 상승한다. 돈의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물가는 줄어들게 되지만 금리가 비싸지면서 대출이 힘들어지고 경제활동을 덜 하게 되면서 경제상황이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자율이 내려가면 반대로 돈의 가치는 하락하고 물가는 상승하지만 수출이 용이해지고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게 된다.



때는 1970년, 세계의 패권은 이제 영국과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점점 미국의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은 세계의 중심을 가져오기 위해서 연합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럽은 1979년에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통화제도(European Monetary System - EMS)라는 것을 만들었다.


EMS는 당시에 각각 다른 통화를 쓰던 유럽 간의 환율이 심하게 움직이는 것을 막고 통합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시도했다. 이 중에서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환율 조정 메커니즘(ERM)이었는데, 각각의 환율은 한 환율의 일정 범위 이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조약이었다.


예를 들어, 파운드화는 독일의 마르크화 대비 6% 이상 움직일 수 없다는 식이다. 마르크가 10% 상승하면 파운드도 덩달아 10%를 상승시켜야 했다. 이런 식으로 환율의 움직임을 제한하다가 나중에 하나로 통합하려는 의도였다. 여러 가지 환율은 점점 안정화되고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독일은 경제가 힘든 동독을 위해 동독의 돈을 1:1로 서독의 돈으로 교환시켜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감행하게 된다. 덕분에 막대한 돈이 독일에 풀리게 되면서 돈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고,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돈의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하면서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레를 몰고 다녔던 경험이 있는 독일은 이대로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돈이 종이보다 쌌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선 돈의 가치를 올려야 했고, 이를 위해 독일 정부는 금리를 2년간 10차례에 걸쳐서 올렸다.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겨우겨우 잡아내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유럽 통화의 30%를 차지하던 마르크화의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사람들은 너도 나도 가진 돈을 마르크화로 바꾸려 하였고, 마르크화의 가치는 다른 통화 대비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ERM의 규정 상 마르크화의 환율과 크게 차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를 상승해서 자국 화폐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금리가 상승하자 부채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해고를 하기 시작하고 경제도 둔화되면서 여러모로 힘들어졌다. 독일은 산업 자체가 탄탄하기 때문에 버티기 용이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급기야 유럽의 다수의 나라가 독일에게 금리를 내려달라고 부탁을 하였지만 통일독일은 자국 경제의 안정화가 더 중요하여서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자국 경제의 하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다른 유럽의 국가들은 핀란드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ERM을 탈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의 핵심 세력이었던 영국의 입장은 달랐다. 예전부터 유럽의 금융의 중심을 차지하고 싶어 하였던 영국은 이번 ERM 탈퇴 사태에서 의리를 지킨다면 당당히 유럽 금융의 중심에서 설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영국은 "파운드 화의 가치 하락은 있을 수 없다", "대영제국의 금고는 넉넉하다" 등의 발언을 하며 환율 연동 시스템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영국 또한 실업률이 상승하고 경기는 얼어가고 있었다.


한편 조지 소로스는 영국이 파운드화의 가치를 무리하게 유지한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소로스는 가진 돈과 레버리지를 이용해서 10조 원가량의 파운드화를 매도하고 혹시나 모를 실패를 대비해서 마르크화를 매수하면서 헤지 하였다. 마르크화와 파운드화는 애초에 연동이 되어있기 때문에 행여나 파운드화가 오른다 해도 심각한 손실을 입지 않게 하려는 장치였다.


소로스가 계속 파운드화를 팔자 다른 헤지펀드나 개인들도 파운드화 매도에 동참하게 되고 파운드화는 급격하게 하락하게 된다. 영란 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가진 돈을 모두 이용해서 파운드화를 다시 매입해서 환율 방어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방어 시도는 단 하루만인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영란은행의 잔고가 바닥나게 되고 영국은 끝내 소로스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ERM을 탈퇴하며 실패로 돌아간다.


파운드의 엄청난 추락


이 사건으로 조지 소로스는 단번에 유명해지고 파운드화의 끝없는 추락으로 1조 원이라는 경이적인 수익을 얻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조지 소로스가 파운드를 공격하면서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세계 경제 흐름에서 불균형을 먼저 찾고 기회를 잡은 사람일 뿐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조지 소로스의 간파하는 분석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한 존 폴슨


위의 헤지펀드 순위표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존 폴슨 또한 소로스와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에 대한 흐름에 대한 분석을 하는 글로벌 매크로 위주의 전략을 사용하였다. 그는 주로 과도하게 거품이 낀 시장을 주로 감지하였는데 98년도에 롱텀 캐피털 사태나 2000년대 초에 있던 닷컴 버블 붕괴 모두 예측을 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영화 빅쇼트에서 글로벌 매크로 관점으로 서브 프라임을 예견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역시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었던 2008년이었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 처럼, 그는 주택시장이 심하게 과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대 베팅을 하기 시작했다. 월가와 일반인 사람 모두 주택 시장 호황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을 때 그가 오히려 반대로 투자하여서 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2년 동안 주택 시장이 정점을 찍으며 손실이 점점 커지고 사람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결국 2008년, 시장은 붕괴하였고 그는 200억 달러(약 20조)의 엄청난 수익을 냈다. 세계정세에 대한 안목이 대단한 존 폴슨은 이번 브렉시트 또한 안전자산인 금의 전세계 1.6% 지분을 가지고 있어서 큰 수익을 올렸다.



이 들은 왜 특별했는가?


글로벌 매크로 전략의 거장들을 보면 의외의 공통점들이 보인다. 일단 나이가 상당히 많다. 또한 그들은 세계 각국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경우가 많다. 조지 소로스는 어렸을 때 철도역 짐꾼, 여행 세일즈맨 등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갔고 철학을 공부하였다. 존 폴슨 또한 남미 지역을 여행하다가 현지 생산한 아동용 티셔츠를 미국에 납품하거나 좋은 바닥재를 골라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세계 시장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젊고 똑똑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대박을 자주 내는 월스트리트의 일반적인 케이스와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배경은 퀀텀 펀드의 공동 창업자 짐 로저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와 닿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행과 이야기를 좋아하여서 수많은 경험을 쌓고 체험하였다. 소로스의 공격적인 투자에 반대하여 퀀텀 펀드를 떠난 뒤에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120개국을 돌아다니며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세계 여행을 하며 각 나라의 특징을 책이 아닌 직접 느끼고 체험하며 깨달았다. 암시장에 가서 환전도 해보고 각 나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고 나서 더욱 성장한 투자의 귀재가 되었다.


나는 비록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객관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퀀트 투자 쪽에 몸 담고 있지만, 이러한 경험과 통찰에 의해 성장한 인간의 직감에 대한 굉장한 동경과 믿음이 있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 경험이란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소로스나 로저스, 폴슨 모두 대단한 투자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 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강력한 통찰력이 특별함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브렉시트로 인한, 그리고 그 외의 사건으로 인한 단기적인 수익이나 손실에 연연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경험과 실천으로 통찰력을 성장시키고 발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큰 숙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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