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턴쉽 구하는 과정
이 매거진에서는 제가 인턴 생활부터 지금까지의 직장 생활에 대한 일기와 이야기들을 재구성해 볼 예정입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겨울 방학은 1달이었지만 취업 걱정에 제대로 쉬지도 못 하였다. 미국의 괜찮은 직장들의 취업은 졸업하기 1년 전에 하는 인턴쉽에서 대부분 결판이 난다. 인턴쉽을 한 사람의 대부분이 풀타임으로 전환이 되고 나머지들조차 인턴쉽을 하지 않았으면 추후에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때문에 한 학기 동안 수많은 탈락의 고배만 마셨던 나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반년 전에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월스트리트에서 퀀트 트레이더가 되기로 하였고, 나는 Quantitative나 Trading 혹은 Investment 중에 아무 단어나 있으면 닥치는 대로 지원하였다. 물론 경력이 없으면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비교적 신입을 많이 뽑는 은행이나 실리콘밸리의 개발자 포지션도 많이 지원하였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구직 사이트에 로그인하면 '86군데 지원'이라는 문구가 반겨주었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지원한 숫자이고, 비공식적으로 지원한 것은 더욱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에는 '공채'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기업마다 데드라인을 정하고 서류 전형, 1차 2차 면접 후에 합격자를 정해진 날짜에 발표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주로 필요한 인원이 있으면 홈페이지에 수시로 포스트하거나 조용히 학교나 리크루터를 통해 알린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리크루터들과 활발히 네트워킹하거나 홈페이지를 수시로 체크하지 않으면 어떤 회사가 채용을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따로 결과도 발표하지 않아서 연락이 없으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건지 회사 설명회를 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매일매일 설명회를 갔다. 회사 설명회 자체는 재미있는 편이다. 기업에 대해 배울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기업 티셔츠나 장난감, 기념품 등을 받을 수 있다. 어떤 회사는 설명회에 온 사람 중에 추첨으로 아이패드나 노트북과 같은 큰 상품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정보만 교환하러 온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명회가 끝난 후에 이루어지는 이력서 제출 및 네트워킹 시간. 이력서를 들고서 기업 관계자와 줄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자기 어필을 하다 보면 관계자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당일 혹은 다음날 면접을 보자고 즉석으로 약속을 잡게 된다.
그럼 2시간 뒤에 학생회관 1호실에서 봅시다
성공했다. 사실 기업 설명회와 전화 면접을 몇십번 경험하다 보니 5분 안에 자기소개와 장점을 나열하는, 소위 말하는 엘리베이터 피치는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당자와 이야기하는 이 5분동안 나의 강점이나 매력을 표현하지 못 하면 그대로 이력서는 쓰레기통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절한 농담과 스토리가 섞인 5분짜리 구절을 밤새도록 연습했었다. 진짜는 이제 시작이다. 학교 카페에서 레드 아이라 불리는 독한 블랙커피를 한 잔 털어 넣고 숨죽이며 면접실 안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고 들어왔다. 조나단이라고 소개한 이 분은 5년 차 시니어 트레이더라고 한다. 퀀트 트레이딩 회사는 IT회사와 비슷한 분위기가 많아서 편한 복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먼저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조나단의 말에 거의 녹음된 듯한 대사들을 입에서 뱉어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인터랙티브 한 것들에 대한 굉장한 흥미가 있었고 이는 컴퓨터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블라블라.....
가볍게 소개를 끝내고선 지원 동기나 목표 같은 것에 대해서도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그러자 조나단은 이제부터 기술적인 것을 질문할 것인데 준비됐냐고 물었다. 미국 회사, 특히 금융 회사나 엔지니어 면접에서는 이러한 기술 면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굉장히 세세하고 직접적인 질문을 하기 때문에 처음 접하면 어버버 하다가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 나쁜 평가를 받게 된다. 처음 몇 개월간은 기술 면접에 익숙해지느라 진땀을 뺐었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면접이었다.
"지금부터 묻는 계산 문제를 암산으로 대답해보세요. 각 문제는 5초 드리겠습니다."
36 X 25는?
84의 31%는?
17의 제곱은?
주사위를 한번 던질 때의 기댓값은?
처음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을 때 두 번째 던졌을 때의 기댓값은?
암산 문제이다. 특히나 두 자리 수의 곱셈에서 당황해서 자주 탈락했었다.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도 잠시, 펜과 종이 없이 암산하는 것은 삼각함수의 미적분을 고등학교 때 배우는 엄청난 수학 교육으로도 꽤나 골치 아픈 레벨이었다. 종종 '인도처럼 19단을 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번번이 실패를 한 나머지 거금 $5를 들여서 암산 게임을 다운로드하여서 통학길에 캔디 크러시 사가 대신에 켜서 연습을 하곤 하였다.
수개월간 연습한 효과가 있는지 무사히 통과를 하였다. 혹시나 틀렸을까 봐 대답을 한 뒤에 초조하게 조나단의 입모양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좋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꽉 쥔 깍짓손에 힘이 풀렸다. 암산에서 탈락한 적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면접을 진행하고 싶지 않은 면접관은 주로 "잘 들었습니다. 혹시 회사에 질문 있습니까?"라고 한다. 당시에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였다. 이어서 조나단은 통계 문제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동전을 계속해서 던지다 '앞면-뒷면-앞면'이 순서대로 나오면 그만둘 때 평균 몇 번 정도 던져야 하는가?
농구 경기에서 2점 차이이고 2점 슛을 넣을 확률은 1/2, 3점 슛은 1/3일 때 무슨 슛을 던져야 하는가?
만약 동점이면 자유투를 한다면 자유투 성공률이 몇 이상이어야 2점 슛이 더 좋은가?
선형 회귀에서 최소자승법(Least Square Method)을 증명해보아라
수학과 컴퓨터를 주로 공부한 나에게 통계와 확률은 약점이었다. 그러나 암산보다는 연습으로 어느정도 해결할만했다. 암산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아예 통과를 못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통계 문제들은 차분히 생각하면 풀만했다. 조나단은 마지막으로 컴퓨터 문제들을 던졌다.
C++에서 Constructor는 Virtual이 가능한가?
해시 테이블의 검색, 삽입 속도를 말하여라
52개의 카드를 무작위로 섞는 것을 선형 시간에 하는 알고리즘을 짜 봐라
금융 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공식인 블랙 숄즈를 직접 프로그램으로 짜 봐라
그나마 컴퓨터 문제들이 가장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안심은 할 순 없었다. 오히려 컴퓨터과학과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크고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물어볼 때도 많기 때문이다.
5분 같았던 한 시간이 지나고 조나단의 명함을 손에 쥐고서 면접실을 나왔다. 예감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면접을 완벽하게 보았다 생각해도 한 달 넘게 연락이 오지 않던 회사가 몇십 군데가 넘는다. 괜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는 실망만 커진다.
일주일 후,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권과 함께 "최종 면접에 초대합니다!"라는 메일이 왔다. 10번 정도의 최종 면접을 가보았고 좋은 결과를 못 얻은 경우가 많았지만 최종 면접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광활한 미국에서 일일이 면접자들이 찾아오기 힘들기 때문에 소수의 최종 면접자들은 비행기표와 호텔을 받고서 직접 본사로 모이게 된다. 또한 면접 보러 오는 동안의 식사나 간식도 모두 대신 지불하기 때문에 공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도 선뜻시키지 못하는 호텔 룸서비스나 고급 와인도 이때 많이 먹어 본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5월 방학이 오기 전까지 인턴을 잡지 못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즐길 새도 없이 수학 문제들을 다시 풀었다. 1차 면접과 다르게 최종 면접은 여러명과 더욱 철저하게 기술 면접을 본다. 어떤 회사는 모의 트레이딩을 시키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프로그래밍을 시켜서 구동까지 시켜야 했다. 한참동안 노트북을 쳐다보다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이 회사는 면접 전날에 직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에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그냥 방 안에서 편하게 룸서비스를 먹는 것도 고려해보았지만 직원들과 밥을 먹으며 탐색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싶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내 옆 자리에 있는 주니어 트레이더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묻길래 한국인이라 하였더니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냐고 물었다. 역시 한국인 하면 스타크래프트인가... 나는 비록 고등학교 때 스타크래프트 실력이 반에서 중간 정도로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국에선 괜찮은 축에 속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웃으며 회사 사람들이 포커와 스타크래프트를 굉장히 좋아해서 자주 토너먼트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이 말 때문에 나는 다음날 자기소개 때 스타크래프트가 특기라고 말하였다. 안타깝게도 포커는 못 친다.
다음날, 회사 투어와 함께 한 명씩 차례대로 5명 정도와 면접을 보고 나서야 긴장을 풀고 쉴 수 있었다. 두뇌가 방전되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고 비싼 밥보다는 맥도널드 빅맥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공항행 택시를 타기 직전에 스타벅스에 들러서 뉴욕이 박혀있는 머그컵 하나를 샀다. 면접을 올 때마다 기념으로 하나씩 사곤 했다. 그래 봐야 시카고, 뉴욕, 필라델피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밖에 없지만 말이다.
피로에 꿀같은 잠을 자고 있는 동안 착륙을 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상태에서 핸드폰의 에어플레인 모드를 풀었다. 여러 통의 카톡 사이에서 지메일 알림이 하나 보였다. 숨을 죽이고 열어보았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우리 회사의 인턴 트레이더로 합격하였습니다.
거의 8달이 넘던 긴 여정이 드디어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