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용진 Sep 05. 2016

뉴욕 직장 생활 - 3. 팀 문화 적응하기

팀 문화는 회사마다 다르다



여, YJ! 좋은 아침이야!

좋은 아침입니다!


첫 출근한 지 며칠이 지나고 금요일이 되자 나의 인사에 좀 더 여유가 묻어났다. 데스크에 도착하면 항상 운용(Operation) 팀을 맡은 브라이언이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능숙하게 구석에 있는 나의 자리에 가방을 놓고 2층에 있는 사내 식당으로 가서 아침밥을 사 왔다. 아침밥으로 오트밀, 베이글, 시리얼 등을 골라서 사 먹을 수 있었지만 아침에 쌀밥을 먹는 걸 즐겨하는 나는 괜스레 식당 아주머니께 졸라서 점심에만 파는 6개짜리 참치 롤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었다. 나중에는 식당 아주머니께서 롤을 아침에도 진열해 주셨다.





첫 주의 일상은 느릿느릿하게 흘러갔다. 투자은행에서는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결재 절차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인지 작은 것을 신청할 때에도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야 했고 이메일을 보내면 짧게는 두세 시간, 길게는 며칠씩 걸렸다. 처음에는 이메일과 포털 등의 아이디를 신청하였고 그 다음에는 리눅스 계정을,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에도 하나하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할 때에도 감사팀과 IT팀을 거쳐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메일을 보내도 잊는 경우가 많은지 다시 보내서 상기시켜주거나 전화를 직접 해서 요구해야 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 아무리 인사팀에 이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거나 굉장히 느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국 사람들의 느긋한 일 처리 방식도 한몫하는 듯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통 이메일을 받으면 순서대로 일 처리 하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처리를 하는데, 이런 단순 업무는 보통 우선순위가 낮아서 다른 일이 다 끝난 뒤에 하는 것이었다. 나의 사수인 마이클에게 느린 일처리에 대해 살짝 불평하자, 급하게 하고 싶을 땐 이메일의 '함께 받는 사람' 란에 높은 사람을 넣으면 빨리 처리해준다고 팁을 주었다.



책장의 모습들


마이클은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파생상품의 성경이라고 하는 Hull의 책을 자신의 책장에서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리서치 중심의 팀이라서인지 팀원들의 책상에는 다들 책이 한 가득 씩 있었다. 장이 열리기 전이나 급한 일이 없을 때에는 데스크에서 책을 펴놓고 읽는 팀원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도서관을 연상케 하였다. 내 뒷자리에 있던 MIT 전자과 박사 출신 중국계 퀀트인 짜오의 책상에는 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언제나 아침마다 새로운 논문을 읽고 흥미로운 논문은 따로 쌓아두었다. 호기심에 하나를 집어서 읽어보았다가 첫 페이지의 논문 소개란인 Abstract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살포시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학교를 떠나서도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나 싶어서 조금은 우울해졌다.


지금이야 평범한 일상이 되었지만, 초창기에 팀의 일상을 지켜보다 보면 종종 문화충격을 느낄 때가 있곤 하였다. 첫날에 부장급(Managing Director)이자 리더인 사로지와 대리급(Associate)인 마이클이 허물없이 농담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와 또래인 손자가 있는 백발의 러시아 노인 개발자. 그리고 그 개발자가 한참 어린 마이클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모습은 이질감이 들게 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나 동료와 함께 식사를 하는 한국의 문화와 다르게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점심밥을 사 와서 혼자 컴퓨터 앞에서 먹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트레이더 중에는 나와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는데 과장급 트레이더에게 매번 '에이, 그렇게 하면 털리니까 이렇게 하라니까요~!'라고 호통을 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5시쯤 되면 '딸이랑 스테이크 먹기로 해서 집에 갈게요!' 하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점심에 배관공을 불러야 해서 집에서 일하겠다고 이메일 보내는 사람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꽤나 빡빡하다는 뉴욕의 은행 분위기가 이러니 실리콘밸리의 IT회사들의 분위기가 어떨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20명이었던 주식 옵션 팀은 굉장히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팀이었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과 수학 중심이었기 때문에 중국인과 인도인 비율이 높았지만 물리학의 메카 러시아 사람도 많았고 프랑스 공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프랑스인도 있었다. 다양한 배경인 만큼 다른 나라의 문화나 음식에 대한 관심도 컸고 생각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어서 굉장히 놀랐다. 팀원들은 커피를 가지러 부엌에 오며 가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으면 서울에 사는지, 한식 중에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30대 중반쯤 되는 중국계 트레이더인 시앙은 그중에서도 특히 한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시앙은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여러가지 농담과 뜬금없이 들리는 'Shit! Apple!'과 같은 높은 음의 욕설은 팀원들의 웃음보를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의 별명은 총잡이(Shooter) 였는데, 텍사스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데다 그의 유쾌한 모습이 텍사스의 총잡이를 연상케 한다고 붙여준 별명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총잡이 시앙은 여유가 있으면 코리아 타운에 가서 갈비 런치 박스를 사 오자고 하였다. 그는 한식 중에서도 고기류를 굉장히 좋아해서 피앙세와 이주에 한번은  '돈의보감'이나 '신라 바베큐' 같은데서 삼겹살이나 갈비를 먹는다고 한다. 코리아 타운까지 걸어가면서 며칠 동안 궁금했던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슈터, 계속 궁금했는데 마이클은 어떻게 대리급인데도 업무 지시도 내리고 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가요? 그리고 당신은 박사인데도 트레이더를 하는데 퀀트들과 업무가 어떻게 다른 거에요?"


시앙은 나를 쳐다보더니 좋은 질문이라는 듯 엄지를 치켜세우며 대답해주었다.


"벌써 그걸 파악하다니 눈치가 좀 있네! 팀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팀의 역사를 알면 도움이 될 거야. 은행에서는 팀은 각각 다른 회사라고 봐도 무방해. 서로 문화도 굉장히 다르고 이익도 철저하게 따로따로 가져가지. 어떤 팀에서 돈을 잘 벌면 그 팀은 보너스도 많이 가져가고 설비도 다른 팀보다 더 좋은 걸 이용할 수 있어. 우리 팀은 생긴 지 3년밖에 안 된 신생팀이야."


"헛 3년밖에 안됐나요? 슈터는 얼마나 일하신 거예요?"


"나는 1년반쯤 된 거 같네. 사실 은행은 5년 전만 해도 알고리즘 트레이딩이나 퀀트 쪽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 어차피 호황이라 돈도 잘 버는데 굳이 사파(邪派)인 너디(Nerdy)하고 몸값만 비싼 과학자들을 데려다 설비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지. 그러다가 2008년에 금융위기가 터진 거야. 난리가 났지. 은행은 안정적이면서도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어. 그래서 우리 회사도 퀀트 트레이딩 그룹이라는 초단타매매 부서를 만들게 된 거야."


"지금 저희 부서네요?"


"그렇지. 일단 주식팀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수익을 내기 시작했어. 주식은 하는 사람도 많고 덜 복잡하여서 금방 자리를 잡게 되었지. 하지만 옵션은 주식보다 훨씬 복잡해서 어려웠어. 은행 측에서 2년 동안 서너 명의 리더를 영입해서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어. 거래소와 직접 하나하나 연결을 해야 하는 기술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했지. 그러던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있었어."


"그게 누구죠?"


"그는 경쟁사에서 옵션팀을 처음부터 구축한 엔지니어였어. 초단타 옵션거래는 속도와 기술력, 비용절감이 가장 중요했는데 이를 안팎으로 잘 아는 사람이었어. 그가 바로 우리 팀 리더 사로지야. 사로지를 영입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서 한 팀의 총괄 자리를 제안한 거지."


"아!!! 그 사람이 사로지라니!"


최근에는 아예 반대 상황이 되어가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옛부터 엔지니어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익 부서의 리더 자리는 굉장히 매력적임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사로지는 외부 업체의 시스템 대신 아예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결정했어. 그는 옵션 플랫폼을 처음부터 구축할 드림팀을 구성하기 위해서 은행 내부의 인물들 중 마음에 드는 인재를 데려오기로 했지. 그리고 마침 IT 부서에서 C언어와 시스템 구축에 굉장히 능숙한 신입사원 하나를 발견하게 된 거야. 그가 바로 마이클이야."


"와 신입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다니 대단하네요!"


"마이클은 사로지의 오른팔이 되어서 옵션 플랫폼을 구축하기 시작했어. 비록 트레이딩이나 가격 모델에 대한 지식은 적었지만 둘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점점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팀은 점점 커져서 지금의 모습이 되게 된 거야. 경력은 짧지만 팀 안에서의 시스템은 대부분 마이클의 손을 거쳤기 때문에 그가 주도적인 위치를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작 3-4년 경력으로 강력한 기술과 리더십, 그리고 인맥을 가진 마이클의 이야기는 문화 충격을 넘어서 경외감이 들었다.


"하지만 IT 기술만으로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건 한계가 있지. IT 기술은 남들보다 빠른 것을 보장해주지만 좋은 가격을 보장해주진 않거든. 결국 경쟁력 있는 좋은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 가격 모델 전문 퀀트들을 영입하기 시작하는 거야. 수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모델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지. 나도 처음엔 가격 모델 퀀트로 시작을 하였어."


"아하, 그럼 트레이더는 어떤 역할이죠?"


"트레이더는 주어진 가격 모델과 플랫폼을 이용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사람이지. 알고리즘 트레이딩에서는 대부분 자동화가 되어있어서 매번 거래를 할 필요는 없지만 갑자기 큰 뉴스가 나오거나 시장이 급변하면 그때그때 판단을 하여서 수동으로 결정을 해줘야 해. 만약 큰 뉴스가 예상된다면 미리 예측을 해서 세팅을 바꿔놓기도 해. 나는 모델을 계산하는 쪽 보다 좀 더 다이내믹하게 일하는 게 좋아서 이 쪽으로 업무로 옮기게 된 거지."


"아하 그래서 원치 않는 뉴스가 나오면 욕을 하시는군요!"


"하하 뭐 비슷해. 우리 팀의 업무는 마치 기차와 같다고 생각하면 돼. 퀀트들은 기차가 가야 할 레일을 만드는 역할이야. 퀀트 개발자들은 기차가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을 만드는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로 트레이더들은 기차 조종사라고 생각하면 돼. 아무리 레일과 엔진이 있어도 조종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  기차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지."


시앙의 설명을 들은 나는 팀의 분위기에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었다.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고 휴가를 내지 않는 트레이더와 달리 퀀트나 개발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많은 회사 업무 자체가 이런 식으로 일이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다. IT회사에서 기획을 하는 기획자와 기획안의 모습을 구체화 시키는 디자이너, 그리고 이를 구현시키는 개발자. 혹은 패션회사에서 시즌별 계획을 세우는 머천다이저, 이에 맞는 디자인을 만드는 패션 디자이너, 그리고 직접 옷을 실체화시키는 프로덕션이 비슷한 역할일 것이다.


"와 설명을 들으니 정말 이해가 쏙쏙 되네요. 정말 감사해요!"


"고마우면 갈비 박스는 네가 내는 걸로?"


"아... 네!"


허둥지둥 지갑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자 시앙은 자신의 카드를 내며 말했다.


"다 좋은 사람들이니까 적응 잘 해보라고!"



데스크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시앙의 이야기를 듣기 전과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비록 함께 옆에서 일하지만 업무별로 스타일이나 특징이 다르다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퀀트들은 주로 논문을 읽거나 그래프를 보면서 고뇌를 하고 있었다. 트레이더들은 블룸버그 터미널과 티비 뉴스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보통은 인턴 때부터 업무도 정해놓고 시작을 하지만 나는 특별한 업무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의 업무에 나의 모습을 투영해보고 어떤 것이 제일 맞을지 상상해보았다.




첫 주 금요일이니까 인턴 환영회를 한다고 회식을 하러 가자고 하였다. 항상 가는 스포츠 바가 있었는지 따로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고 다들 거기서 보자고 하였다. 바에 도착하자 스탠딩 테이블에 빙 둘러서서 생맥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첫 주를 보낸 소감이 어때?"


"그냥 정신이 없지만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취미 생활이나 주말 계획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전문용어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여러 가지 이슈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토론을 하기도 하고 정보도 나누는데 각자 자신의 여러 가지 의견을 말하는 모습들을 보고 나도 어서 배워서 함께 의견을 제안하고 싶었다. 40분쯤 지나자 갑자기 한 분이 '저 이만 기차 시간 때문에 가보겠습니다!' 하고 10불을 내려놓고 갔다. 조금 더 지나자 '아내와 저녁을 먹어야 해서 저도 가보겠습니다.' '불금 약속 있어서 저도 이만' 하며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한 시간 반쯤 지나자 나와 시앙만 남게 되고 남은 현금들을 모아서 계산 한 뒤에 밖으로 나왔다. 맥주 한잔만 먹는 회식이라니.. 첫 회식에서 마지막 문화 충격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씩 적응해나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