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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Dec 22. 2016

뉴욕 직장 생활 - 6. 위험한 날들

미국 회사는 천국일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는 하루하루 직장 생활에 적응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학기 중 보다 훨씬 편하였다. 주말과 새벽을 반납하며 밤새도록 숙제를 해야 하는 학교와 달리,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면 사람들과 맥주 한잔을 하거나 집에서 핫한 미드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영화 속에선 월스트리트의 빡센 군기와 시니컬한 상사들에 관해 주로 보여줬지만 실제론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와 서로 배려하는 팀원들 덕에 편안한 마음으로 출근하였다.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보다는 동료 관계에 가까워서 서로 업무적인 이야기만 하고 그 외의 것은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권위라는 것이 딱히 존재하지 않아서 부장이고 사원이고 그저 친구처럼 지낸다. 행여나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고 있으면 당장 집에 들어가라고 한다. 주어진 프로젝트에 대한 진행만 제 때 해준다면 인터넷 서핑을 하든 책을 읽든 크게 신경을 쓰진 않는다. 휴가 날짜가 있다면 달력 사이트에 입력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편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첫 프로젝트를 마무리해가는 8주 차 즈음, 몇 가지 사건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실수의 용납


2012년 여름, 월스트리트를 크게 강타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나이트 캐피탈 사태. 나이트 캐피탈은 뉴욕 증권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증권사였다. 그들은 한 때 미국 주식 거래량의 13%까지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였다. 다양한 알고리즘 트레이딩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 지원을 한 적이 있고, 우리 팀의 강력한 경쟁업체 중 하나였다. 그 날 아침도 평범하게 커피를 들고서 출근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모니터 옆에 있는 작은 뉴스 티비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사람들 틈으로 티비 화면을 쳐다봤다.




속보 - 나이트캐피탈, 시스템 오류로 $4억 넘게 손실

[뉴스핌=김동호 기자] 미국의 증권 중개업체인 나이트 캐피탈 그룹이 전날 발생한 전자거래 시스템 오작동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전날 나이트 캐피탈의 전자거래 시스템 오작동으로 인해 수십여 개의 주식이 큰 폭의 가격 변동성을 보였으며, 이로 인한 손실이 4억 4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나이트 캐피탈이 지난해 벌어들인 수익의 4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며 나이트 캐피탈 주가는 지난 이틀간 거의 75%가량 급락했다. 나이트 캐피탈은 미국의 가장 큰 시장 조성자 중 하나로, 이번 전자거래 시스템 오류로 인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대량 주문이 나왔으며, 이로 인해 150여개 상장종목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오류가 발생한 45분 동안 이들 종목의 가격이 급격한 변동을 보였으며, 이날 시가 대비 30% 넘는 가격 변동을 보인 6개 종목은 거래가 취소됐다. 나이트 캐피탈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문제를 일으켰던 소프트웨어를 시스템에서 제거했으며, 현재는 시장 조성 역할을 무리없이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프로그래머의 치명적인 버그로, 45분 만에 4500억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1분에 100억이 증발한 것이다. 증권 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특히나 같은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하는 우리 팀은 더욱 와 닿는 사건이었다. 직접적으로 우리 팀에게 온 피해는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포착되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버그를 일으켜서 한순간에 저렇게 되는 것을 상상해보니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이트 캐피탈은 결국 부도 직전이 되어서 다른 초단타 회사에게 인수당했다. 단 한 명의 프로그래머 실수로.






사실 거래 알고리즘이나 시스템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검증한다. 테스트 레이어도 두세 겹이 있고, 누군가가 항상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각 대응하도록 되어있다. 버그라는 것은 어쩔수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처나 백업 시스템을 준비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였다. 나도 거래 알고리즘에 관련한 프로그래밍을 할 때에는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하며 테스팅을 하였다.


하지만 나의 실수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보통 지난 거래 데이터로 리서치를 할 때 데이터 베이스 서버에 원격으로 접속해서 데이터의 일부를 가져와서 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전체 데이터에서 아마존 데이터만 뽑아서 저장해놓고 이리저리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뒷자리에 있던 프랑스계 퀀트 프랑수아가 외쳤다.


"뭐야? 데이터 베이스가 왜 이래!"


데이터 서버가 고장 나는 게 잦아서 또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내가 친 명령어들을 다시 체크하였다. 아뿔싸... 원격이 아니라 직접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모든 데이터는 사라지고 아마존 데이터로 덮어씌워졌다. 나는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손이 벌벌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초단타 회사에서 하루하루 데이터의 귀중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돈 주고 사 온다 쳐도 수백만 원 레벨이 될 것이고 애초에 직접 기록한 이런 데이터는 돈 주고도 사 올 수가 없다. 상사들은 모여서 긴급회의를 하였다. 나의 상사 마이클은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허술하게 한 관리자들의 잘못이라며 나를 위로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나는 숨을 죽이며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천만다행으로 당시에 다른 퀀트 하나가 자기 서버에 전체 데이터를 복제해와서 리서치 중이었다. 이를 다시 복원해서 살려놓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연신 죄송하다고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며 사무실을 한바퀴를 돌았다.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야 나와 친한 트레이더 시앙과 시원한 스무디를 먹으며 머리를 식혔다.


"진짜 무서웠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제 실수가 아니라고 위로해주니 훨씬 마음이 좋네요. 정말 너무 다들 착한 것 같아요."


"실제로 시스템적 문제가 있었긴 하지. 그건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착해서라기보다 신입에게 윽박지르고 화내도 달라질 상황이 아니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비슷한 실수 딱 두 번만 더 하면 아무 말 없이 실업 기금 신청서가 집으로 날아와있을 거야. 이해는 하지만 실수가 전부 돈으로 연결되어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무언가 직장 생활의 느낌을 어렴풋이 깨달은 사건이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친절하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든 실적과 결과를 측정하고 있고, 사사건건 얼굴을 붉히기보다 그저 평가로 답하는 방식인 것이다.



소리 없이 사라진 그들


역사가 5년밖에 안된 신생 팀이었던 파생팀은 전체적으로 나이대가 높았다. 아무래도 사로지(부장)가 처음 팀을 만들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은 드림팀을 만들어서 그럴 것이다. 어린 축에 속한 상사 마이클은 30대 중반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40대 중반, 심지어 아들이 30대인 60대 개발자도 있었다. 그나마 나와 2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던 중국계 트레이더 야오와 친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프린스턴 출신의 스냅백을 뒤로 쓴 장난꾸러기 같은 스타일을 가진 야오는 보기와는 다르게 우리 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우리 팀 창립 멤버였던 그는 항상 진취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팀원들에게 제시하였다. 가끔 뉴스를 보며 옆 트레이더들과 분석을 하는 모습을 보면 굉장한 통찰력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디아블로 3을 즐겨하고 포켓몬스터 트위치 방송을 자주 시청한다고 하며 나와 친해지게 되었다.


야오는 얼추 이런 이미지 였다


우리 팀은 아니었지만 옆 팀에 있던 거구의 백인 피터도 나이대가 비슷한 편이라 함께 종종 밥을 먹었다. 피터 또한 스탠퍼드 기계과를 나온 수재였고 종종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이런저런 개념을 많이 설명해주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알고리즘이나 수익 구조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피터는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의 알고리즘의 위대함이나 높은 수익률에 대해 목소리 높이며 피력하곤 하였다. 내가 가끔 질문으로 '근데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그 전략은 위험하지 않나요?'라고 하면 약간 언짢다는 표정으로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하면서 설명해주곤 하였다.


회식 때는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일찍 가게 되고, 그룹 내 유일한 미혼인 셋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밤늦게까지 맥주잔을 기울이곤 하였다. 직장 생활을 처음 하는 나에게는 좋은 멘토이자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월요병을 이겨내려 눈을 비비며 회사에 출근하였다. 습관적으로 아웃룩을 켜서 밀린 이메일을 체크하는데... 야오에게 이메일이 한통 와있었다.


여러분, 5년간 파생 팀에서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제 인생의 더 큰 도전을 위해 그만두기로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두에게 이야기 못 한 점 죄송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야오


금요일에 평소처럼 '월요일에 또 보자!'는 짧은 인사로 헤어졌었는데 머리를 얻어맞은 듯 띵 하였다. 그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였던 팀원들 또한 약간 동요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은, 모두들 늘 있는 일이라는 냥 이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친하고 가족같은 분위기인듯 하지만 프로젝트와 일을 위해 모인 철저한 계약 관계. 그것이 미국 회사의 느낌인가 싶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야오는 중견급 헤지펀드에 굉장히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하였다고 한다. 이직 사실을 알리면 다른 팀원들도 빼갈까 봐 그룹 차원에서 조용히 옮기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야오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금요일에 또 다른 이메일이 왔다. 퀀트 그룹 대표의 이메일이었다.


우리와 함께 하였던 피터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밤 하트랜드 바에서 그의 송별회가 있을 예정이니 함께 그의 미래를 축복해줍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피터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피터 또한 그동안 별다른 말이 없었고 회사 생활에 그다지 불만도 없어 보여서 의외였다. 점심을 먹으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피터의 알고리즘은 3개월째 적자였다고 한다. 게다가 피터조차도 해고당한 것을 그 날 알게 된 것이다. 일반 회사에서는 해고 통보를 하고도 몇 주 정도 유예기간을 주지만 이 쪽 분야에선 알고리즘의 보안을 위해서 월급과 소속은 2달 정도 유지시켜주지만 출근은 금지한다고 한다.


순식간에 나와 함께 일하던 또래 둘이 사라졌다. 한 명은 자의로, 한 명은 타의로.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간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결국 모두 서로 나중에 다시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 고용 시스템은 쌍방 At will이다. 직원도 언제든지 그만두고 일을 나오지 않아도 되고, 고용주도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물론 상도덕상 2주간 정도의 유예기간을 서로 두긴 하지만 법은 아니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는 단지 보험이나 연금을 제공해주냐 뿐이지 고용의 안정성과는 무관하다. 말로만 듣던 이런 시스템을 실제로 겪은 첫 사건이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한다


내가 일했던 퀀트 초단타 트레이딩 그룹은 총 50명 정도였다. 약 30명으로 이루어진 주식 통계 아비트라지 팀과 20명 정도로 이루어진 파생상품 마켓 메이킹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식 팀은 주로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서 주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하고 그 요인이 과거 통계와 벌어졌을 때 거래를 하는 방식을 구사하였다. 반면 파생 팀은 가격 모델을 사용해서 상품의 가격을 정하고 이보다 싼 값에 사거나 비싼 값에 파는 중개상인 전략을 사용하였다.


두 팀은 팀원 구성과 배경 모두 비슷하였지만, 분위기는 꽤나 달랐다. 나의 팀인 파생 팀은 중개 상인 전략이었기 때문에 큰 뉴스나 이변이 없는 한 꾸준히 돈을 벌었다. 이미 어느 정도 정립된 가격 모델이 있었고 더 많은 거래 확보를 위해 주로 더 빠른 속도와 시스템에 더 치중하였다. 퀀트들은 손해 보는 경우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최대한 안전한 방향을 모색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였던 '최적의 헤지 주기' 같은 리서치가 바로 그런 경우다.


반면에 주식팀은 통계적으로 벌어진 틈, 즉 주식 시장에 잠시 생긴 불균형을 포착해서 재빠르게 수익을 내야 했다. 이런 틈을 퀀트들은 '알파'라고 부른다. 시장에 생긴 틈, 즉 알파를 많이 찾으면 찾을수록 그들의 수익은 크게 늘어나고, 반대로 그런 부분을 찾지 못하면 수익이 없다. 그래서인지 여유로운 파생팀에 비해 주식팀은 언제나 전투적이고 치열해 보인다. 피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듣기로는 좋은 수익을 내면 페이 또한 굉장하다고 들었다.


두 팀 모두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그룹의 주도권은 주식팀이 주로 가지고 있었다. 그룹 대표 또한 주식팀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파생 팀은 신경 쓰지 않아도 꾸준히 돈을 벌지만 주식팀에 비해 큰 금액은 아니었고, 주식팀은 나날이 성장하고 매출이 늘어갔기 때문이다. 파생 팀에서 값비싼 데이터를 요청하면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주식팀에서 데이터를 요청하면 다음날에 준비가 되어있기도 했다. 어차피 파생팀과 주식팀은 데이터를 공유하였기 때문에 주식팀에게 대신 데이터 요청 좀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주식팀에는 한국 분도 계셨는데 그분이 종종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그 치열함과 거대한 스케일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셨다. 그분은 지금도 여러 방면에서 나의 멘토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변했다. 평범한 오후에 그룹 대표가 그룹 전체에 대한 긴급 회의를 소집하였다. 팀끼리 회의를 가지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룹 전체가 회의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퀀트 그룹 여러분, 오늘은 안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전체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대표는 그룹원들을 한 바퀴 휘익 들러보면서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 방면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우리 투자 은행은 퀀트 주식팀의 해체를 선언하였습니다. 이제 퀀트 그룹은 파생팀 단독으로 운영합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주식팀 해체라니? 이유가 뭐지? 그럼 30명은 전부 어떻게 되는 거지? 심지어 그중에는 입사한 지 3일밖에 안된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듯 회의장 안은 웅성 웅성댔다.


"주식 팀원들에 대한 처분은 각자 알려드릴 겁니다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만 미리 알려드립니다. 내일 개별 미팅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 해산하겠습니다."


30명이 하루 만에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거대 은행은 해고를 그나마 적게 하는 편이라고 해도 좌천이나 서포트 팀으로 떨어질게 분명한 지금 다들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의 책임이 거대 투자 은행의 무분별한 투자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부는 2010년에 은행을 규제하는 도트-프랭크 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투자 은행이 고객의 요구 없이 내부 자본을 투자 할 수 없는 규정인 볼커룰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규제가 시작되면 은행은 수익률이 좋은 '투자'라는 행위 자체가 금지되고 고객의 요청을 대행하는 '수수료' 개념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많은 은행과 자본가들의 반대에도 볼커룰은 통과가 되었고 2012년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전 연방 준비 은행 위원장 폴 볼커


많은 투자 은행들은 이 규제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모건 스탠리는 투자 기구를 분리하여서 헤지펀드로 만들었다. 골드만 삭스는 고객 자산 관리 시스템과 투자 시스템을 통합하여서 규제를 피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은행은 정치적인 의견 차이로 그룹 대표 간의 합의점을 못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규제가 시행되고 '투자'로 분류되었던 주식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재밌는 점은 파생상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중개 상인 전략으로 돈을 버는 파생팀은 비록 고객은 따로 없었지만 고객들에게 좋은 가격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수수료' 쪽으로 분류되었다. 사실 방식의 차이이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두 팀인데도 말이다. 파생팀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미국에서는 회사 상황이 나빠지거나 팀 전체의 존속 가능성에 의문이 들면 가차 없이 레이오프(구조조정)에 들어간다. 레이오프는 한 사람이 잘 했냐 못 했냐를 떠나서 팀이나 그룹, 심지어 자회사 전체를 없애는 대규모 해고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올해 애플이 무인 자동차 사업이 잘 안되자 그 팀들을 통째로 해고한 사례 같은 것이다. 잘 굴러가는 팀이라고 안심 할 수는 없다. 기업은 최적화라는 명목하에 재배정(restructuring)을 주기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몇몇 조직을 합치고 쪼개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해고당한다. 언제 어떻게 레이오프가 나를 찾아 올 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미국 직장인들은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고 한다.


볼커룰 시행까지 3달 정도 남아있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보다 바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자주 커피를 마시러 내려갔다. 아마 헤드헌터와 통화하고 면접을 보는 것일 것이다. 파생 팀에서 살아남은 나에게는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오히려 이 사건은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1년 후에 나에게 굉장한 기회와 커다란 위기로 찾아온다. 다음 기회에 그 이야기를 풀도록 하겠다.


무서운 사건도 많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진취적이고 재밌는 회사 생활이 즐겁다. 미국 회사 생활이 천국이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매일매일 자유롭고 즐겁게 일 할 수 있지만 언제나 준비해야 하는 정글 같은 이 곳, 웰컴 투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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