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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May 26. 2017

뉴욕 직장 생활 - 7. 이직, 2편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


뉴욕 직장 생활 - 7. 이직, 1편 보러가기



"아니 저번 주까지 확실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미안하네, 갑자기 팀 사정이 안 좋아져서 말이지... 이해해주게"

이직을 준비하기 한 달 전, 팀 사정이 안 좋아지자 나는 로봇 자산관리 팀으로 부서 이동을 해보려고 시도하였다. 은행 내부에서 퀀트 부서는 힘을 잃었고 그 외에 기존의 알고리즘을 써먹을 만한 부서는 로봇 자산관리 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자산관리 팀 대표에게 접촉하여서 알고리즘 소개를 하였고 팀에 도움이 될만한 프로젝트들을 정리해서 보내줬다. 자산관리 팀장은 굉장히 반기며 바로 부서 이동을 추진하고 부서이동이 거의 확정되는 듯해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되었고 나는 회사 내에서 가라앉는 배에 있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나에게 가장 많이 도움을 주었던 사수 우디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건 제이크 짓일 거야. 아마도 알고리즘을 다른 부서에 뺏겨서 실적이 악화되고 정치 싸움에서 밀리는 게 두려웠던 거야."


제이크는 우리 그룹 총대표이다. 그는 당시 투자 은행 서열 20위 정도였는데 뛰어난 프로젝트 성과로 다음 파트너 승진이 거의 약속된 상황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터진 오바마의 초단타매매 규제 사태 때문에 승진 순서가 다른 그룹 대표로 넘어가게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그룹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승진에 방해가 될만한 일들을 막은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겐 생계가 달린 일인데 고작 자신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나의 부서 이동까지 막다니 너무 분하고 속상하였다.


그렇게 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 곳은 실패. 나머지 면접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리처드입니다. 다음 주에 다음 회사에 대한 면접이 있을 것입니다. 현재 총 3명이 있는 스타트업 트레이딩 회사입니다. YJ 씨의 현재 팀과 동일하게 파생 상품 초단타 거래를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작 단계다 보니 여러 가지 시스템을 설계해야 하고 거래까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거래 경험과 개발 경력 모두 있는 사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YJ 씨의 현재 배경이 딱 맞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 중이에요."


"네 저도 좋은 기회인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회사 측에서 면접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코딩 테스트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편하신 장소에서 하시면 되고 이메일을 받고서 이틀 내로 작성해서 보내주시면 된다고 합니다. 언제가 편하실까요?"


"음.. 목요일에 보내달라고 해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면접을 할 때는 집에서 미리 하는 코딩 테스트나 온라인 수학 시험도 굉장히 많이 한다. 알고리즘 문제일 때도 있고 어떤 간단한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어보라는 과제도 있다. 내가 면접관일 때도 이상한 퀴즈 문제보다 코드 몇 줄을 보는 게 더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쉬웠다.


며칠 후 이메일을 받았다. 연속된 주문 데이터를 받으면 효율적인 자료구조를 이용해서 시장 가격 상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신입 때 입사를 하고 처음 만들었던 '가상 시장 시뮬레이션 시스템'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나는 능숙하게 이메일을 받은 지 세 시간 만에 완성을 하고 테스트를 끝마친 후에 소스코드와 주석을 추가해서 답메일을 하였다. 이번 회사는 느낌이 좋았다.


회사에 대해 궁금하였기 때문에 이메일 보낸 사람 이름을 토대로 검색을 해보았다. 유명 헤지펀드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였고 투자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으로 나왔다. 큰 회사에서 정치와 절차에 치인적이 많기 때문에 작은 회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며칠 후 회사에 면접을 하러 도착하였다. 50층짜리 건물의 한 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3명이 사용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전망이 좋았다. 첫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시스템 총괄 개발자이자 CTO 역할을 맡은 인도 사람이었다.


"반갑네, 나는 아크닐이라고 하네. 자네 코드를 검토해보았는데 실무에서 사용하는듯한 구조를 쓴 인상을 받았네. 이런 쪽 프로젝트도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가상 시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일 년 정도 하였습니다."


"그렇군. 사용한 자료구조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겠나?"


"호가를 저장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초단타 시장에서는 빈번하게 주문 및 취소가 일어나기 때문에 자료 입력과 삭제가 log(n)으로 빠른 이진 검색 트리 구조를 사용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시장이 모멘텀 상황일 경우 가격이 치우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으로 밸런싱을 해주는 레드-블랙 트리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그렇지. 우리도 레드-블랙 트리 구조를 이용한다네. 그럼 다른 설계 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겠나?"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여서 그런지 할 이야기도 많았고 겹치는 기술도 많았다. 이전 면접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야기를 하였고 이력서를 보며 했던 프로젝트 정리를 열심히 해두어서 인지 유창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경력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이전 면접처럼 기초 개념이나 수학 문제보다는 프로젝트 단위로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문제를 틀릴 걱정을 하진 않아도 되어서 좋다.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음 면접관이 들어왔다. 그는 알고리즘 개발과 데이터 분석을 주로 하는 중국계 퀀트였다.


"하, 또 A 은행 사람이군."


그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하였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다. 아마도 우리 팀 다른 사람들도 이 회사와 면접을 봤었나 보다. 말투를 보아하니 그다지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진 않다.


그는 데이터 분석과 시장에 대해 주로 물어보았다. 나는 주식 알고리즘 개발에 주력하였기 파생 알고리즘에 대한 지식이 약했다.


"옵션에는 여러 가지 성분이 있지. 감마가 지나치게 쌓일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였나?"


"아...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로 주식 거래를 하였습니다."


"음.. 우린 주식 거래 쪽은 아직 계획이 없는데. 그럼 파생 거래에 대한 프로젝트는 어떤 것을 했나?"


"그다지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알겠네... 그럼 파이썬과 데이터 분석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까 하네."




무난하게 흘러갔지만 아무래도 작은 회사다 보니 당장 비즈니스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찾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같은 분야 사람이라고 해도 아직 내가 많은 부분을 커버할 정도로 경력이 긴 것은 아니었다. 연봉을 더 주더라도 개발과 파생 거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듯하였다. 아쉽지만 느낌상 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 두 회사가 남았다. 하나는 내가 직접 지원한 뉴욕에 있는 거대 헤지펀드였고 나머지 하나는 리처드가 연결해준 시카고의 트레이딩 회사였다. 두 회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았다. 모두 수익형 알고리즘을 개발하면 그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회사였다. 시카고 회사는 생긴 지 5년 정도 되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직원수는 20명 정도였지만 앞으로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트레이더가 두배가 늘어난다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성장이다. 직원 리뷰를 보니 수익 배분도 굉장히 높지만 아직까지 불안요소도 많다고 한다.


뉴욕 회사는 퀀트 업계에서는 굉장히 긴 20년 이상 된 회사였다. 퀀트들에겐 이름만 말하면 아는 회사이지만 굉장히 냉혹해서 조금만 손해를 반복하면 바로 해고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초단타 퀀트 업계는 크게 투자자의 돈을 굴려주는 곳과 개인 알고리즘을 만드는 회사로 나뉜다. 앞선 두 회사는 투자자의 돈을 굴리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 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어렵고 회사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남은 두 회사는 개인이 수익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얻은 수익만큼 연봉을 가져가는 회사이기 때문에 면접 전략을 조금 다르게 짜야했다. 이전 면접은 회사에 어떠한 도움이 될만한 프로젝트를 했고 기술이 있는지 논하는 자리였지만, 남은 회사는 그저 내가 가진 알고리즘의 수익률과 작동 원리만 말하면 된다. 이 알고리즘이 마음에 들면 회사는 고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고용'이라기보다 알고리즘에 대한 '투자'에 가깝다.


"내일이면 시카고로 떠나시겠네요? 준비는 좀 된 것 같나요?"


"네.. 긴장되네요 정말. 개인 투자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게 예전부터 꿈이었거든요."


"자 그럼 먼저 면접 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이 회사는 제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서 잘 알고 있어요. 첫 번째 면접자는 개발자인데 평소처럼 코딩 문제을 잘 대답하시면 될 거예요. 제가 기출문제를 이메일로 보내 뒀으니 호텔에서 미리 한번 훑어보세요. 두 번째 면접자는 본격적인 퀀트 트레이더일 거예요. 구구절절한 이야기 하지 말고 수익 알고리즘의 원리만 보이시면 될 것입니다. 이미 이력서에서 관심을 보였으니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특히나 이 회사는 상품 거래가 주력이기 때문에 주식 쪽 사람을 필요로 하니 주식 쪽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어필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상세하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면접자는 CEO가 들어옵니다. CEO는 알고리즘보다 회사 성장에 함께할 사람인지 더 중점적으로 볼 거예요. 특히나 이번에 뽑을 사람은 주식팀의 팀장 자리를 줄 예정이라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자신감을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네요 리처드 씨."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는 10월임에도 영하 20도였다.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고 상품 거래소 옆에 있는 회사로 찾아갔다. 놀랍게도 시카고에서 이루어진 면접은 리처드가 말한 대로 진행되었다. 개발자가 준 문제들 중에는 리처드가 준 기출문제와 완전히 똑같은 것도 있었다. 두 번째 퀀트 트레이더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자기소개나 프로젝트 설명보다 알고리즘 자체에 대한 설명을 주로 하였다.


"BARRA 리스크 팩터를 이용해서 수익률을 팩터 별로 나눕니다. 20 마이크로초 단위로 쪼개서 계산을 한 뒤에 시장과 괴리가 생기면 통계적 차익 거래를 시도합니다."


"오 그렇군요. 통계적 차익 거래는 죽어가는 전략이라는 말이 많은데 또 다른 연구 계획은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지금 애널리스트 평가와 뉴스 데이터를 자연 언어 처리 기술로 분석해서 빠르게 움직이는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만든 전략도 시뮬레이션에서 꽤나 좋은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통계적 차익 거래로 수익을 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전략을 연구할 생각입니다."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CEO와의 면접은 면접이라기보다 CEO의 설득에 가까웠다.


"우리 회사는 시카고 내에서도 최고의 복지로 유명합니다. 근속 1년 차에는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을, 2년 차에는 유럽여행을 보내드리고 매해 좋은 기념일 선물이 기다리고 있지요. MBA나 대학원 학비 또한 모두 아무 조건 없이 무료로 제공해드립니다. 많은 우리 회사 직원들이 파트타임으로 시카고 대학이나 카네기 멜론 대학 등에서 MBA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지요. 저희는 유연 공휴일 제도를 이용해서 공휴일에 회사를 나오면 다른 날에 쉴 수 있습니다. 탁구 좋아하시면 탁구 대회도 있고요."


아무래도 아직 성장 단계에 있는 회사이고 주변에 워낙 유명한 헤지펀드나 트레이딩 회사에게 인재를 뺏기다 보니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면접이 끝난 뒤에 좋은 느낌이 왔다. 이번에는 좋은 인상을 남긴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며칠 후에 뉴욕에 있는 회사와도 면접을 보았다. 시카고 회사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을 하자 마찬가지로 굉장히 좋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3년간 개인 인공지능 개발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던 보람이 있던 것 같다.


"YJ 씨! 좋은 소식이 있어요. 아무래도 시카고 회사에서 오퍼를 줄 모양입니다!"


"와 정말요? 좋은 소식이네요!!"


"예 이미 HR과 통화를 하고 오퍼에 대한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연봉은 어느 정도 선을 예상하시나요?"


"아무래도 이직이다 보니 현재 연봉의 20% 정도는 상승하는 게 좋겠지요?"


"예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시카고는 뉴욕 연봉에 비해 20% 정도 낮게 책정이 되어있어서 많은 상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현재 연봉이 X만 정도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제가 1만 불 정도는 올려보겠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감사합니다!"


헤드헌터는 구직자의 연봉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신에게 들어오는 수수료도 높아지기 때문에 최대한 연봉을 올리려고 한다. 연봉 협상을 해야 하는 수고가 덜어지기 때문에 훨씬 편하다. 거기다가 오퍼를 취소하거나 불이익을 줄까 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힘든 점을 헤드헌터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더욱 편하다.



연봉 협상, 그리고 결정의 시간



며칠이 지나자 시카고 회사의 HR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퍼 레터에는 연봉이 적혀있었는데 리처드가 말한 대로 1만 불이 올라가 있었다. 헤드헌터의 정보력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 레터에는 CEO가 말한 대로 여러 가지 복지들이 적혀있었는데 하나 같이 매력적인 것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메일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에게 회의실로 조용히 불려 갔다.


"YJ,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너를 불렀어."


"네 무슨 일이시죠?"


"음... 내가 사실 어제 뉴욕 T 헤지펀드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는데..."


T 헤지펀드라면 내가 면접 본 회사 아닌가? 도대체 왜 연락을 한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지원서를 작성할 때 직장 동료 란에다가 상사를 썼던 기억이 있었다. 보통 취업을 할 때 그 사람의 배경을 조사하기 위해서 직장 동료나 교수의 연락처를 적어내게 하는데 입사 전에 전화를 해서 어떤 사람인지 체크하는 과정이 있다. 당연히 나에게 먼저 합불 통보를 하고 나서 연락이 갈 줄 알았는데 날벼락이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묻더군. 좋게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나는 아직 네가 필요해서 말이야. 이건 이해관계 상충(Conflict of Interest)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할 수 없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으로 부탁드린다고 이야기했어."


뜻밖에 이직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서 당황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조용히 이직이 결정 난 뒤에 통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불편한 시간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도 기뻤던 것은, 이렇게 배경 조사가 들어갔다는 것은 합격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직을 준비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 그리고 어떤 점을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자. 연봉이나 프로젝트 등등."


마이클은 정말 좋은 상사였다. 3년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주었고 많은 부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봉을 두배로 올려준다 해도 떠날 때라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아시다시피 오바마와 도트 프랭크의 초단타 규제로 인해 앞으로 은행에서 할 일이 많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저는 입지가 굉장히 불안하고요. 최근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없지 않나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지금 시스템 개발 팀과 협력해서 여러 가지 활로를 모색하고 있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예정이야."


"아쉽지만 저는 설계보다 시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렇군... 그럼 언제쯤 이직할지 생각해보았나? 인수인계를 할 준비를 해야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T헤지펀드에게 연락해서 추천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 하루쯤 지나자 T사에서도 오퍼 레터가 왔다. 시카고 회사보다 연봉이 30% 정도 높았고 대신 다른 금전적 복지 혜택은 거의 없었다. 뉴욕과 시카고의 물가 차이를 생각하면 비슷한 연봉이라고 보면 되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하였다. 거대 헤지펀드인 뉴욕 회사와 성장하는 시카고 회사. 어차피 수익형 알고리즘이 있는 이상 큰 회사의 장점은 거의 없다. 투자 은행에서 큰 회사에 대한 경험은 이미 해봤기 때문에 작은 회사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게다가 수익 배분은 시카고 회사가 더 좋았다. 그러나 성장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배울 기회가 좀 더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링크드인에서 동료들의 프로필을 보면 아무래도 뉴욕 회사보다 조금 떨어지긴 했다. 1억이 넘는 MBA 학비를 지원해줄 수도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그렇지만 트레이더 자체가 MBA는 별로 필요 없다. 반면에 다시 생각하면 팀장급이 되면 많은 자유도가 생길 것이란 장점도 있다. 머리 속이 너무 복잡했다.


전반적으로 시카고 회사가 기회가 더 좋아 보였다. 그러나 또 하나 발목을 잡는 것은 바로 이사였다. 이미 뉴욕에 많은 부분 정착을 하였고 친구도 많이 생겼다. 시카고도 한번 살아봤기 때문에 익숙한 도시지만 다시 시작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리처드와도 끊임없이 상의하였다. 물론 리처드는 태연한 척하면서 시카고 회사를 적극 추천하였다. 내가 직접 지원한 뉴욕 헤지펀드로 갈 경우 리처드는 아무런 수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뉴욕 헤지펀드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카고 회사에서 주는 기회가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마음을 기울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쪽에서는 기회적인 측면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여러 가지 성장한 팀 내의 퀀트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확실히 이 쪽은 베테랑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내가 면접 때 이야기하지 않았던 몇 가지 연구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자 이미 비슷한 알고리즘 플랫폼이 있다면서 아이디어를 다듬어주었다.


이 통화를 통해서 나는 결국 뉴욕에 남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짐짓 아직도 고민하는 것처럼 하면서 협상을 시도하였다. 오퍼 협상은 굉장히 중요한 단계이다.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커리어 센터에서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예를 들어, '먼저 원하는 금액을 이야기하지 말라.' 라던가 '언제나 고민을 10초 정도 하는 듯한 표시를 하거라' 라던가 'BATNA(협상 도구로 이용할 차선책, 이 경우 다른 회사 오퍼)를 가지고 있다면 공격적으로 이용해라' 같은 것이 있다. 이 협상 단계를 잘만 이용하면 아무리 같은 조건의 직원이라도 연봉이나 대우가 1.5배 혹은 그 이상 차이 날 수도 있다.


"아 그리고 제가 MBA나 인공지능 쪽 대학원을 생각 중인데 다른 회사에서는 학비 지원을 해준다고 해서요... 혹시..."


"음... 아쉽게도 우리는 학비 쪽 예산은 없는 상태라네. 그렇지만 이걸 내가 이야기하지.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하면 수업 같은 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네. 그리고 그 인공지능 연구로 큰돈을 벌기 시작하면 학교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질 거라 장담하네."


"아... 그런가요. 그렇지만 또 연봉 측면에서도 아무래도 조금 떨어지는 것 같고..."


"음 연봉도 최대한 맞춰준 것이긴 한데.. 좋네 오퍼보다 연봉 1만 불 상승 어떤가?"


"연봉도 연봉이지만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2월에 보너스 주시는 것 아시죠? 그때 보너스를 받아야 하는데 일찍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금도 조금 챙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계약금을 잘 주지 않는 편이라네. 연봉 상승 정도면 괜찮은 딜 같지 않나?"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미 일주일간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 하는 수 없지, 계약금 1만 불 추가. 이 정도면 어떤가?"


좋다. 10분 시간 투자로 1만 불과 1만 불의 연봉 상승을 가져왔다. 이 정도면 좋은 협상이었다고 생각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지요?"




리처드에게 시카고 회사를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때는 마음이 정말 불편하였다. 나를 위해서 한 달간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리처드는 프로였다. 아쉽다는 말은 하였지만 실망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이직 때도 자신을 찾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는 리처드의 실력과 세심함에 이미 감동을 받은 뒤였으므로 다음 이직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리처드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인수인계를 위해 평소에 잘 작성하지 않는 위키를 작성하였고 팀원들에게 나의 이직 사실을 알렸다. 축하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링크드인 신청이 쏟아졌다. 이제 다른 회사가 되면 자주 연락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는 것 같았다. 송별회에서 사람들과 뜨거운 포옹을 하였는데 첫 직장을 떠나는 것이어서인지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회사에서 떠나는 것이다. 첫 상사, 첫 팀, 첫 프로젝트, 첫 출근..


나의 첫 이직 과정은 힘겨웠지만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금융이나 IT 업계에선 연봉 상승을 위해서 2년마다 이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번 이직할 때마다 연봉이 20-30%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힘겨운 과정을 겪고 나니 그렇게 하는 것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3년째 뉴욕 헤지펀드에서 일하고 있다. 다음 이직은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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