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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Jul 24. 2017

뉴욕 직장 생활 - 8. 네트워킹

학연 지연 그리고 인맥 관리

"안녕하세요, 바클레이스의 파생상품 부서에 있는 데이빗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저는 골드만 삭스 외환 초단타매매 부서의 애널리스트 제레미라고 합니다."


"초단타 부서라면 요즘 병렬 데이터 분석 기술이 핫하던데 좀 쓰시나요?"

"아 마침 K사의 솔루션을 사용하는데 매우 편리하더군요. 단점은 그래프 기능이 부실합니다."

"오 저희도 K사와 P사 중에 고려하고 있었는데 그래프는 필요 없으니 K사가 나쁘지 않겠네요."

"필요하시면 K사 연락처를 드릴게요. 이 친구가 일 처리를 잘하더라고요!"



흔히 있는 네트워킹 파티나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네트워킹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익숙한 단어이다.


'인맥 관리'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들리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랑 꽤나 다르다. 학교 생활부터 직장, 비즈니스까지 네트워킹이 빠지는 일이 없다. 한국에서 금기시하는 학연, 지연 그리고 소위 말하는 빽 같은 것들 또한 강력한 능력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이런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미국의 추천 문화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서류상으로 성적과 스펙이 좋은 사람보다 이미 검증된 사람의 소소한 추천 한마디를 더 중요시한다. 미국의 커리어 사이트 비욘드 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인사 담당자의 71%가 지인 추천을 통해 채용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 답하였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


지인 추천 채용이 40%를 차지한다.
지인 추천 채용은 만족도 또한 높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연고와 인맥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학연과 지연 같은 연고를 다른 사람과 나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실력이 있고 필요한 사람을 찾을 때 그냥 찾기 어려우니까 좀 더 알기 쉬운 학교 네트워크나 여러 가지 인맥 채널을 동원하는 것이다. '목적' 자체는 능력이 출증한 사람이나 적합한 비즈니스 상대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자격 미달이면 당연히 연줄이고 뭐고 없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학연과 지연 자체가 달성해야 할 '목적'이 되어버린다. 연고나 소속 자체가 자신의 아이덴티티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XX 대학 출신 아무개입니다.' 혹은 '저는 XX 전자를 다니는 아무개입니다.' 식의 소속을 강조한 자기소개들이 이를 반영한다. 때문에 실력이나 비즈니스의 성공 이상으로 학연, 지연이 목적성을 가지는 것이다.


'미국 생활에서도 학벌이랑 인맥이 진짜 중요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이런 부분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 직장 생활에서 인맥이란 것이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해지라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신이란 브랜드의 노출도를 높이고 정보력과 마케팅 파워를 가질 수 있도록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마케팅(=인맥) 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콘텐츠 없이 브랜딩만 하는 스타트업은 붕괴하듯이, 자신에게 그만큼의 콘텐츠(=실력)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높은 사람이 지인 추천을 해도 실력이 없으면 탈락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볼 수 있다.


다양한 사람과 네트워킹을 할수록 정보력에 큰 우위를 가지게 된다. 나에게 맞는 기회가 드넓은 땅에서 언제 어디에서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가지려고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다. 이런 네트워킹보다 점수와 자격증 같은 능력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특징이 미국에서 취업이나 고위직 진출에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요즘은 중요성이 많이 알려져서 덜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3, 4학년이 되도록 학점과 자격증에만 몰두하여서 좋은 학위에 좋은 성적을 가지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방식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네트워킹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와 친한 동생 하나는 취직을 위해서 프로페셔널 전문 SNS인 링크드인에서 수십 명의 동문을 찾아 이메일을 하거나 무작정 전화를 해서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고, 까이기도 하고 그랬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 못 하였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투자 은행의 네트워킹


입사 한지 몇 주 채 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네트워킹 이벤트에 관련된 이메일과 이벤트 초대장이 날아왔다. 페이스북에서는 같은 해 동기끼리의 그룹에도 초대되었다. 주로 '금융 위기 이후 파생상품 데스크의 미래에 대한 토론' 같은 멋져 보이는 주제로 모인다고는 하지만 사실 상 만나서 와인 한잔 하며 수다를 떠는 자리에 가깝다. 세미나가 있던, 강연이 있건 마지막은 보통 네트워킹 세션이다. 이 외에도 'A 회사를 다니는 B 학교 동문 모임', '2012년도 글로벌 뱅킹 부서 신입 모임' 등등 수많은 이벤트 초대가 있었다. 어차피 일과 후에 할 일도 없던 차에 네트워킹 이벤트에 가보기로 하였다.




"안녕하세요? 전 엠마라고 해요. 호텔, 리조트 및 카지노 경영 부서에 있어요."


"아 안녕하세요! 전 YJ라고 해요. 옵션 퀀트 트레이더죠."


"퀀트라면 막 수학이랑 컴퓨터 가지고 하는데 말하는 거죠?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공대나 막 과학 공부하셨겠네요?"


"아하하 맞아요 얼추 비슷해요.. 카지노와 호텔이라니 저랑은 정말 다른 세계네요! 재밌을 것 같아요."


지루한 세미나가 끝나자 잔잔한 재즈 음악과 함께 샴페인과 핑거 푸드가 준비되었다. 이런 자리에 익숙지 않은 나에게 키가 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엠마라는 백인 여자 애널리스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뉴욕 퀸즈 출신에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계통의 사람이었다. 화려한 언변과 친화력으로 인수 합병이나 경영 자문을 한다는 Investment Banking 소속이었고 그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호텔 카지노 업계 담당이었다.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외모 또한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 영화배우 같은 포스를 풍겼다.


"요즘에 컴퓨터로 엄청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던데 도대체 원리가 뭐예요?"


"아.. 저도 일한 지 이제 몇 달 밖에 안 됐지만 얼추 이런 원리예요. 혹시 차 사보신 적 있으시죠?..."


엠마는 평소에 굉장히 궁금했다는 듯이 이것저것 물어봤고, 나도 호텔계의 재밌는 사건이나 해프닝 등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죽어가는 동부의 라스베이거스라는 아틀란틱 시티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치적 싸움이 일어나고 은행들이 딜을 하고 있는지도 들을 수 있었고 디즈니 리조트와 계약하기 위해 리포트 사이사이에 시니컬한 유머를 끼어넣는 비기도 알려주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여기 링크드인 프로필 있으니 추가하고 종종 연락합시다!"


한국에서는 주로 명함을 주고받지만 여기서는 프로페셔널 소셜인 링크드인을 주로 추가한다. 엠마를 지나쳐서 안에 더 들어가자 이번엔 유대인을 상징하는 키파를 쓴 선한 인상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는데 한번 맞춰 보겠습니다! 주식 리서치 팀이죠?"


"아.. 안타깝게도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서요. 영문법 때문에 매번 C를 맞았어요."


뭐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실제로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인 것 같기도 하다.


"흠... 그렇다면 상장 부서? 아 아닐 거 같기도 한데.."


"하하, 저는 파생 상품 거래 부서에 있어요."


"이런, 처음으로 틀린 사람이네... 아, 반갑습니다. 아비바라고 합니다. 채권 영업 부서에 있지요."


아비바는 굉장히 말이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자신은 채권 영업에 있지만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 사업을 하거나 재밌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역시도 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자리를 옮겼다. 한 열 명정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다. 감사하게도 다들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주어서 다행이었지만 아직도 한국의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조금 어색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네트워킹 인맥들은 예고 없이 굉장한 도움이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엠마예요, 2년 전에 신입 모임에서 만났었는데 기억나요?"


"아아 그럼요! 잘 지냈어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사모펀드로 이직을 했는데 저희 옆 팀에서 주식 분석 퀀트를 급하게 찾고 있어서요. YJ 씨가 딱 생각이 나더라고요. 혹시 관심 있나 연락드렸어요."


"아 정말요? 저도 여러 가지 기회를 찾던 중인데 정말 감사하네요. 한번 제 이력서 보내드릴게요."


이들은 자신이 친한 정도나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고 좋은 기회에 알맞은 인물을 알고 있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물론 그들이 무작정 나를 밀어주거나 꽂아 줄 수는 없다. 나는 형식적인 서류 절차는 넘어갔지만 더욱 철저한 기술 면접을 보았고 아쉽게도 엠마의 사모펀드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추천이나 정보가 없었다면 나는 그런 기회가 있는 줄 조차 몰랐을 것이다.





아비바 씨에게
안녕하세요? YJ라고 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브라운 대학교 동기로 보이는 사이먼이란 사람이 저희 팀에 지원을 했어요. 혹시 대략적으로 아시는 점이 있나요? 작은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YJ 드림


우리 팀에 연락이 온 한 지원자에 대해 더 알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만난 아비바에게 연락을 하였다. 하루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아비바에게 답장이 왔다. 아비바는 사이먼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팀 중심의 업무를 처리하는 우리 같은 팀보다는 개인 실적 위주의 팀에 더 어울릴 것이라면서 그런 점을 참고하라고 해주었다. 비록 학연으로 연결돼있는 둘이었지만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평가를 해주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렇게 학연으로 이어진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했을까? 정이 없고 치사하다면서 욕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냉정하고도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학교 생활하는 학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인 네트워킹.

그리고 중국, 인도인들보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회생활에서 승진이나 고위직에 진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인 네트워킹.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네트워킹이 부족하면 정보력에서 밀리기 때문에 끝내 조금씩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 또한 점점 어려움을 느끼고 여러 가지 네트워킹 이벤트를 뒤로하고 집으로 퇴근하기 바쁘다. 어떻게 하면 네트워킹을 더 잘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네트워킹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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