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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Mar 15. 2018

뉴욕 직장 생활 - 9. 퇴사

두 번이나 했지만 이번엔 많이 다른,

뉴욕 퀀트의 직장 생활 시리즈 -
1. 인턴 취직
2. 첫 출근
3. 팀 문화 적응기
4. 첫 프로젝트
5. 점심시간
6. 위험한 날들
7. 이직 1편
7-2. 이직 2편
8. 네트워킹



"다니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뭔데? 그냥 이야기해 마켓이 좀 난리여서 말이지"


"...."


다니엘은 내가 대답이 없자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알겠다. 2시 30분쯤에 회의실 가을(Autumn)에서 보자."


나는 평소에 실없는 대화를 잘 안 하고 코딩을 하거나 멍 때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다니엘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한 모양이다.






    다니엘은 내 상사이자 우리 헤지펀드의 수십 명의 포트폴리오 매니저(PM) 중 하나였다. 투자 업계에서 PM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자금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고, 트레이더나 퀀트 혹은 애널리스트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었다. 펀드의 성과는 오직 수익률뿐이다. 트레이더나 애널리스트들은 수익 목표를 향해가는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하지만 PM은 이를 취합해서 투자자와 펀드의 성향에 맞게 재편성한다. 마치 펀드가 시장의 수익을 이긴다는 '원피스'로 향하는 배라면, PM은 선장인 것이다. 아무리 수익이 좋은 트레이더라도 꼭 좋은 PM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유능한 키잡이가 꼭 좋은 선장이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퀀트 헤지펀드의 경우는 더욱 극명하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퀀트들이 만들어온 수많은 알고리즘을 분석해서 합불을 결정한다. 몇 주를 밤새워 만든 알고리즘의 개요를 제출하였는데 PM의 까다로운 기준에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코드는 폐기 처분되거나 다시 테스팅 레벨로 내려간다. 이는 투자자의 성향이나 펀드의 리스크 레벨, 다른 알고리즘과의 연계 관계 등을 보고 결정한다. 객관적인 시뮬레이션 데이터나 철저한 경제적 관념이나 기술에 기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다른 인공지능들처럼 시도해보다 잘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식의 접근이 안 되는 분야라서 더욱 그렇다. 고장이 나거나 실패한다면 바로 엄청난 자금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제가 이번에 제작한 '코스모스'라는 알고리즘입니다.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때를 감지해서 스파이크를 감지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여기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습니다. 수익률이 목표 기준보다 1.8배나 높습니다."


"데이터를 보니 선물 시장이 폭발적이었던 때 위주로 테스트를 하였군. 테스트 데이터 샘플 분배 확실히 한 거 맞나?"


"아 그게.. 그 이전 결과들은 오히려 기존과 다른 양상의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만 테스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신 그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블라인드 샘플링을 하였습니다."


"그 시장이 오히려 앞으로 맞는 양상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바로 모든 상황을 포함해서 다시 결과를 돌려보게나."


"그럴 경우 현재보다 최대 손실량이 약 30% 증가하기는 하지만 수익률 자체는 여전히 준수합니다."


"수익률은 준수하지만 만에 하나 그 레벨의 손실이 나타났을 경우 펀드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네. 안타깝지만 아직은 프로덕션으로 올려줄 수 없다네."



    약 1년 전에 천재라 불리며 화려하게 입사한 중국계 퀀트 '보'가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갔다.


    보는 북경대 학부, 스탠퍼드 석사, 하버드 통계학 박사를 나온 엘리트였다. 퀀트 경험은 많이 없지만 투자 은행에서 분석가로 10년 정도 일한 베테랑이었다. 성이 Lee여서 내가 맨날 '보리~ 보리~' 하면서 놀리면서 친해졌다. 그러나 헤지펀드에서는 PM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학벌도 경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1년째 프로덕션으로 알고리즘을 올리지 못하고 테스트 환경에서만 일하던 보는 답답한 마음에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웠다. 접이식 침대도 사고 난방이 꺼진 새벽을 견디기 위해 개인용 히터도 샀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기준점을 자꾸 넘지 못하고 한숨만 늘어갔다.


    어느 날부터 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니엘은 건조하게 아침에 사람들에게 '오늘부터 보가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다시 연구에 돌입했다. 프로덕션에 올라가지 못한 보가 방출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정말로 이런 박스를 준다.



    나의 경우는 조금 운이 좋았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메릴린치에서 배운 많은 알고리즘을 변형해서 수익형 알고리즘인 '지니'를 만들었고, 이들이 프로덕션으로 올라가서 수익을 내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2년간 50번의 알고리즘 불합격을 맞고서야 두 번째 알고리즘인 '엘사'를 완성했다.


    하지만 나는 지식과 연구에 한계가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헤지펀드는 개인주의였기 때문에 개인의 알고리즘이 프로덕션에 올라가는지 올라가지 못하는지가 중요했고, 다른 사람과 아이디어 공유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았다. 어떤 알고리즘이 행여나 불법적인 거래를 하여서 증권거래위(SEC)에 걸리더라도 함께 연루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의 노하우를 아무 이득 없이 공유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연구는 비슷한 아이디어 내에서 돌기 시작했고 점점 불합격 통보만 늘어갔다. 기존의 알고리즘은 보통 점점 도태되기 때문에 끊임없는 연구는 필수다.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니와 엘사의 수익 모니터만 멍하니 몇 시간을 쳐다봤다. 확실히 3년 전보다 수익이 떨어졌다. 벌건 대낮에 맥주를 한 캔 꺼내서 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하던 관심이 없었다. 트와이스 신곡 뮤직비디오를 보건 친구와 페이스북 채팅을 하던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알고리즘을 만드는 건 본인 몫이니까. 답답해진 마음에 뭐가 문제일까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조금 머리가 정리되는 기분이었고 내가 뭐가 부족한지 약간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연구시간에 어차피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아이디어를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가 탄생했다.





    책을 읽고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그분은 시애틀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동시에 3-4가지 사업도 진행하고 계셨다. 잠잘 시간도 아까워서 할 일을 찾아서 한다는 이 엔지니어분은 감명 깊었던 책의 저자는 얼마가 들던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상관없이 꼭 만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애틀로 꼭 초대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일면식 없는 분에게 이러한 도움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을 하였다. 그러자 이 분은 시애틀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려주고 싶다면서 시애틀 IT 컨퍼런스인 '창발 컨퍼런스'의 연사로 초대해주셨다. 고민 끝에 수락을 하고서 시애틀에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가게 되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5670017


    시애틀의 1박 2일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시애틀은 뉴욕과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마치 미래 도시와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멋진 기술들이 도시 전체에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혁신을 외치고 다니는 듯하였다. 실리콘밸리는 그저 원래 그런 괴짜들이 모인, 도시의 바쁜 분위기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서인지 그냥 테마파크에 간 기분이었다면, 시애틀은 '이게 진짜 미래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시애틀은 내가 가본 미국 도시들 중 가장 수준이 높았다. 심지어 노숙자도 점잖았다.


아마존 본사 건물들
아무때나 사용하고 아무데나 주차해도 되는 자전거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임원등이 많이 사는 시애틀 근교 Medina. 자연과 어우러짐을 중요시 한다


    단순히 도시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창발 컨퍼런스에서 정말 대단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아마존에서 부사장을 맡고 계신 한인 분,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디자인 대표, 컴퓨터에 한글 입력기를 처음 만드신 분까지. 심지어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는 의사분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은 이미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 등에서 높은 레벨에 올라가고 명성도 얻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 같이 말하였다.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왔지만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데 더 도전하고 싶다. 지금 이런 자리는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도 정말 많았다. 뉴욕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다.


나 또한 그런 류의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뉴욕에서 전문직으로 살아간다는 편안함에 안주했던 건 사실이다. 항상 '창업과 도전이 바로 나의 아이덴티티야!'라고 말은 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아직 더 배워야 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나를 초대해주신 엔지니어분께 고마움을 표하면서 맥주를 마시며 내가 책을 쓴 이유와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국 아무리 수익을 쫒는 조직이라도 협업과 공생이 없다면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정 그렇다면, 그런 조직을 한번 만들어보시는 것은 어떤가요?"


"전 아직 알고리즘도 몇 개 안되고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슬럼프가 온 것도 있고요."


"제가 보기엔 그게 핵심입니다. 무엇보다도 현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이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 분야를 경험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은 힘이 되었다. 사실 그냥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이미 수많은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난 뒤라 이 말이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아마존 부사장도 일단 실행에 옮겼다. 킨들 파이어가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처참하게 실패하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다.


뉴욕에 돌아온 나는 일주일간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하였다.







"그래 할 말이 있다고?"


"예, 저 그만 퇴사하려고 합니다."


"흠... 우리 회사에서 먼저 퇴사를 하려는 경우는 잘 없었는데, 수익 분배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그 부분은 이야기하면 조정 가능한데 말이지."


"그렇진 않습니다."


"허허, 그러면 정말 책으로 부자 된 건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절대 아닙니다. 책은 돈이 되는 일은 확실히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만 저 자신이 더 이상 성장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기에 수많은 논문이 매일 쌓이고 사내 도서관이 이렇게 거대한데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니? 게다가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있는 팀인데 말이야."


"네 물론 제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성향 자체가 협업과 보완을 통해서 성장하는데 혼자서 모든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공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그런 점이 부족해서 박사 진학도 포기하였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제가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저 또한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제 성향에 더 맞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참 좋겠지만 그런 회사들은 결국 직원으로서 돈을 벌기가 힘들어. 시카고의 모 회사가 그런 환경을 추구했지만 결국 수익 배분과 알고리즘 소유권 때문에 분쟁이 나서 사라졌지. 들어봐, 난 이미 여러 회사에서 20년간 일을 했고 이 방식이 가장 최적이라 생각해서 추구하는 거야. 포트폴리오 매니저로서 일하지 않는 한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는 어렵지. 또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을 허용하는 투자자를 만나야 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사숙고하였지만 이 환경에서는 힘들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 이직할 곳은 어딘가? 시카고인가 뉴욕인가?"


"음.... 사실은 펀드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 정말인가? 축하하네. 같은 시장에서 거래하게 된다면 3개월간 거래 금지 조항이 생기는데 같은 시장인가?"


"아닙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보려 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더 이상 붙잡는 게 무의미하겠군. 건투를 비네. 규정상 오늘 바로 모든 아이디가 몰수되고 당장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6시까지는 그냥 정리하고 가게나."


"배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와, 엘사 지니에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제 뉴욕 직장 생활이 아닌 뉴욕 창업 생활이 되는 셈이다.


퀀트 트레이더가 아닌 퀀트 포트폴리오 매니저이자 회사 대표로서의 삶. 이제 약 반년 정도 되어가는데 정말 많이 배우고 있다. 선택에 후회는 전혀 없다. 앞으로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잘 정착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도하는 것에 많은 만족을 느낀다. 힘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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