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척을 진 디자이너 지망생의 첫 단편영화 연출기
영화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IT 서비스를 만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다섯 학기 동안 전공 선택에 대한 회의와 방황에 가득 찬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두렵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영화 연출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던 것이 지난 3학년 1학기였습니다.
어떻게든 제대로 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내야 했던 지난 한 학기 동안의 시간들을 순서대로 복기해보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닫게 된 점들을 글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시놉시스 및 시나리오 개발 단계
첫 번째 시도
시나리오 소재 개발 작업은 개강 전 2월부터 시작됐다. 1, 2 학년 시나리오 실습수업 때마다 제대로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했던 터라, 시작 전부터 이번 작업에서도 시나리오가 쉽게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작업에 워낙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혹은 과거 경험을 중심으로 소재 발굴을 시작하였다. 매일 같이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서 1-2주가량을 노트북과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만큼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1주일간 내일로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출발 전 조그만 수첩을 하나 사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짐없이 메모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시나리오 소재 고민을 시작했는데, 복학 전까지 끊임없이 디자인 외주 작업을 진행하면서 약간은 부족한 듯 책정되는 작업비에 아쉬웠던 기억을 영화에 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레퍼런스 영화를 찾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언제나 해왔던 것처럼 나는 공짜로 영화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열정 페이에 억울해하던 아침의 내 모습과 공짜를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정면으로 모순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소재로 시놉시스 작업을 시작했다.
1, 2학년 때와 비해서 확실히 달라진 점이라면, 시나리오 쓰는 작업이 결코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시놉시스를 쓰면서 열심히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반응을 살폈다.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비록 어설프지만 어느 정도의 형태를 갖춘 시놉시스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후 2주 차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피드백을 듣고, 이 것이 과연 영화화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고, 몇 일간의 고민 끝에 새로운 주제로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시도
이번 영화의 소재는 ‘여자로서의 엄마, 결혼식 비디오를 보게 된 아들의 감정’이다. 군 복무 시절, 여자 친구(지금은 전 여자친구...ㅎㅎ)와 전화 하면서 엄마의 젊은 시절 얘기를 했다. 3학년 단편영화 작업의 소스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재빨리 수첩에 옮겨적었고, 그게 이렇게 내 첫 단편영화로 탄생했다. 다시 한번 메모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올해도 열심히 메모를 하기 위해 개강 전 비싼 몰스킨 수첩을 나에게 선물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더 이상 소재를 엎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조급함에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시놉시스가 완성되고 트리트먼트를 쓰면서 트리트먼트 작성의 참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됐다. 이전 시나리오 구상 과정에선 막히면 ‘일단 시나리오 쓰면서 고민하자.’라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트리트먼트 작성이 끝나지 않으면 절대로 시나리오 작성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 세부적인 대사나, 세팅을 만들기에 앞서, 일단 큰 구조를 보고 각 씬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면서 플롯팅 하는 작업을 거치고 나니, 이후 시나리오 작성은 술술 풀려 나갔다. 물론 내가 원하는 100% 만큼의 수준까진 아니었다. 5월 1주 차에 영화를 어떻게든 찍겠다는 마음을 먹은 상태에서 더 이상 시나리오 작업에만 시간을 쓸 순 없어 초고의 상태로 프리 프로덕션 작업에 돌입했다.
프리 프로덕션
스탭 구성
3년 만의 학교 복학에 학과 내부 사람들과 큰 안면이 없어, 도움을 청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먼저 아직 졸업하지 않은 동기들에게 조연출을 부탁하고 다녔고, 이건의 학우가 제안을 수락해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이외 스태프들은 1학년 때부터 몸 담고 있던 영상 제작 비영리단체의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꾸리게 됐다. 촬영자의 경우 고성헌 학우에게 처음 부탁을 했으나, 끝내 시나리오를 납득시키지 못한 나의 잘못으로 결국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비영리단체에서 예전부터 계속 작업을 함께해오며 친분이 두터웠던 동생에게 촬영 감독을 부탁하였다.
배우 캐스팅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 조연출 이건희 학우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캐스팅 작업을 도와주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연출자가 아무런 신경 쓸 것 없이 알아서 충분한 분량의 배우 리스트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원하는 느낌의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오디션을 보러 배우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후문으로 마중을 나갔고, 오디션이 끝나면 항상 후문까지 배웅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학생 영화 리딩에는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기성 중년 배우들과 융통성 있게 소통하면서, 연출자가 꼭 보고 싶다고 하는 배우는 어떻게 해서든 리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영화 제작에 필요한 준비물 및 과정들을 꼼꼼하게 체크해주어, 실제 프로덕션 과정에서 연출부쪽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펑크가 생기지 않았다. 이건희 학우의 작업 스타일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리허설
촬영 바로 전 주에는 어머님 역의 양말복 배우, 아들 역할의 박혁 배우와 촬영 장소에서 미리 만나 사전 리허설을 진행했다. 안 했으면 정말 현장에서 큰 일 날 뻔했다. 사전 리허설 과정에서 최종 시나리오를 두고 많은 대화가 오갔고, 이를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면서 연출 쪽의 빈 구멍들을 메울 수 있었다. 촬영 전에 콘티를 펼쳐 놓고 전체 흐름을 생각하면서 각 씬 별로 중점적으로 생각할 것들과, 유의해야 하는 콘티뉴이티 포인트를 미리 기록했다. 이 것을 촬영장까지 가져가서 참고했다는 것이 실수였지만, 처음 연출을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연출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쩌면 이번 영화 작업에서 가장 희열을 느꼈던 순간은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혼자서 골방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고민하는 시간들을 이어가면서 ‘텍스트’라는 형태의 암호와 같은 시나리오만 보다가, 실제로 배우를 통해 이 암호가 풀려나가고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 마주했다.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동안의 억압된 감정들이 마음껏 분출되고 깨끗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결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콘티 작업
촬영자와의 콘티 작업 과정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연출자 머릿 속에 뚜렷한 레퍼런스가 없었다는 점과, 시나리오를 촬영자에게 100%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허점이 많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콘티를 작성하다 보니, 결국 모래성을 쌓는 격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 감독이 최대한 본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었다. 작업 과정에서 촬영감독과 충분하게 소통 한 것은 그 와중에 참 다행인 점이다.
로케이션 헌팅
제작비에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나리오의 전체적 세팅을 고려했을 때,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을 로케이션으로 세팅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내 밝기나 외부 소음 등의 장애 요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촬영 감독이 로케이션 확인을 촬영 1주 전에 처음 하게 됐는데, 2층 건물에 실내 밝기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욱 어두워 촬영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2K 이상의 HMI 3대 정도는 필요할 것이라는 얘길 듣고, 차라리 로케이션을 새롭게 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던져두고 로케이션 헌팅을 시작했다. 제작과 조연출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후보군을 만들 수 있었으나, 모두 헌팅에 실패했다. 결국엔 다시 기존 자취방에서 부족하면 부족 한대로, HMI 2K 2대를 이용해 촬영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막바지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오래된 주택이라 동시 허용 전류량이 HMI 2대를 버텨낼 지도 미지수였는데, 결과적으로 촬영 날 문제없이 충분한 광량을 만들 수 있어서 안도할 수 있었다.
또한 층간 소음 및 벽간 소음에 취약한 로케이션이라, 촬영 날 사운드 문제로 진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촬영 전날 미리 옆집과 윗집에 양해를 구했고 다행히 촬영 시간 대에 모두 집을 비울 계획이라고 하여 큰 무리 없이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
프로덕션
연출자의 역할과 자세
사전 리허설 과정을 거치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을 파악했지만 현장에서 배우에게 디렉팅을 할 때 과연 내가 명확하고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있는지 항상 의문스러웠다. 연기를 잘 하고 있는 건지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 감에 의존했다. 명확한 중심점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자꾸 배우의 연기 외의 주변 것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특히 컷과 컷 사이의 컨티뉴이티를 맞추는데 혈안이 되어, 정작 중요한 배우의 연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 편집점에서 액팅을 매치시키기 위해 배우의 행동에 제한을 걸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배우로부터 나올 수 있는 진실된 연기를 가로막은 디렉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1, 2학년 때 동시녹음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레 사운드에 민감해진 터라, 어느 시점에 가서는 배우 디렉팅보다는 사운드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리허설 과정까지는 어머님 역 배우님의 태도가 굉장히 호의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촬영 끝 무렵에 가서는 살짝 마음이 떠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연출자의 실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졸업 영화 작업 때는 이런 부분들을 꼭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할 것이다.
예기치 않은 변수에 대처하기
유일한 야외 씬인 옥상 촬영을 진행하는데 사운드 문제로 곤혹을 치렀다. 집이 전철역과 김포공항에 인접해있어 5분 단위로 전철과 비행기가 번갈아 가면서 지나다녔다. 게다가 카메라 배터리까지 부족해서, 마지막 옥상씬 촬영 때는 충전을 하면서 진행을 해도 필요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3-4분 단위로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계속 갈아 끼우며 진행 할 수밖에 없었다. 모니터는 당연히 볼 수가 없었다.
두 가지의 통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촬영을 마쳐야 했다. 이미 스태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멘탈이 나가 있었고, 연출자인 내가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합칠 수 있는 컷들은 합치고,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조치하여 결국엔 촬영을 마쳤다. 좌절할 뻔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무리해내서 뿌듯했다. 하면 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프로덕션 그리고 자아 성찰
촬영을 끝내고 한 동안 소스들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편집을 자꾸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 나올 것이 이미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촬영이 끝나고 교수님께 가편집을 보여드려야 하는 상황을 코 앞에 두고서야 편집을 시작했다. 너무 괴로웠다. 내가 만든 영화인데 내가 이 영화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항상 어느 집단에 속하던지 간에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잘 마무리하고, 좋은 결과물까지 이끌어내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에 익숙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달랐다. 자꾸 뒤로 숨고 싶었고, 완성도를 떠나서 완성만 해내자.라는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
앞으로 영화를 나의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종합 예술이자 창작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 작업과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 사이의 연결고리가 꽤나 견고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좋은 이미지를 구별하고 만들어내는 감각이라던지, 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은 최고 레벨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걸 못하면, 저 것도 못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자존감이 자꾸 떨어져 갔다.
그렇게 고민과 상심을 안은 채로 시사를 마쳤다. 남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계속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시사 전 날까지 내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스스로 깨우쳤다. 내가 내린 결론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비교 금지 그리고 정면 돌파’다.
괴로움은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항상 시작됐다. 먼저 나가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가도록 두고, 나는 나 대로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잘 하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고, 일단 하기. 특별히 잘하고 싶은 마음 없이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꾸준히 모션 그래픽 작업을 해왔는데, 그냥 하다 보니까 툴 다루는 것이 굉장히 편해졌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눈에 보이는 시점을 마주할 수 있었다. 큰 구조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것을 이제는 시간문제라고 느낀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만들고 이런 결과를 받아 든 것은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영화에 그만큼의 관심과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나의 근본적인 역량에 대한 회의를 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좌절하지 말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와 내 꿈과의 연결 고리를 절대 끊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 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오히려 나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줄 도구는 결국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기도 했지만 사실 영화 작업의 매력도 충분히 느꼈다. 텍스트가 살아 움직이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 그 설레는 느낌을 가슴에 안고, 다음 졸업 영화에서는 충분한 준비의 과정을 거쳐 시각 효과에 대한 욕심을 마음껏 분출하고 싶다. 물론 스토리의 완성도는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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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영화 만드느라 고생해준 스태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교수님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