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태욱 Dec 03. 2020

주니어 디자이너의 일하는 근육 키우기

마켓핏랩에서의 3개월 회고

프로덕트 디자이너 타이틀을 달고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켓핏랩에서의 3개월이 지났다. '첫 직장으로 에이전시/컨설팅 회사 안 갈 거야!'라고 못 박았던 나의 3개월 전 굳건한 결심과는 반대로, 내 첫 직장은 컨설팅 회사가 되었다. 역시 인생은 짐작한 대로 잘 흐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 곳은 디자인 회사가 아니다. 마켓핏랩은 마케팅에 베이스를 둔 풀스택 그로스 컨설팅 팀인데, 쉽게 말해서 근거 기반의 제품 성장을 돕기 위해 광고부터 제품단까지 뭐든 하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대기업의 신사업 시장 검증을 돕고 있다.


그래서 3개월 전에 비해 나는 성장했나?라는 질문을 던지면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더 겸허해졌다고 얘기하고 싶다. 마켓핏랩(해킹그로스 팀)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들이 곧 지금의 내 위치를 알게 해 주었고, 그래서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구직시장에 나를 처음 던졌던 4-5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팀의 어떤 점이 좋았냐면,



01

내 작업이 고객과 만나

데이터로 돌아오는 환경

마켓핏랩 (해킹그로스 팀) 대장님 (a.k.a 길드마스터) Paul 페이스북 펌


정말 딱 이렇게 일했다. PM, 개발자, 디자이너가 함께 1주 단위로 계속 실험을 돌렸다. 그리고 4개월 동안 약 스무 번의 제품 실험이 진행됐다. *ICE 점수를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배움을 얻어 다음 번 시도에 반영하며 제품을 키워나가는걸 너무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던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ICE 점수
I(mpact) : 목표 지표를 달성하는데 가설이 얼마나 임팩트를 줄 수 있는가?
C(onfidence) : 가설이 성공하는데 얼만큼 자신감이 있는가?
E(ase) : 가설을 구현하는데 자원이 얼만큼 드는가?


그래서 이제는 A/B Test와 대조군, 실험군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Amplitude, Hotjar와 훨씬 더 친해졌고, 실험을 통해 명확한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험 설계를 해야 하는지 더더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더더, 고객에 집착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머리 말고 몸으로 느낀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 말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꺼내야만 그제야 고객들은 지갑을 열 준비를 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고객 접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설계하고 그려내는 사람이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작업에 매몰되다 보면 생각보다 이걸 놓치기 쉽다. 항상 머릿 속에 넣어두기!


최근부터는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서 앰플리튜드, 핫자 보는 것 외에 몇 가지 시도들을 더 해보고 있다.


광고 데이터 살펴보기

어떤 광고 소구점에 고객들이 가장 잘 반응하는지 체크하면 고객이 원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힌트를 참고해 광고 소구점과 연결된 경험을 랜딩페이지에서도 제공한다면,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고 있다.


작고 가볍게 정성 조사하기

리서치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기로 했다. 리서치하면 무겁고 지난한 프로세스들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주변 친구 붙잡고 '이거 어때?'라고 물어보면서 5-10분 정도 캐주얼하게 인터뷰 혹은 유저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고, 잠재 고객들이 있을만한 네이버 까페나 뽐뿌 같은 커뮤니티에 침투해서 고객의 생생한 목소리를 수집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도 정성 데이터다. 그 와중에 반복되는 패턴이 발견되면 아주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고객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훨씬 좋다. 디자이너가 더욱 고객 지향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 리서처가 던져준 결과를 참고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작고 가벼운 시도를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비교적 쉽게 날것의 고객 언어를 수집할 수 있고, 더 선명하게 고객의 마음을 그려볼 수 있다.


책 읽기

고객이 원하는 걸 찾아서 고객 접점인 제품에서 잘 던지기도 해야 하니까 UX Writing과 인지 심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래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은,


꼭 필요한 만큼의 리서치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마이크로 카피


읽으려고 벼르고 있는 책은


UX/UI의 10가지 심리학 법칙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Pre-totyping)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




02

비즈니스 맥락을 고려한

디자인하기


친구들이랑 꽁냥꽁냥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트와 실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해관계자와 비즈니스의 복잡도다. 그리고 여기서 여러 가지 제약사항들이 생겨난다. 이건 실무로 뛰어들지 않는 이상 경험하기 힘들거라 판단했는데, 다행히도 마켓핏랩에서 야생의 환경을 제대로 느껴보고 있다.


취준 중인 주니어 디자이너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어느 정도 기본기를 쌓았다고 판단했다면, 하루라도 빨리 야생으로 뛰어드는 것도 좋은 선택지 같다. 3개월 전에 비해 나의 시야, 생각. 그리고 자세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당장 3개월 전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어야겠단 생각을 하는 중)


대기업 프로젝트라 그런지 특히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고 비즈니스 맥락에서 오는 제약들이 많다. 더 이상 사이드 프로젝트하던 때처럼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이거 만들자!라고 할 수가 없다. 결국 한정된 세트 내에서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결과를   있을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게  일하는 근육을 키우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제약이 많더라도 다시 그 속에서 중심점을 최대한 고객에 맞추기. 고민하고 시도하기. 기대했던 결과가 안 나와도 주저앉지 말고 계속 부딪히기. 그 과정에서 계속 배움을 쌓아나가기. 운동하면서 근육 키워나가는 과정과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계속 타석에 오르는 횟수를 늘리다 보면, 안타도 더 많이 치고 언젠간 홈런도 날리지 않을까.



03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일하는 근육 키우기


그래서 마켓핏랩에서의 가장 큰 수확을 꼽자면, 괜찮은 환경에서 일하는 근육을 키웠다는 점이다. 일하는 근육은 곧 일하는 자세 정도로 풀어 얘기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하드 스킬도 중요하지만, 그것 이전에 더 중요한 기본기는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걸 느낀다. 하드 스킬을 쌓는다고 해도 기본기 위에 쌓아야 길게 갈 수 있는 거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개발자와의 기술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키우는 게 나의 큰 이슈였다. 그런데 일을 시작해보니 그냥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다 어려웠다. 기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이전에, 일단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잘' 전달하는 게 먼저였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1) 근거 기반으로 설득력을 갖추고 2) 상대방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용건을 두괄식으로 본론부터 간결하게 펼쳐서 3) 모두가 같은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정도로 풀어쓸 수 있겠다.


일의 복잡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난이도도 높아졌는데, 생각보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많이 당황해하는 것도 알게됐다. 종종 나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할까 자책도 했고, 해야 할 말을 그냥 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어딜 가든 커뮤니케이션은 꼭 필요한 스킬이라, 다시 처음부터 쌓아나간다는 생각으로 이겨내 보려고 한다. 길드마스터 폴의 조언은, 그럴 수록 미리 두 번 세 번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라는 것.


이걸 극복하는데 마켓핏랩이라서 더 좋은 점이 있다면, 업계에서 유명한 마케팅 재림 고수들이 팀에 포진해있고 당장 그분들과 협업할 기회가 당장 나에게도 주어진다는 것이다. 관록이 넘치는 시니어가 일을 되게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그게 비록 디자인 분야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질수록 나의 두려움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중이다.


끝.



✽✽✽

대단한 인사이트를 담은 글이라기보단, 주니어 디자이너의 솔직한 소회가 담긴 일기 정도로 읽히면 좋겠다. 요즘은 특히 말과 글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글에 담은 이야기를 결과로 증명해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란 걸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꽤나 큰 임팩트를 남긴 그동안의 배움을 소상히 기록해두고 싶었고, 기대 이상으로 너무 괜찮은 팀이었단걸 널리 널리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켓핏랩이 궁금해지셨다면, 아래 링크들을 둘러보셔요 :-)





매거진의 이전글 새단장한 우버 택시를 타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